슬슬 성분명 처방의 당위성에 대해서 언론에서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다. 노무현 정권 이래로 복지 정책이 상당히 실시되고 이는 건강 보험에도 예외는 아니라서 건강 보험의 적자가 예상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젠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을 정도까지 다다른 것 같다. 뭐 이는 그 동안 병원에서 병원식으로 이윤 남겨 적자 메꾸던 것이 맘에 안 들었는지 병원식마저 보험이 되도록 할 때부터 예상했던 결과기는 하다. 사실 일반 국민이야 당장 내가 내는 병원비가 줄어들면 좋아하지 보험 재정이 적자가 나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과연 성분명 처방이란 무엇이길래 약사들은 기를 쓰고 통과시키려 하고 의사들은 기를 쓰고 막으려고 하는가? 약을 처방하는 것은 크게 2가지로 나뉠 수가 있는데 그 것은 바로 약품명 처방과 성분명 처방이 그것이다. 약품명 처방이란 처방을 내릴 시에 어느 제약회사의 어떤 약이라는 것까지 의사가 지정해서 내리는 것이고, 성분명 처방이란 의사가 대략적인 성분을 지정하면 그 성분이 들어가는 약을 골라서 약사가 주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약품명 처방이라는 것은 어머니가 슈퍼 갈 때 '오리온 초코파이 사와!'라고 부탁하는 것이고, 성분명 처방이라는 것은 어머니가 슈퍼갈 때 '초코파이 사와!'라고 부탁해서 어머니가 오리온 초코파이를 사올지, 롯데 초코파이를 사올지 아니면 빅파이-_-;를 사올지는 재량에 맡겨지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이해가 가시는가?

자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잘 써오던 약품명 처방에서 성분명 처방으로 바꾸려고 시도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첫째도 돈이요, 둘째도 돈이고, 셋째도 돈이다. 그렇다면 왜 성분명 처방을 하면 사용하는 돈이 줄어들까? 김대중 정권 시절 의사들의 격렬한 파업[각주:1]에도 불구하고 의약분업은 통과되었다. 당시에 의사들이 반대한 항목은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그 중 하나가 바로 성분명 처방 저지였다. 도대체 무엇때문이었을까?
뭐 정부측에서야 의사 새끼들이 기를 쓰고 막는 것은 제약회사 리베이트도 먹어야 하고 랜딩비[각주:2]도 받아야 하고 제약회사 지원도 받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박박 우긴다. 다른 이유는 없다고 우기면서. 사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병신 같은 의료 수가 때문에 발생하는 적자를 의사들은 저런 수단으로 메꿔왔던 것도 사실이니까. 그러나 정부는 가장 중요한 이유를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 있다. 바로 약효 동등성의 문제이다.

약효 동등성이란 말 그대로 특정 성분이 들어간 약을 썼을 때, 그 효과가 동등하게 나타남을 의미한다. 같은 성분의 약이면 효과가 같아야지 왜 다르게 나타나냐고? 모든 약의 성분과 제조 과정이 절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영업상의 이유건, 제조상 기밀의 이유건 현재 나와있는 약은 조금씩 성분이 다르다. 대개 그 효과가 주가 되는 성분의 이름을 따서 약의 이름을 붙이게 되는데, 대개는 이러한 성분의 섭취를 편하게 하거나, 분해가 잘되게 하거나, 약효를 오래가도록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공정을 거치게 되고, 이는 제약회사마다 완전히 동일할 수는 없다. 뭐 간단히 말해서 위에 예를 든 초코파이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오리온 초코파이와 롯데 초코파이의 성분은 거의 차이가 없지만 맛은 다르다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는가?
그렇다면 왜 같은 이름을 사용하게 되는가? 미국 FDA나 한국 식약청이나 모두 바보에 병신들만 모여있는 것은 아니라서 약의 특허가 빨리 풀려야 이게 적극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은 다 알고 있다. 현재 존재하는 약의 특허기간은 제약회사가 신약을 적극적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이익과 사회적으로 이 약을 써서 혜택 받을 수 있는 공공복지적인 복리와의 팽팽한 줄다리기의 결과 형성된 것이다. 한 예로 예전 한창 이슈가 되었던 '노바티스'의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이 대표적이지 않은가. 이미 상용화가 끝난 약은 특허 기간 동안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 주고, 이것이 신약을 계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비교적 긴 특허기간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그럼 이와 같은 특허기간이 끝나면 어떻게 되는가? 다른 모든 제약회사는 이제 그 성분의 약을 제조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약의 제조 공정이 완전히 동일할 수는 없기 때문에 약효의 차이가 날 수 밖에는 없지만, 이것을 완벽하게 맞추라고 한다면 제약회사들 뿐만 아니라 국가에서도 큰 손해를 입을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일정한 기준을 적용하게 되는데 원래의 약효에서 일정 범위내의 약효를 발휘한다면 동일 성분을 가진 약(약효 동등성 획득)으로 인정해주고 동일한 이름을 쓰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뭐 오리온 초코파이나 롯데 초코파이나 맛이 약간씩은 다르지만 비슷한 맛을 가지고 있으니 둘 다 초코파이라고 불러준다라는 개념으로 생각하시면 되겠다.
자 그럼 약효 동등성은 어떻게 확인하는가? 뭐 약리학, 약동학 다 따져 가면서 설명하기는 공간도 부족하고 의과대학 교육용 블로그도 아니니 생략하지만,
현행 약사법상으로는 복제 의약품은 원래 약의 80% 정도의 혈중 농도 변화 추이만 보여도 약효가 동등하다고 판단한다. 잘 봐라. 절대로 임상적 효과(속칭 약빨)가 기준이 아니라 혈중 약물 농도의 변화로 판단한다. 뭐 감기약 같이 안 먹으면 낫는데 7일 걸리고, 먹으면 낫는데 1주일 걸리는 약들은 별 상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혈압 약같이 먹으면 거의 평생 먹게 되는 약들[각주:3]의 경우에는 이게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막말로 약빨도 안 듣는 약을 돈 써가면서 먹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혹시 이렇게 말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저 정도면 효과가 비슷하니까 국가에서 인정해주는 것 아닌가요? 이렇게 말하는 당신, 너무 순진하게 세상을 산다. 현행 약사법 기준은 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미흡하기 짝이 없는 기준이다. 특히 신약 임상시험의 기준에 비교해보면 말이다. 신약을 계발할 때는 3상 임상시험을 거치게 된다. 제1상은 정상인을 기준으로 이 약이 체내에서 어떻게 흡수, 대사, 배설 되는지와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는지 유무를 집중적으로 보게 된다. 제2상은 대부분 약의 용량과 그 효과간의 관계에 집중해서 확인하고, 제3상시험은 기존의 치료약과 신약과의 효과를 비교하기 위해서 시행한다.
이러한 임상시험은 대부분 최소 10년 이상의 기간을 거쳐서 시행되는 것이 대부분이며, 막상 제1상, 2상을 통과하더라도 제3상에서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기존 약물에 비해서 나은 점이 없다고 간주되면 통과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렇게 어렵게 통과하더라도 막상 초기에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이 나오거나 할 경우에는 자동적으로 시장에서 철수하게 된다[각주:4]. 그런데 이런 것을 보고 나서 현행 복제약의 약사법 기준이 맘에 드시는가?
나는 도저히 못 믿겠다.
 
이런 점은 의사들도 마찬가지인지 성분명 처방을 하려면 지금은 도저히 못 믿겠으니 약효 동등성 시험을 빡세게 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이럴 경우 제약회사가 추가로 부담하는 돈은 작살나게 증가한다. 그리고 약값도 작살나게 뛰겠지.
어찌되었건 간에 의사들은 제약회사 로비도 있지만, 자신이 직접 써보고 약의 사용 여부를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제약회사 로비가 좋아도, 환자가 안 나아서 병원 말아먹을 지경이 되었는데도 효과 떨어지는 약을 쓰겠는가? 미치지 않고서야 어림도 없지.

자 그렇다면 왜 성분명 처방을 하면 건강 보험 재정이 좋아질까? 이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김대중 정권 때 시행하였던 의약분업에 그 기원을 둘 수 있을 것이다. 의약분업 이전에는 의사가 환자도 보고 약을 팔면서 장사하던 시절이라, 약효가 그럭저럭 괜찮고 자기 마진을 늘릴 수 있는 약을 기초로 진료했던 것이 일반적 경향이었다고 여기시면 되겠다. 그러나 의약분업 이후로는 의사들은 약에서 이익을 남길 필요가 없게 되었고, 그에 따라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괜찮았던 약이나, 약효가 가장 좋은 약을 중심으로 처방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복제약이 아닌 오리지널 약에 집중되게 된다. 예전처럼 약으로 이익을 남길 수도 없으니 과감히 비싼 약들을 써대기 시작한 것이다. 어차피 약국에 내는 돈은 의사가 책임지지 않거든.
이러한 새로운 경향성에 발맞추어 건강 보험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주 허리가 휘어진다. 카피약 한알에 원가 5~10원하는 것도 널렸는데 굳이 한알에 100원 가까이 하는 약을 미친 듯이 의사들이 처방하기 시작한다. 그나마 항생제나 감기약 같은 단기간만 사용하는 약은 괜찮다. 고혈압 같이 대개 적어도 1달 간격으로 처방해버리는 약을 오리지널 약으로 처방하면 이건 뭐 건강보험으로서는 속수무책이다. 그렇다고 보험을 안 해줄수도 없고. 그러나 이 것은 약품명 처방이기에 가능한 짓이다.
성분명 처방을 시행하면 어떻게 될까? 국가에서야 '환자의 약의 선택권을 늘리기 위해서 시행한다!'라고 주장하지만 개뿔이. 환자가 어떤 약이 가장 좋은지 어떻게 아는가? 설마 모든 환자가 SCI 논문의 수많은 약동학, 약역학적 수치와 임상 시험 결과를 해석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걸 알면 의사가 필요 없지. 아마도 실제로 약을 싸주는 약국에서 가장 마진을 많이 남길 수 있는 약이 될 것이고, 이는 지금보다 오리지널 약을 쓰게 될 확률이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국가가 부담할 금액의 감소를 뜻한다. 가장 비싼 물건이 가장 이익이 많이 남는 물건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더군다나 어느 약국은 약값이 비싸다더라는 소문이 나게 되면 장사에 치명타를 입게 되지 않겠는가 적절한 수준에서 조절하겠지.
또한 약사는 병의 경과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나마 의약분업 이전의 의사가 손님이 안 끊기기 위해 약효를 생각했던 것마저 할 필요도 없고, 그 능력도 없으므로 그야말로 가장 마진이 큰 약을 선택할 가능성이 급격하게 증대하게 될 것이다.

사실 현행 의료제도에서 성분명 처방하는 것으로는 의사들이 큰 재정적 타격 안받는다. 제약회사 세미나 찬조비건 리베이트 비건 다 끊겨도, 카피약이건 오리지널 약이건 어차피 보험 수가는 동일하게 받는 것이고, 이 경우에는 지금도 심화되고 있는 비급여 진료에 집중하는 의료행위를 좀더 심하게 할테니 의사로서의 자존심만 아니면 상관 없다. 다만 이번의 성분명 처방은 의사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뭐 그것마저 밥그릇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당신 자유다. 나중에 약빨 안 듣는다고 불평하지만 마라. 하려면 의사의 진단과 치료가 틀렸음을 의학적으로 증명하는 자료를 들고 와서 의료소송에서 이긴 뒤에 하던가.

  1. 격렬하기는 개뿔이, 그때 의사협회에서 대여섯명 구속될 각오하고 더 빡세게 했어야 했다. [본문으로]
  2. 병원에서 쓰지 않던 약을 처음으로 쓸 때 사례금으로 주는 비용 [본문으로]
  3. 생활습관변화를 빡세게 하면 끊을 수도 있지만, 수십년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 이러기 쉽지 않지 [본문으로]
  4. 이를 두고 제4상 임상시험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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