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ning
이 글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2007년 본과 4학년 교육과정중 '환자-의사-사회 6' 과목의 세부 교육 과정 '통합사례 토론'의 과제물로서 작성된 글입니다. 개인의 의견이므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교육 방침 및 목표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혹시나 이 글 그대로 긁어 붙이시지 않도록 미리 경고합니다.

현대 의학은 과학과 기술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왔고, 예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경지에 올라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의학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여러 질병들이 잔존하며, 그 중 하나가 암이다. 현존하는 그 어떤 질병보다도 많은 인력과 자본을 암 연구에 사용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완전한 암 정복의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현존하는 암 치료법의 대다수는 상당한 부작용을 갖고 있어서, 환자가 부작용을 견디지 못해 치료를 포기하는 일이 있을 정도로 현대 의학에서의 암 치료가 가야 할 길은 요원해 보인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많은 암 환자들은 기존의 의학적 치료 외에 여러 보완대체요법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며, 우리나라와 같이 전통 의학이 나름 한 갈래의 의학으로 인정받는 현실은 더욱 이를 부채질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사정에만 기인하는 것일까?

 

환자가 보완대체요법을 선택하는데 있어서는 기존의 의학적인 치료에서 충족할 수 없는 무언가를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도 비약은 아닐 것이다. 우선 환자는 기존의 의학적인 치료로는 완치가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비록 그 기전이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론 체계가 그럴 듯한 보완대체요법을 선택할 수 있다. 어차피 가능성이 낮다면 그나마 완치 가능성을 호언장담하는 보완대체요법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보완대체요법의 시행자들은 자신의 효과를 과도하게 포장하여 광고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환자의 이런 기대감은 더욱 커지게 된다. 그러나 이런 일말의 가능성과 기대감만으로 환자가 보완대체요법을 택한다고 보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다. 특히나 암과 같이 현대 의학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이 아닌 질병에서도 보완대체요법을 받는 환자가 많다는 현실을 고려해 볼 때, 단순히 환자의 무지로 돌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의료계에서의 잘못은 없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의사들이 전문적이고 연구에 헌신하지만, 윤리적인 면에서 떨어지고 친절하지 않으며, 친밀성이 낮다고 생각한다는 통계 조사 결과가 의미하는 것처럼, 의사 집단은 발달한 의술만큼의 전문성은 더 갖추었지만, 이를 일반 환자들에게 이해시키기는 더욱 어려워졌다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충분한 설명에 근거를 둔 동의에 기반을 두고 모든 시술을 행한다고는 하지만, 과도한 업무량으로 인해서 현실적으로 이것이 지켜지는 요원한 일이며, 이는 더욱 현대 의학을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더군다나 이런 식으로 한번 잃은 신뢰관계는 그 이후에 추가되는 수 많은 시술들로 인해서 더욱 큰 불신감을 유발하며, 점차 환자들이 의학이 아닌 보완대체요법을 택하도록 유도하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보완대체요법이 효능이 있다면 이것이 궁극적으로 환자에게 이로울 수 있으나, 문제는 보완대체요법의 효용성을 주장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에 있다. 실제로 현대 의학은 수많은 보완대체요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끊임없이 검증하고 근거가 있는 것은 받아들이고 부족한 것은 쳐내는 방향으로 발전을 거듭해왔다. 이러한 의학의 역사적 전통을 숙지한 의사들에게 보완대체요법이란 아직 채 검증도 받지 않았거나, 심지어는 근거 없는 것으로 판명된 사이비 의술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하고 이를 시도하는 환자를 타박하여, 환자-의사간 치료적 동맹의 형성을 저해하거나 파괴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대다수의 보완대체요법은 상업적인 이윤을 위해서 시행되는 경우가 많고, 이는 의사에게 있어서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만들어서 더욱 보완대체요법을 무시하거나 이에 대한 강렬한 적대감을 품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의사들의 성정은 더욱더 환자가 보완대체요법에 대한 대화를 시도할 수 없도록 만들어서, 결국에는 의사의 상담을 받지 않고, 몰래 보완대체요법에 의지하거나, 이를 병행하도록 유발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이 임상에서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과연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만약 환자가 충분한 이성과 뛰어난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과학적인 근거를 대어 설득하여 보완대체요법을 중지하도록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기 암 환자와 같은 경우에는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이고, 이에 따라 이러한 이성적 대처가 통하지 않을 수 있다. 더군다나 현재와 같은 의사들의 보완대체요법에 대한 태도는 환자가 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조차 없도록 만들기 때문에, 사실상 이와 같은 방법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실제 임상에서 이와 같은 경우에 직면한다면 무엇보다도 우선할 것은 환자와의 치료적 동맹을 공고히 하고, 자신은 보완대체요법에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의사가 아니라는 면을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 자신의 보완대체요법에 대한 신념이 어떠하건 환자가 의사와 대화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보완대체요법을 중지하도록 설득하거나 병행하더라도 의사의 감시하에 행해져야만 환자의 궁극적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보완대체요법은 현대 의학에 의한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가까워질수록 이에 의존하는 경향이 증대하는 만큼, 현재와 같이 말기 환자라고 생각되면 무조건적으로 치료를 중단하기보다는 통증 경감과 같은 고식적인 치료와 호스피스와 같은 정신적 지지를 계속해서 환자에게 행하여 마지막 임종의 순간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주어야 할 것이다.

 

분명 현대의학은 이전에 볼 수 없을 정도의 눈부신 성과를 내고 있으며, 이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의해서 앞으로도 더욱 증대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분명히 현대의학의 한계를 인지하고 단순히 생의학적인 모델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도 의사가 떠맡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할 때, 더 많은 환자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써 존엄하게 임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