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er, remember, the fifth of november
Gunpower, treason and plot.
I see no reason why gunpowders, treason
Should ever be forgot.

튜더 왕조의 마지막 군주였던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어받은 제임스 1세시대.
스코틀랜드의 왕이었던 그는 엘리자베스 1세이후 끊긴 튜더 왕조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의 왕위를 겸하게 된다. 당시 영국 사회는 성공회와 청교도, 카톨릭이 혼재되어있는 상태였고, 그는 이러한 종교적인 이유로 빚어진 혼란상을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방안을 창조해낸다.

성공회는 그대로 두고, 카톨릭은 교황대신 왕[각주:1]에게 충성을 다하며, 청교도는 그 예배 양식을 성공회에 맞추라는 나름 창조적인 방안을. 그리고 이것은 당연하게도 미친 듯한 반발을 불러 일으켜서 그는 아주 재미있는 별명을 얻게 된다.

The wisest fool of the Christiandom
직역하자면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현명한 바보라는 말일 텐데, 나름 야심차게 발표한 계획이 각 종파들 간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것이어서 그럴 것이다. 어찌되었건 이러한 국왕의 조치는 사회 각 계층의 미칠듯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그 중 한명이 기어코 일을 내고 만다. Guy Fawkes 혹은 Guido Fawkes라고 불리우는 이가 바로 그이다.

Guy Fawkes는 일련의 동지들과 함께 11월 5일 영국 의회를 국왕과 함께 폭약으로 통째로 날려버리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이 것은 시행 직전 배반자의 고발에 의해 국왕과 그 수하에 걸려서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고 이후 카톨릭은 피의 숙청이라는 고난의 가시밭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국왕 암살이 실패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11월 5일은 영국내 아무 곳에서나 불꽃놀이를 할 수 있도록 허가한 것이 지금까지 내려와 매년 11월 5일이면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 국가들에서는 거대한 폭죽들이 하늘을 수 놓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Guy Fawkes Day가 단순히 여기에서 끝이 난다면 이것은 물건너 영국애들의 이상한 풍습으로 간주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진실이 무엇일지는 모르겠으나 Guy Fawkes를 비롯한 악당(?)들[각주:2]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영국 왕실을 통째로 날려버리겠다는 그 원대한 목표는 둘째치고, 그 계획은 일국의 국왕을 시해하려는 그 음모의 중요성과는 달리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그 직전에 배신자에 의해 밀고되어 체포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 정황상 과연 밀고자가 있기는 했나라고 되물을 정도로 수없이 많은 증거물을 남긴 어설픈 음모극이었다고 한다. 즉, 이 Gunpowder plot은 카톨릭 세력의 숙청에 대한 명분을 삼기위한 고난이도의 음모에 대한 역공작이라는 음모론이 솔솔 피어오른다. Gunpowder plot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영국 왕실은 이를 역이용하기 위해서 방치해두다가 극적인 순간에 잡아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Guy Fawkes 자체가 국왕의 심복이었으며, England내에서 입지가 좁은 James I를 위한 정치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영국 왕실에서 기획한 음모라는 주장을 펼친다. 즉, Guy Fawkes를 내세워 카톨릭 세력들을 규합한 후에 모조리 처리함과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취약한 입지를 다진다는 2중음모라는 주장이다.

어찌되었건 당시 영국 내에서는 James I에 대한 인기가 좋지 않았던 모양인지 일련의 Nursery Rhyme이 널리 불러지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 바로 가장 앞 문단의 시가 바로 그것이다.


기억하라, 기억하라, 11월 5일을
화약과 반역죄와 음모를.
나는 도대체 모르겠다.
화약과 반역죄가 왜 잊혀져야만 하는지를.

그리고 이러한 음모론들이 뒤섞여서 Guy Fawkes란 인물은 독특한 성격을 나타나게 된다. Guy Fawkes Day때 국왕의 무사함을 안심하고, 그 어리석음을 조롱하기 위한 Gunpower Plot의 상징물로써 비웃음 당하는 한편, 다른 한편에서는 이상주의자로 비춰지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국왕의 충복으로 비난받는 세계 역사상 그 어디를 찾아보아도 유래없는 전혀 상반된 평가를 한 몸에 받게 된다.

이러한 Guy Fawkes의 기괴한 면들은 현대에 와서 영화 'V for Vendetta'로 이어진다.

암울한 독재사회에서 민중을 일깨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V는 이전의 영웅들과는 사뭇 양상이 다르다. 그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 어떤 잔혹한 짓도 가리지 않으며, 기괴하게 뒤틀려 웃고있는 Guy Fawkes의 가면을 쓰고 신출귀몰하게 활동한다. 결국 영화 자체는 V의 죽음으로 촉발된 민중의 각성을 배경으로 끝이 나지만.

그리고 나는 오늘 12시에 있었던 제야의 종 타종 행사에서 매우 재미있는 것을 보았다. 정부와 방송국이 마련한 타종 행사에서는 웃음과 환호, 박수 소리가 가득메우고 있는데, 바로 그 바깥에서는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정권 퇴진 집회를 벌이고 있는 것을.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나는 촛불 집회는 멍청하기 이를데 없는 바보같은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러한 시민들의 움직임을 보도하는 것도 방송사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 방송사는 전경버스로 둘러싸여있던 행사장만을 비추며 그 광경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어쩌면 수없이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우리나라에도 한편의 시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기억하라, 기억하라
1월 1일을
  1. 성공회의 수장은 대대로 브리튼 연합 왕국의 수장이 맡게 된다. 즉, 국왕이다. [본문으로]
  2. Gunpowder Plot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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