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수년전부터 미쳐가는 건강보험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온갖 미친 짓을 마져않던 정부가 드디어 또 한가지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포괄 수가제


간략히 설명을 하자면 현재 의료 행위는 각 검사, 시술 하나하나 마다 돈을 메겨서 환자에게 부과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질병에 따라서 보험이 적용되는지, 환자가 일부분을 부담하는지 여부가 결정되기는 하지만, 간단히 일반 식당에서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골라서 먹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렇다면 포괄 수가제는 무엇인가?

어떠한 질병이 있으면, 그 질병은 얼마 이내의 돈에서 해결을 하라는 것이다. 간단히 부페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내가 10인분을 먹던 1인분을 먹던 똑같이 돈을 내고 먹는.


포괄 수가제의 장점은 무엇일까?

환자 입장에서 가장 큰 장점은 의료비의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각 질환 별로 가격이 정해져있고, 이는 건강 보험으로 진료하는 모든 병원에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것이므로 안정적으로 계획을 잡을 수 있다.

보험 공단의 입장에서는 의료비의 예측과 절감에 도움이 된다.현재까지 년간 통계를 잡아서 대략 얼마정도 들 것인지 예측이 편하므로 예산 집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경제적인 면 말고 의학적인 면에서 본다면?


사실 난 이에 대해서 굉장히 회의적이다.


물론 현재도 의사들 중에 비양심적인 사람이 많다는 것도 인정하고, 과잉 진료가 행해지고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러나 이를 잡기 위해서 포괄수가제를 적용한다?


우선 과잉 진료에 대해서 보자.


과잉 진료는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환자에게 필요없고, 의사 및 병원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시행하는 진료의학적으로 환자에게 필요하지만 보험 공단에서 돈이 없기 때문에 과잉 진료로 삭감하는 경우다. 그리고 현재 국립대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입장에서 본다면 적어도 이 곳에서는 후자가 대다수이다. 


아마 의료계에 관련되지 않은 대다수의 분들은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내가 국가에 돈을 내고 건강 보험 혜택을 받는 것인데 국가가 환자에게 좋은 것을 하지 말라는 것이 말이 되냐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쉽게도 그렇다.


애초에 건강 보험이라는 것 자체가 모든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최선의 진료를 다하도록 설정된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죽지 않을 정도의 적정선에 있는 정도의 진료만 하도록 설정된 것이라 그렇다. 왜 그러냐고?


문제는 돈이다.


의학이라는 분야 자체는 기본적으로 굉장히 돈이 많이 들어간다. 단순한 약값에서부터 수술에 필요한 재료비, 수술 기구 등은 그냥 자본의 집합체라고 생각하면 된다. 정형외과적 영역에서 본다면 우리가 수술할 때 쓰는 드릴 같은 것들도 의료용으로 개발이 된다면 시중에서 파는 전동 드릴에 비해서 수배에서 수십배에 달하는 가격대를 자랑한다. 사람의 몸에 직접 닿는 물품이므로 화학적, 물리적 안정성이 입증된 재료만을 사용해야하고 그 기준에 맞춰서 물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마취할 때 쓰는 허접하게 생긴 젤리 베게하나도 30~40만원을 호가한다고 하니.


그렇기에 정말로 비용을 생각하지 않고 최상의 진료를 한다고 가정하면 그 비용은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몇개월전 말이 많았던 내시경 재료 비용 문제도 결국은 돈 때문에 수입사에서 수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것이고. 그렇기에 cost-benefit[각주:1]의 문제를 따져가면서 어떠한 시술을 할지 결정을 하게 된다.


즉, 의학적으로 최선인 사항이 사회 전체적으로는 최선의 사항이 되지 않는 것이다. 좀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생존가능성이 극단적으로 희박한 말기 암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 국가 차원에서 때려붓는 돈이면, 감기 환자 수백명을 진료할 수 있다. 가족들까지 다 포함해서 보더라도 4표를 얻을 수 있는 기회와 수백-수천표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생각해본다면, 정치인들이 어떠한 정책을 펼칠까?


그리고 이러한 의학과 사회 구조와의 괴리를 해결하기 위해서 각국의 정부는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괴리를 개인의 능력으로 해결하라는 자유방임적 태도에 한없이 가까운 나라가 바로 미국[각주:2]이고, 사회적으로 엄격하게 통제하여 죽을 병이 아니면 죽지 않을 정도로 치료 받고 살아라는 태도를 가진 나라 중 하나가 바로 영국이다.


그렇다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포괄 수가제가 되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비록 내 자신이 의사고, 대다수의 의사가 양심적으로 진료를 한다고 믿기는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무한정이고 그 선의를 무조건 믿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법과 제도라는 것이 있고.


사실 지금의 의료 수가 문제도 말이 많은데, 이의 개선없이 포괄 수가제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선 다음 항목을 확인해주기 바란다.

1. 나는 젊다.

2. 나는 이전에 특별한 병이 없었다.

3. 나는 건강 상의 이유로 약을 복용하고 있지 않다.

4. 나는 이전에 수술을 받기는 했으나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이 항목에 모두 해당하는 사람에게는 축하의 말씀을 전하겠다.

그나마 여러분은 지연되지 않고 수술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을 조금이나마 갖게 되었다.


만약 당신들이 늙고, 병에 걸려서 약을 3, 4개씩 복용하고 있는데 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여러분은 병원을 전전하다가 국립대병원에 가서 무한정 대기를 하고 있어야 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만약에 당신들이 의사라고 가정해보자.

내가 젊은 환자의 맹장 수술을 하나, 나이 먹고 골골대는 노인의 맹장 수술을 하나 여러분이 받는 돈은 똑같이 100만원이라고 가정한다. 이게 포괄 수가제이므로. 


그리고 여러분은 100만원으로 모든 치료를 끝내야 한다. 젊은 환자는 수술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검사만을 시행하면되고, 대다수의 경우에는 특별한 문제 없이 2일 정도면 퇴원할 수 있다. 그러나 노인이라면 병원에 따라서는 수술 2~3일전부터 입원을 해서 검사를 진행해야 할 것이고, 이미 검사 비용은 젊은 환자의 수 배에 달한다. 더군다나 수술 이후에도 합병증으로 한창 더 입원하고 있어야 할 확률도 높다.


만약 젊은 환자를 수술해서 50만원을 비용으로 쓰고, 남은 50만원을 병원에서 가져갔다고 치자. 그리고 노인 환자를 수술해서 150만원을 비용으로 쓰고, 더 나와버린 50만원은 포괄 수가제니까 보험 공단에서 주지 않는다고 치자.


만약 여러분이 의사라면 어떤 환자를 치료하고 싶겠는가?


노인 환자의 수술 거부를 하는 것이 의료 행위 거부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아쉽지만 의료 행위 거부가 아니다. 

의사가 판단하기에 이 병원에서 하기에는 너무 위험부담이 큰 환자군이라고 생각한다면 상급 의료 기관(개인 의원 - 종합 병원 - 대학 병원)으로 전원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왜나고?

자기가 하는 수술이나 대학 병원에서 하는 수술이나 결과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예측되는 경우에는 상관이 없으나, 시설면에서 그리고 자신의 경험적인 측면에서 환자의 예후가 차이가 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 상급 병원으로 전원시키는 것은 의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합당한 행동이기 떄문이다. 다만 문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할 경우, 환자 입장에서는 내가 돈이 안되서 전원되는 것인지, 의학적으로 위험하기 때문에 전원되는 것인지 알 수 가 없다.


더군다나 대학병원으로 전원된다고 하더라도 그 곳에서 최적의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이미 국립대병원에서도 경영 마인드가 도입되어 수가 절감을 위해서 쥐어짜는 상황인데 사립대병원에서 퍽이나 좋은 재료 사용하겠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말이지 현대-기아 자동차 같은 굴지의 대기업에서도 원가 절감을 위해서 미친 듯이 단가 후려치고, 이로 인한 부품 불량의 문제가 몇번씩이나 방송에 타는 세상인데 일개 자영업에 종사하는 의사가 단가 신경안쓰고 진료할 수 있을까?


의사 인건비 때문이라고? 이미 수술 재료비가 환자에게 받는 수술비를 압도하는 수술[각주:5]도 있는 마당에 의사가 무료 봉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병원 입장에서는 적자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현재 수술하는 병원은 의사 인건비를 뽑기 위해서 외래 진료만 극단적으로 늘릴 것이고 수술은 극단적으로 피하려고 할 것이다. 하더라도 대학 병원에 모두 몰리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하여 지금처럼 수술을 주로하던 병원은 대다수가 경영의 어려움으로 인해서 도산하게 될 것이고, 혹시나 수술을 한다고 하더라도 위의 사례처럼 극단적인 원가 절감을 통한 대륙의 진료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이 계속 축적되면 결국에는 사보험을 통한 의료 민영화의 물꼬를 트게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보험을 통한다고 하더라도 미국보다는 싸게 먹힐테니까[각주:6].


이 미친 실용정부는 드디어 지옥문을 열었다. 미리 보험은 들어놓으시고 운동 꾸준히 해서 건강 챙겨두시길 바란다.


국민 여러분의 건투를 빈다.



  1. 비용-이득간 관계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비용은 경제적인 것 뿐만이 아닌, 이 시술을 함에 있어서 합병증의 발생 가능성 등도 모두 포함한다. [본문으로]
  2. 오바마 행정부 집권 이래로 이를 무너뜨리고 전국민 건강 보험 제도의 도입을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번번히 반대편에 밀리고 있다. [본문으로]
  3. 간단히 설명하자면 3층으로 되어있는 조직을 이전에는 1겹 1겹씩해서 3번 꼬맸었는데 지금은 그냥 3층으로 되어있는 조직을 1번에 꼬맨다는 소리다. 당연히 전자가 훨씬 안전하다. [본문으로]
  4. 피부 절개선의 최소화를 위해서 실을 안으로 넣어서 꼬매는 방법이다. 절개선의 양 끝에 매듭이 있고 매듭을 잡은 후 실을 잡아당기면 실이 빠져나온다. 문제는 이렇게 하려면 실이 미끄러져야하는데, 아래에서 말한대로 이물 반응이나 염증이 심하면 실이 빠져나오질 않아서 저렇게 못 꼬맨다. [본문으로]
  5. 금속내고정물 제거술이 대표적이다. 정형외과적 수술을 했을 경우 뼈에다가 흔히 말하는 철심이나 철판을 박아놓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제거하는 수술을 의미한다. 감염 방지를 위해서 1회용 소독포를 사용할 경우 수술 재료비 값도 안나오는 수술이다. [본문으로]
  6. 아닌게 아니라 병원에서 일하다보면 미국에서 수년간 살다가, 수술 받으러 한국 들어와서 몇개월치만 건강 보험비 내고 보험 적용받는 경우가 왕왕있다. 실제 건강 보험 재정이 문제라면 저러한 것들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다. 모럴 해저드가 별건가. 저런게 모럴 해저드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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