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의 민족사의 굵직한 사건을 대하 소설로 그려 낸 조정래 작가의 신작 정글만리가 출간되었다. 이전부터 네이버 캐스트에서 연재되고 있다는 소식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연재를 기다리지 못하는 성격상 기다렸다가 출간된 직후 주문하여 읽어 보았다.


이전까지의 그의 소설들이 한민족의 상처를 헤집어 내며 보듬어 주었다면, 정글만리는 산업혁명 이전까지 단 한번도 세계 최강의 위치를 놓치지 않았던 중국 땅을 무대로 전대광, 김현곤, 송재형, 리옌링의 4명을 중심으로 줄거리가 펼쳐 가며 미래를 더듬어 내는 책이다. 그리고 이전까지의 그의 소설에 비하면 졸작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사실 그전의 소설들도 전개라던가 사실 확인의 측면에서 종종 공격을 받기는 했으나, 이번 소설은 '꽌시'라는 것으로 대변되는 Deus ex machina적인 면이 너무 심하다. 중국 특유의 봉건적, 관료제적 문화라는 것을 이용하여 사건을 전개하는 것 자체야 현재 중국을 무대로 하는 것이므로 당연한 장치이나 밑도 끝도 없이 '저쪽 꽌시에 밀렸다!'라던가 '이쪽 꽌시가 손을 놓아 해결되었다.'라는 등의 전개는 마치 유희왕에서의 destiny draw[각주:1]를 보는 듯 하다.


더군다나 작중 중국인 관료의 입을 빌어서 내어놓는 말이기는 하지만 티벳, 신장-위구르 지구, 내몽골 지구,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등에 중국의 영토 침탈 및 분쟁에 대한 의견은 이전 레이 황의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하다'라는 오만하고 중국 중심적인 책을 다시 보는 듯하여 기분이 나쁘다.


본인의 생각으로는 조정래가 아닌 다른 이가 썼다면 아마 이 정도로 찬사를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십 년간 쌓아 올린 거장의 헛된 붓질과 같은 느낌이라 씁쓸한 기분만 든다.

  1. 운명을 가르는 카드 뽑기. 말은 거창하지만 지금 당장 나와야 하는 패를 골라 내는 것을 말한다. 싸 놓은 똥을 때마침 뒤집은 똥광으로 쓸이하면서 쓰리고를 막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되려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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