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환규 전 의협회장이 의사 성범죄와 관련된 원혜영 의원에 대해 언급하면서 풀무원 불매 운동이라는 글을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했다. 일단 의사이자, 정형외과 전문의로서 의협이건, 정형외과 학회 차원에서건 처음 들어보는 풀무원 불매 운동이 언제부터 그렇게 의사들 사이에서 퍼졌는지도 궁금하고, 전체 국민 중 한줌도 안되는 의사 집단이 불매운동한다고 얼마나 큰 이익을 얻을지도 궁금하지만[각주:1] 우선 원혜영 의원이 무슨 법안을 냈는지나 보자. 

 

국회 홈페이지의 입법예고 시스템에서 보면 의료 행위와 관련된 성범죄의 경우 형이 확정될 경우 의료인의 결격 사유 항목에 포함되어 면허를 박탈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이다. 이에 대해서는 원론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도 모든 의료인은 의료기관 취직시 성범죄 기록을 조회해서 자신이 성범죄와 연관 없음을 증명해야만 한다는 것과 성범죄 관련[각주:2]하여 벌금 이상의 형이 확정시 10여년간 면허 정지가 된다는 유사한 처벌 규정이 있다는 점으로 과잉 처벌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뭐 그러나 이것은 그렇다 쳐도 이보다 더욱 위험한 것은 흔히 꽃뱀이라 부르는 범죄자 들에 의해 악용될 수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으며, 이의 방지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의사의 신체 검진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정형외과 의사로서 해야할 신체 검진 중에서 정말로 하기가 싫고 꺼려지며 가능하면 하지 않았으면 하는 신체 검진이 있다. 구해면체 반사(Bulbocavernous reflex)라고 하는 것이 그것인데, 간단히 설명하자면 환자의 항문에다가 의사가 손가락을 꼽고 남성의 경우 귀두, 여성의 경우 클리토리스를 꽉 움켜쥐어서 항문 괄약근이 수축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주로 시행되는 상황은 큰 외상으로 인해 척수 손상이 의심되는 환자가 정말로 척수가 완전히 손상되서 돌아올 가망성이 없는 것인지, 그게 아니면 일시적 쇼크로 아직 회복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를 파악하는 중요한 검사이기는 하다. 중요한 검사 이기는. 

 

근데 정형외과 전문의이지만 솔직히 이거 여성 환자에게는 할 자신이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만 전공의 시절 이러한 완전 척수 손상이 의심되는 환자의 응급실 진료는 단 2번 밖에 없었고, 다행히 둘다 남자여서 이 신체 검진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시행하였지만 여성 환자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명확한 앞뒤 상황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지 않아서 정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없지만[각주:3] 유사한 사례로 문제가 되었던 뉴스가 있는 것을 보면, 이거 내가 아무리 설명을 잘 해도 재수없으면 뒤집어 쓰겠다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더군다나 의사와 환자만 있는 진료실에서 악용하기로 마음먹은 꽃뱀이 갑자기 난리치면서 성추행 당했다고 소리치면서 진료실에서 뛰쳐나가면 이것 어떻게 해결하나? 정말로 미친 의사 새끼가 강간을 해서 체모나 정액을 비롯한 체액 등의 물질적 증거가 남지 않는 이상, 성추행 같은 경우에는 명확한 물질적 증거가 있을 수가 없는데? 더군다나 현재 법상으로는 진료실 내 CCTV 설치는 불법[각주:4]이고, 간호사 동석하더라도 참고 의견 정도로만 받아들이지 명확한 증거 수준으로는 채택해주지 않는데?[각주:5] 

 

의사는 아니지만, 여고생 치한으로 몰린 무고한 피의자의 억울한 사연 및 무죄 추정의 원칙 따위는 씹어드신 옆 나라 사법 체계에 대한 비판적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만 보더라도 성추행의 범죄 성립과 무죄의 입증이 얼마나 힘든가를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텟페이와 무고하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발당한 의사와 차이가 무엇인가?  

 

원론적으로 의료 행위 중 성범죄를 저지른 자가 의료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형법의 원리 중 하나는 '100명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만약 이 법안을 통과시킬 것이라면, 적어도 진료실을 비롯한 모든 의료 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의 영상 및 음성 기록 가능한 CCTV 설치를 의무화[각주:6]하고 무고시 무고한 자에게 동일한 수준의 처벌을 요구해야만 할 것[각주:7]이다. 의사를 비롯한 의료인들이 원죄를 저지른 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의사에게도 블랙 박스는 필요하다.

  1. 정말로 진지하게 풀무원 불매 운동을 하겠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의사 관둬야 되는 인물이다. 그 정도로 떨어지는 지능가지고 어떻게 의료행위를 하나? [본문으로]
  2. 의료 행위와 관련 없어도 이는 성립된다. 병원 밖에서 성매매를 하다 걸려서 벌금을 물어도 해당된다는 말이다. 수없이 난립한 불법 안마 시술소나 손녀 같은 골프장 캐디 가슴을 손가락으로 찌르거나 난교 파티를 벌이는 모 정치인들과 비교하면 참 강력한 윤리적 기준을 요구한다. [본문으로]
  3. 만약 완전 척수 손상이 의심되었다면 환자가 미친 것이고,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의사가 성범죄자인 상황이다. 이 기사만 놓고 보았을 때는 명확한 판단이 불가능하다. [본문으로]
  4. 엄밀히 따지면 불법은 아니고 환자 동의를 얻으면 촬영 가능하다는 유권 해석까지는 얻어낸 상태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모든 환자에게 이러한 것에 대한 자세한 설명 및 동의서를 받는 것이 가능한가 여부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5. 더군다나 일반 개원가의 경우, 경영상의 문제로 간호사가 동석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내가 있는 곳만해도, 나름 병원급 의료 기관이지만 외래 간호조무사 1명이 진료실 2개를 커버하느라 동석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본문으로]
  6. 사실 이 CCTV 설치는 의료인 폭행 등의 문제로 이전부터 의료계에서 요구하던 상황이었으나 환자 사생활 침해 가능성 등으로 법안 상정을 거부하고 있다. 그나마 대리 수술 등의 문제로 수술실에는 설치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기는 하지만, 같은 논리라면 진료실에 설치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신체 노출 정도 등을 따지면 수술실이 진료실보다 훨씬 더한데? [본문으로]
  7. 하다못해 픽션이기는 하지만 '타짜'만 보더라도 구라치다 걸리면 손모가지 날아간다는 교훈을 안겨준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