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8일.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 여성 정치인이 죽었다. 누군가는 브리튼 연합 왕국[각주:1]의 만성 경기 침체를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해결하고 포클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철의 여인'으로 기억하며, 다른 누군가는 아이들의 급식에서 우유까지 빼는 무지막지한 복지 삭감과 노조 탄압, 인두세 도입으로 서민층을 쥐어짠 '마녀'로 기억한다. 뭐 내가 그 시절 UK에 살고 있던 것도 아니고, 삼청동에 사시는 모 여사분이 '철의 여인' 드립 치는 것 말고는 나와는 큰 접점은 없었던 역사 속 인물 정도로만 기억되는지라 사실 별 관심은 없었다. 


그런데 당시 큰 충격을 주었던 노래가 있었다. 이미 한참 전 개봉한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 삽입된 노래 'Ding dong! The witch is dead![각주:2]'가 그것이다. 그리고 저 노래를 시작으로 내 정신을 강력한 펀치를 두들기는 사건들이 연달아 이어졌다. Margaret Hilda Thatcher[각주:3]의 죽음을 축하하며 샴페인을 터뜨리는 민중들과 장례식에 반대하는 시위대의 구호 '장례식을 민영화하라[각주:4]!', 운구 행렬이 지나갈 때 등을 돌리는 시위대가 그것이다. 표현의 자유 및 그 수위에 대해서는 평균적인 대한민국 사람보다 훨씬 더 관대하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들의 고인 드립[각주:5]은 대한민국에서 30여년을 살아오면서 무의식적으로 주입되었던 성리학에 기초를 둔 유교적 꼰대니즘의 잔재를 '와, 씨발 저게 가능하구나.'라는 경탄과 탄식만 나올 정도로 혹독하게 두들겼다.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둡다고, 이러한 고인 드립이 UK에서만 공공연히 벌어지는 것은 아니더라. 비록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만 주로 벌어지기는 하지만[각주:6], 다른 모든 인터넷 커뮤니티의 공공의 적이자 그 강력한 공격들을 모두 성공적으로 방어하여 철벽의 보안을 자랑하는 '일간 베스트'의 온갖 고인 드립이 그것이다.


그들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기일에 '盧스데이', '중력절[각주:7]' 거리면서 카톡 기본 프로필을 거꾸로 돌려놓기도 하고, 광주 민주화 운동 사망자의 시신이 관에 담겨 유족에게 전달되는 사진을 두고 '홍어 택배'라고 싸질렀다가 법정에 서기도 하는 등 사회 통념상 과하다 싶을 정도의 고인 드립을 신나게 치고 있다. 당연히 이에 대한 반발로 정치적으로 반대쪽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공격을 받으며, 일부 사람들은 이들을 '일베충', '일베 버러지' 등으로 비하하며 저 사이트 자체를 폐쇄[각주:8]해야만 한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할 정도이니 그 동안 끌어온 어그로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잠깐 과거로 눈을 돌려보자. 예전 한반도에는 '팽형'이라는 잔혹한 형벌이 있었다. 삶을 팽(烹), 형벌 형(刑)을 쓰는 이 형벌은 말 그대로 죄인을 큰 솥에 집어넣고 삶아 죽이는 것[각주:9]이었다. 조선 시대 이전까지는. 그러나 조선 시대에는 형벌이 너무 잔혹하여 이를 순화 및 변형시켜 시행하였다. 

우선 커다란 솥과 이에 들어갈 죄인을 준비하는 것, 죄인이 솥에 들어가는 것 까지는 동일하였다. 그러나 그 전의 팽형이 정말로 물이나 기름을 끓여서 삶거나 튀겨 죽였던 것에 비해서, 조선 시대의 팽형은 죄인이 솥에 들어가면 바로 불을 붙인다. 화력 좋은 장작 같은 것이 아니라 지푸라기 같은 것으로. 그리고 그 불이 꺼지면 유족(?)들은 팽형을 당한 죄인에 대해 곡을 하고 집으로 데려 갔다. 

물론 커다란 솥을 달구지도 않았고 지푸라기에 불 조금 붙였다가 끈 것이니만큼 실제로 죽었을 리 없다. 그러나 팽형 이후의 대접이 더욱 가관이다. 관아에서는 삶아 죽였으니 호적에 죽은 사람으로 등록한다. 현대로 보자면 사망 신고서를 접수하여 주민등록이 말소된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죽은 사람이니 밖으로 나돌아 다닐 수 없다. 모든 사회 활동은 자동적으로 정지된다. 간혹 밖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럴 경우 이웃 주민들에 의해서 시체가 걸어다닌다며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죄인의 신체, 생명, 재산에는 일체 손을 대지 않고 명예와 사회 활동만 거세하는 명예형의 궁극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와 유사하며 조금 더 유명한 것으로 '부관참시'라는 형벌이 있었다. 관에서 시체를 꺼내어 목을 베는 형벌로 이 형벌을 받은 가장 유명한 시체로는 한명회[각주:10]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매망량[각주:11]을 인정하지않고, 사후 세계라는 것은 없다라고 믿는 유교적 사회[각주:12]에서 이미 죽어 형벌을 내려도 고통받거나 참회할 수 없는 시체의 목을 썰다니 도대체 왜 이런 형벌이 생겨난 것일까?

개인주의가 한반도에 들어오기 전까지 가문이라는 것을 내세울 수 있는 계층의 사람은 '가문 ≒ 개인' 생각을 갖던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지금도 남아 있는 '천방지축 마골피'에 대한 일부 몰지각한 이들의 비하나,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뼈대 있는 가문 운운하면서 자랑하는 이들을 보았을 때, 아마 조선 시대에는 더하면 더했지 절대로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추정하는 것이 너무 섣부른 것일까?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부관참시를 한다는 것은 죄인 자체에 대한 명예형임과 동시에 그 인물의 가문 전체에 대한 연대 책임을 묻는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이전 조선 시대에 있어 고인 드립을 치는 것은 그 고인의 명예 뿐만 아니라 그 고인 가문 전체의 명예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 없다[각주:13]고 볼 수 있을 것이며, 이에 따라 해서는 안될 것으로 강력하게 통제되어 왔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문 전체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 이에 대한 보복도 발생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 전통이 유구하게 내려져 온 것이 아닐까? 물론 고인 드립은 이러한 점 외에도 이미 죽은 사람이기에 이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반박할 수 없다[각주:14]는 점이나, 고인 드립이 고인의 명예를 공격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유족들을 공격하는 방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덕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고인 드립이 순수하게 나쁜 백해무익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이러한 고인 드립이 순수한 자연인을 대상으로 행해졌다면 이는 올바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대상이 공인[각주:15]이라면 어떠한가?


인류는 사회라는 것을 발전시키며, 생산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계층을 만들어 내었다. 사제 집단이나 군인들 그리고 정치가들이 그들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 계층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엄격하면서도 까다로운 평가 기준이 적용되었을 것이다. 잉여 생산물을 직접 생산하지 않고 가져가는 만큼 그 가치 평가에 있어 생산자들은 까다로울 수 밖에 없었으리라. 프레이져의 황금 가지에 보면 늙거나 병들거나 불구가 된 왕[각주:16]은 젊은 새로운 왕에 의해서 죽음을 맞았고, 고대 인도의 마하바라타에서도 불구인 자는 원칙적으로 왕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사회가 발달하며 점차 잉여 생산물은 늘어났고, 권력자들은 이를 이용해서 더 큰 권력을 만들어 세습제와 같은 것들을 부산물로 창조하였다. 자신이 세습 받은 권력에 대해서 자신의 Y 염색체 외에는 책임질 일이 없는 권력자들은 극히 드물게 명군이 나오기도 하였으나, 대다수는 그냥 저냥 무난한 편이었고, 최악의 암군도 다수 배출되었다. 물론 이 암군이 정도가 심하다면 같은 Y 염색체를 공유한 이에 의해서 자리를 빼앗기기도 하였고, 경우에 따라서는 새로운 Y 염색체를 가진 이가 국가를 통째로 빼앗기도 하였다. 

이는 한반도의 역사에서도 똑같이 반복되었으며 일제 강점기 직전에는 전주 이씨, 성계의 Y염색체를 물려받은 이들이 조선을 다스렸다. 그러나 조선 왕조에는 이전의 다른 왕조와는 다른 유별난 사항이 있었다. 사초와 사관, 그리고 이들의 작품인 실록이 그것이다.


원칙적으로 사관은 24시간 왕을 쫓아다니며 그의 행실을 시시콜콜한 것 까지 모두 기록[각주:17]하였다. 물론 왕이 이 기록물을 볼 수 있었다면 사관들도 몸을 사리며 좋은 말만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떠한 왕도 원칙적으로는 사초 및 실록을 직접 볼 수 없도록[각주:18] 되어 있었다. 물론 기록이라는 것은 하기만하고 나중에 보지 않는다면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이어서 왕이 '이전에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었는지 찾아보라!'고 어명을 내리면 사관들이 직접 찾아서 그와 유사한 사례를 발췌, 낭독한 적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자기 조상에 대해서 기록한 것이 맘에 들지 않아 괘씸해 했을 수는 있으나, 이미 죽고 없어진 사관을 무슨 수로 처벌할 것인가? 더군다나 이런 이유로 처벌했다면 그 즉시 사초에 업데이트되어 천세[각주:19]의 폭군으로 남을 것인데.

비록 전반적으로 지금에 비하면 사생활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는 중근세 시대였지만, 그 당시 최고 권력자의 사생활까지 병적인 집착으로 보일 정도로 기록을 하고, 이 기록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금속 활판을 이용해서 인쇄를 해서 전국 곳곳에 뿌릴 정도로 집착한 조선 시대의 사관 제도에서 엿볼 수 있는 유교적 관념이 있다. 바로 '멸사봉공(滅私奉公)[각주:20]'의 시대 정신이다.

조선 시대의 왕가를 조선을 다스리는 절대적 권력자 자체의 가계로 따로 보아야 할 것인가 그것이 아니면 사대부의 우두머리 가문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선 시대에서도 말이 많았지만[각주:21], 왕가에는 '홍길동전'으로 잘 알려져 있는 서얼[각주:22]의 차별이 타 사대부 가문에 비해 훨씬 적었고[각주:23], 비록 실권을 잡을 수 있는 벼슬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종친부[각주:24]의 관원으로 아무런 노력없이 먹고 살 수 있는 호구 지책이 있는 등 사대부 가문과는 다른 여러 특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국가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왕은 전세계 역사를 통틀어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사생활이라는 것이 없었다. 

조선 시대의 현군들, 그리고 그 나라의 사대부들에게 왕이란 국가를 다스리는 국가 권력 그 자체를 숭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왕의 인체에 육화시킨 일종의 국가 권력의 공적 상징으로 그 육체의 사적 욕망 따위는 없어야 한다고 믿었던 이들이다. 물론 사극의 '통촉하시옵소서!'로 대표되는 암군의 막장 짓이야 항상 있어 왔지만, 원칙만 따지자면 조선 시대의 왕은 자신의 밥상도 전국 팔도의 식생활이 어떤지 파악해야 하는 난제[각주:25]였으며, 자신의 성생활까지도 그 후대의 왕을 생산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멸사봉공'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조선의 왕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끊임없이 비판 받아야 했고, 왕 자체의 잘못 혹은 사관 자체의 성향에 따라서 그 당시 기준의 심각한 인격 모독 또한 국가의 공적 문서로 받아야만 했던 극한 직업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더 이상 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민주 공화정에서는 이 사관의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


그 이전 삼권분립이라는 개념조차 없어서 재판을 할 때도 '네 죄를 네가 알렸다[각주:26]!'며 문초하던 시대에서도 국가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에 대한 견제는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왕에 대한 견제는 쉽지 않으니 후세를 의식해서라도 폭군짓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현재의 공인들은 어떠한가? 

비록 총리 및 장관들에 대한 인사 청문회가 있기는 하지만 총리를 제하면 두들겨 맞더라도 버티면 임용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며,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는 언론들은 한쪽의 잘못은 은폐하거나 축소해서, 다른 한쪽의 잘못은 과도하게 포장해서 내보내는 것이 현실이다. 더군다나 주권재민의 원리에 의해서 주권의 지분을 나누고 있는 시민들이 공인들에 대한 의견을 표하면 '명예 훼손'이니 '모욕'이니 하는 것으로 협박을 하는 것이 위대한 대한민국 행정부의 한 단면이다.

물론 공적 영역이 아닌 사적인 영역에서의 도덕적 흠결[각주:27]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있지만, 적어도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라면 최소한 국가의 권력을 행사하는 위치의 '공인'이나 그 '공인의 공과'에 대해서는 아무리 수위가 강하더라도 비판을 받아야만 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 표현 방식으로 인격적 멸칭이 동원되는 것도 언론[각주:28]이나 국가 기관[각주:29]에 의해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인인 각 개인이 행하는 것이라면 아무런 제재도 가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복잡하게 말했지만 '수도 서울 수호를 위한 다리 폭발 닥터 리'도 '허수아비 장면'도 '유신의 심장, 한민족 개조의 영웅, 반인 반신, 고령 박씨 가문 초대 대통령, 일제도 인정한 유능한 군사 장교 다카키 마사오이자 광복군으로 대한민국에 도착하신 박O희 가카'도 '한 것이 없어서 멸칭을 짓기도 힘든 최O하'도 '부릉부릉 땅크를 몰아 국민을 학살한 문어 전대갈'도 '그 옆에서 알랑방구나 뀌고 있던 꼬붕 물태우'도 'IMF의 초빙자이신 멍청한 김빙삼'도 '그냥 전라도 거지 좌파 빨갱이 깽깽 다리 김O중'도 '현직때는 무능하였으되 그후 10년을 말아먹은 이 모든 것의 원인인 운지 노알라'도 '4대강으로 큰빗이끼벌레를 소환하신 꼼꼼하신 쥐새끼 이MB'도 '위대하신 민족의 영도자, 1/4신, 고령 박씨 가문 초대 대통령의 장녀, 2대 대통령, 슬퍼할 시간도 없는 바쁜 벌꿀, 51.6%의 대표자이시며 이름조차 직접 밝힐 수 없기에 ㄹ혜로 피휘하시는 이 시대의 최고 존엄'도 모두 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들은 공인이며, 이 시대 행정부 권력의 정점이자 상징이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 옛날, 국가 권력의 정점이자 근원이었던 왕에게도 '멸사봉공'을 강요하던 조상을 지닌 우리다. 왜 그들에게 우리는 '멸사봉공'을 강요하지 않는가?


누군가에게 중력절이 슬픈 날이듯, 누군가에게 흉탄절도 슬픈 날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부엉이 바위에서 운지한 노알라가 죽일 놈이듯, 누군가에게는 '재규재규'우는 재규어에 물려 죽은 다카키 마사오는 죽일 놈일 것이다. 공인에 대한 모든 표현을 허하라. 만약 잘못된 근거에 의한 것이라면 제대로 된 근거를 보여주고 설득하라. 감정적으로 엇나간 것이라면, 그 감정을 돌이킬 수 있도록 노력하라. 그것이 공인이 해야할 자세일 것이다, '명예 훼손죄'로 쳐넣으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고. 


다카키 마사오에게 운지를 허하라!



  1. 이하 UK [본문으로]
  2. '딩동! 마녀가 뒈졌어!'로 번역할 수 있는 이 노래는 iTunes의 영국 순위권을 죽죽 박차고 올라가더니 2위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여기서 마녀는 맥락상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본문으로]
  3. 이하 대처 [본문으로]
  4. 국장은 아니며, 국장에 준하는 장례로 치뤄졌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장 정도 될 것이다. [본문으로]
  5. 죽은 사람을 비꼬는 언사나 행동을 의미한다. 부모욕과 함께 패드립의 최고봉을 자랑한다. [본문으로]
  6. 최근 들어 방송 등에서 일베의 것으로 보이는 2차 창작물들이 퍼지면서 논란의 여지가 되는 사건들이 늘어났다. [본문으로]
  7. 고 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자살한 것을 비하하는 말이다. [본문으로]
  8. 인터넷 커뮤니티간 불화는 자주 있었지만 커뮤니티 폐쇄라는 주장이 주류적인 위치를 차지할 정도로 거론되는 경우는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본문으로]
  9. 똥물에 튀겨 죽일 놈의 어원이 아닐까 한다. [본문으로]
  10. 영화 '관상'에 어느 정도 묘사되어 있다. [본문으로]
  11. 도깨비, 귀신 등의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본문으로]
  12. 원론적으로 유교는 사후 세계는 없다고 하였다. 동북 아시아와 동남 아시아 일부를 관통하던 유교는 내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현세의 자기 수양 및 치세에 대해서 논하는 굉장히 무미건조한 종교 철학 및 정치 체계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도 요즘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조상신이 직접 와서 제사밥을 드시라는 종교적 행사라기보다는, 자신을 구성하는 유전자를 물려준 이에 대한 감사와 자기 가문의 위세를 떨칠 수 있는 과시에 가까운 정치적 행사라고 보아야 한다. 하늘에 대한 제사를 중국의 황제만이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종교적 의미라면 하늘을 숭상하는 것이니 누구나 하늘에 대해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그러나 황제가 되지 않은 이가 감히 하늘에 대해 제사를 지낸다면 이는 중국 대륙의 응징을 받을 수 도 있는 대역무도한 죄였다. 물론 한반도에서도 칭제를 했던 몇몇 왕들은 대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으나, 대다수의 왕들은 몰래 제사를 지내고, 황제가 꼬투리를 잡으면 하늘이 아니라 조상인 단군께 지내는 것이라는 식으로 둘러댄 것을 보아 그 당시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는 것의 의미를 추측할 수 있으리라. [본문으로]
  13. 이 고인 드립의 가장 대표적인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그 유명한 김삿갓 혹은 김립이라고 흔히 알려진 김병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신의 조부를 신나게 까는 글로 장원을 했다가 아 씨발 내 할아버지였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방랑을 했다고 하는데 조선 시대 양반의 필수 교양으로 자신의 가문에 대해서 공부하는 '보학'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 큰 신빙성은 없어 보인다. [본문으로]
  14. 이전 고 이은주씨 사망시, 전인권씨의 말이 화제가 되었다. 아직까지 남녀 관계에 민감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는 민감한 시기에 민감한 발언을 해서 논란을 자초한 경솔한 행동 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본문으로]
  15. 개나소나 공인이라고 부르는 연예인이 아니고, 국가의 공직에 있는 자나 정치인을 일컫는 말이다. [본문으로]
  16. 최초의 권력자가 군사 지도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외적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는 자를 섬긴 것이므로, 그 효용이 다했다면 폐기 처분 한 것이다. [본문으로]
  17. 이와 관련되어 가장 유명한 사건이 태종 이방원 낙마 사건일 것이다. 태종이 낙마하자 쪽팔려서 사관에게 이 일은 기록하지 마라고 하였으나 사관은 '이 일은 기록하지 마라고 하셨다.'라고 태종의 발언까지 모두 기록한 것이다. 조선 시대 사관의 위엄이라고 볼 수 있겠다. [본문으로]
  18. 물론 이를 지키지 않고 사초를 직접 보고 사림파를 박살낸 사건이 그 유명한 연산군의 무오사화이다. [본문으로]
  19. 조선 시대에서 '만세'란 황제에게만 쓸 수 있는 표현이었다. [본문으로]
  20. 비록 현대는 국가에 의한 열정 페이 착취를 미화할 때 쓰이면서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원론적으로는 국가의 지배 계층은 자기 자신의 사적 이익을 버리고 국가의 공적 이익만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개념이다. [본문으로]
  21. 탕수육의 부먹-찍먹 논쟁 정도 수준으로 까지 격하되는 현대인이 보기에는 병신 같은 논쟁의 끝판왕인 예송 논쟁이 바로 이와 관련된 것이다. 왕을 존귀한 왕가를 이끄는 특별한 존재로 볼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나라를 다스리는 사대부의 수장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쟁으로 왕권 중시파와 신권 중시파가 학문과 예절의 탈을 쓰고 맞붙은 중요한 사건이다. 물론 탕수육의 부먹-찍먹 논쟁도 중요한 것이기는 하다. 개인적으로 배달이라면 찍먹 혹은 담먹이 맞다고 본다. [본문으로]
  22. 보통 서자로 번역되지만, 조선 시대에는 서자와 얼자는 구분되었다고 한다. 서자는 어머니가 양인 신분의 첩일 경우, 얼자는 어머니가 천인 신분의 첩일 경우이다. 이 기준대로라면 홍길동은 서자도 아닌 한 단계 더 낮은 등급의 얼자로 분류해야 할 것이다. [본문으로]
  23. 무수리의 아들도 왕의 씨를 받았다면 왕이 될 수 있는 것이 왕가의 특권이다. 대표적인 것이 영조. 물론 정통성 측면에서 공격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본문으로]
  24. 그냥 왕실 족보 관리 같은 것을 하는 명예 부서이다. 국가에서 돈이 나온다는 점을 제하면 현대의 종친회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본문으로]
  25. 원칙적으로 조선 시대의 수라는 전국 팔도의 공물로 마련된다. 이는 왕이라면 밥을 먹을 때도 밥상을 통해 전국 각지의 식량 사정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본문으로]
  26. 사실 조선 시대의 관아는 억울한 측면이 있기도 하겠다. 나름 조선은 합리적으로 그 당시 기술을 동원하여 과학 수사를 하던 국가였으며, 재판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다면 왕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는 국가였다. 물론 애초에 검사와 판사가 동일 인물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많기는 했지만. [본문으로]
  27. 당연히 위법 행위에 대해서는 아니다. [본문으로]
  28. 사회의 불특정 다수에게 특정한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인 만큼, 확립된 사실이거나 이에 준하는 증거가 있어야 하며, 근거 없는 감정적 선동을 유발할 수 있는 언사는 해서는 안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29. 예를 들자면 국가정보원.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