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이런 유머가 하나 있었다.
세상에서 온갖 악독한 짓은 다했던 나쁜 사람이 죽어서 염라 대왕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The Great King 염라 says 1
“변명할 기회를 줄 테니, 한번 네가 했던 착한 짓을 모두 말해보라”
우리의 나쁜 놈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떠오르지 않는 선행의 기억. 그러나 순식간에 자신이 어렸을 적에 불쌍한 거지에게 10원짜리 동전을 하나 적선했던 것이 기억났다. 따라서 나쁜 놈 Put his hands up
“저 어렸을 때, 불쌍한 거지에게 10원짜리 하나 적선한 적이 있어요.”
염라 대왕은 잠시 생각하다 10원을 그 나쁜 놈에게 Cash-back 해주고는 지옥으로 보내버렸다.
그런데 구걸하는 걸인에게 돈을 주는 것이 과연 선행일까? 우선 약 6년전이지만 번화가의 경우, 사람을 기다리느라 30분간 지하철 역 입구에서 구걸하는 걸인의 수입을 관찰하여 외삽해 본 결과, 매우 오차와 편차가 크겠지만 일당 5~6만원은 쉽사리 넘어가리라고 추정된다. 더군다나 easy come, easy go라고 이런 노숙자들은 걸핏하면 지하철 역사 내에서 술판을 벌리는 것이 다반사다. 2더군다나 이런 분들 나름대로 원시적 계급 사회를 이루고 있는지라 자기들끼리 위계질서도 이루고 있고, 여성 노숙자는 자신의 성을 대가로 음식과 비교적 편한 잠자리를 제공받는다고도 한다. 이런 말도 안되는 계급 질서를 깰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들의 수입을 끊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피도 눈물도 없는 매정한 행위는 그들이 노동의 의무를 다할 수 있게 해줄 합헌적 조치이며, 그와 동시에 그들에게 수입을 제공하는 것은 그들의 4대 의무를 깨뜨리는 국가 전복의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한 반역 행위이므로 구걸하는 걸인에게 적선을 하는 것은 선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즉, 구걸하는 걸인에게 개인적으로 베푸는 것은 나쁜 것이다. 그렇다면 단체가 한다면 어떨까?
우리 사회는 유독 성금이라는 것이 많이 사용되는 것 같다. 때가 되면 생각나는 수재의연금이라던가, 왠지 이거 안내면 피도 눈물도 없는 매정한 놈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공중파 방송사 ARS 불우이웃돕기 성금 따위를 보면 더욱 그러한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성금은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한다.
성금을 내는 사람은 2000원을 손가락 몇 번 까딱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지불함으로써 ‘나는 착한 사람이다’라는 자위를 할 수 있다. 성금을 받는 사람들은 당장 한 푼이라도 아쉬운 판국에 감사히 그것을 받을 수 있다. 정부와 공무원, 그리고 예산 사용을 쥐고 있는 국회는 소중한 국민의 세금을 아낄 수 있기에 행복하다. 물론 우리의 방송사는 그 성금을 어디에 썼는지 보고할 필요는 없지만, 결코 그것을 떼어먹지는 않을 뿐만 아니라 정당하게 전달할 것이다 아마도. 비록 그 와중에 그 성금은 방송사에서 기부하는 형태로 되겠지만 그것은 결코 중요하지는 않다. 아, 그리고 ARS 처리하는 비용은 공짜가 아니기 때문에 단돈 2000원 중에서 소정의 수수료를 통신 업체가 떼어간다고 하더라도 억울해 해서는 안된다. 통신 업체 직원도 밥은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 중에 어떤 업체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선출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우리의 깨끗하신 기자님들이 득시글거리는 방송사에서 이상한 담합이라던가 소정의 금품 및 향응 따위를 제공받고 그러한 업체를 선정한다고는 결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리고 이제 숭례문이다.
경제 살리랴, 대운하로 천하 삼분 지계 구상하시랴 불철주야로 바쁘신 우리의 제갈 장로님께서 남대문 3이 활짝 열리는 것 만큼 국운도 활짝 열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큰 북 울리면서 활짝 개방을 해서 위험 요인을 제공한 것 따위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범죄자가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못 들어가겠는가? 몸뚱이에 줄 묶어서 떨어지는 땀을 받아내는 불가능한 작전이라는 영화 4도 있고, 어디서 구한 골판지 박스에 몸을 숨기고 들어가는 고체 뱀 병장의 사투를 그린 게임 5도 있다. 비록 이번에는 70먹은 노친네라지만, 어린 애들이 저런거 보고 따라 할 수도 있으니 실제 더 위험 요인을 제공한 것은 우리의 제갈 장로님보다는, 저런 것을 막지 못한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와 자라나는 우리 청소년들의 미래를 지켜야 할 개신교 여자 청년회의 책임이다. 아, 물론 나경원 대변인께서야 요약하자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멘트 날려주셨지만, 네이버 댓글 놀이하고 계시다가 나왔다면 이해가 간다. 노무현? 물론 잘못했다. 문화재청도 소방서도 어찌되었던간에 최종 보스는 행정부 수장인 노무현 대통령의 부하니까. 그러고보니 서울 시장도 행정부 소속이 되나? 어쨌건 우리의 대인배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까일만큼 까여서 그 정도로는 쌍꺼풀 하나 꿈쩍하지 않으실 분이다. 그러므로 제갈 장로님께서 안 된다는 문화재청장 제껴두고 개방을 밀어붙였어도 책임은 노무현이 지는거다. 왜냐고?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니까. 우리 장로님은 남대문이 다 타도 경제만 살리면 되는 분이다. 그러니 이왕이면 나경원 대변인은 다음 버전으로 넘어가 주시길 바란다.
‘남대문이 다 타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는 이미 썩은 떡밥이다.
어찌되었건 남대문 전소에 책임이 없는 우리의 제갈 장로님께서는 또 우리의 애국심을 뒤흔들어놓는 웅대한 계획을 우리 앞에 펼쳐보이신다. ‘국민성금으로 숭례문 재건축’ 그렇다. 지금 우리가 키보드 워리어들처럼 한낱 대운하 따위로 왈가왈부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믿고 따르라 그러면 길이 열릴 것이다. 화끈하게 국민 성금도 팍팍 기부 좀 해서 '나는 국가의 소중한 보물을 재건하는데 힘을 쓴 문화 국민'이라는 자부감도 가지고, 보도 블록 갈아 엎을 돈도 모자라는 국가 세금도 아끼고, 4월이 총선이라도 의정활동에 매진하느라 바쁘신 국회의원님들 숭례문 재건축 특별법 이딴 거 안 만들고, 예산안 짜시기 편하게 귀찮은 짐도 덜어드리자는 것이다. 또 나중에 완공 끝나면 우리 제갈 장로님께서 폼나게 북 한번 더 치실 수 있을 텐데 겨우 국민 성금 따위로 쪼잔하게 그러는 것 아니다. 아, 생각해보니 경부 대운하 완공 때랑 기간 맞춰서 남대문 재개장하는 것도 멋있겠다. 이왕이면 청계천도 경부 대운하랑 연결해서 북 소리와 동시에 남대문 모양 배를 출항시켜서 부산으로 보내는 것도 멋있겠다. 혹시 제갈 장로님 근처에 아시는 분 있으면 이 의견 꼭 이야기해주셨으면 한다. 물론 발안자는 Carcinogen이라는 것도 같이 말이다.
당장 급한 사람에게 지원을 하는 것은 좋다.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제도적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에만 그 빛을 발한다. 국민성금? 물론 좋다. 그러나 그 이전에 모든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하라.
우리나라 정부가 거지도 아니고 구걸한다고 성금 적선해주면 버릇 잘못 들인다. 애초에 세금은 왜 내니?
P.S. 갑자기 궁금해진건데 우리의 제갈 장로님 재산 환원은 언제 하실려나? 장로님도 국민이신데 성금 내시겠지? 듣기로는 재산이 100억대라던데.
- 혹시나 이런 단어 사용을 보고 BBK나 김경준이 생각난다면 그건 착각이다. 간혹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알지 않는가? 나는 제갈 까가 아니라 남산이 두려운 제갈 빠다. [본문으로]
-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관악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 서울대 입구역에서는 이런 노숙자들을 최소 3~4명씩은 볼 수 있었다. [본문으로]
- 그냥 남대문이라고 하련다. 이 사건 이전에 숭례문이라고 불렀던 사람보다 남대문이라고 불렀던 사람이 훨씬 많았던 것 같으니. [본문으로]
- 미션 임파서블. 물리적으로 따지면 그냥 땀 1방울 떨어뜨리고 운에 맡기는 것이 땀 받아내려고 손짓하는 것보다 더 안전하다고 하지만 재미있던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아직 안보신분들은 한번쯤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본문으로]
- Metal Gear Solid라는 게임이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닌데 저런 식의 잠입보다는 정면부터 작살내면서 쳐들어가는 진삼국무쌍식의 무식한 잠입을 더 좋아하는지라… -_-;;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