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달의 시작을 비교적 부드러운 분위기였던 마취통증의학과에서 보내다가 응급실로 옮겨간지가 벌써 반달이 지났다. 10일간의 12시간 근무에서 이제 24시간 근무, 24시간 비번에 익숙해질만하니 벌써 절반이 지났다.

3월달에는 말이 없는 환자[각주:1]들만 보다가 4월달에 보는 환자들은 익숙하지 않은 강렬함과 불만을 마구 표출해내고 있었다.

병원 사정도 알아보지 않고 막무가내로 다른 병원에서 퇴원하여 밀고 들어오는 중환자와 그의 보호자들부터 시작해서, 의식이 불분명하여 보호자들과 함께 억지로 L-tube[각주:2]를 끼워넣어야 하는 상부 위장관 출혈 환자나, 빵빵하게 복수가 찬 사람들을 눕혀놓고 바늘을 꽂아서 복수를 빼거나, CT 조영제 사용 동의서를 읽으면서 적당한 겁을 주며 받아내거나 하는 것도 어느샌가 익숙해졌다. 그리고 또 하나 익숙해진 계층의 사람들이 있다. 의료급여1종이 그것이다.

보통 급여1종이라 불리는 의료급여수급권자 1종은 경제적 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이나 희귀난치성 질환자들을 위한 제도로, 소량의 자기부담금[각주:3]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의료 행위에 대해서 국가에서 지불하는 사회보장제도 수혜자를 의미한다. 원칙적으로는 참으로 좋은 제도다. 원칙적으로는.

서울대학교 병원 응급실은 3차 의료기관에 권역응급센터인지라 상당히 큰 응급관리료가 붙는다. 법에서 인정한 응급상황이라면 진료비에 18,000원 정도, 비응급상황이라면 36,000원 정도[각주:4]가 더 붙는데다가, 응급실은 의약분업예외지역이기 때문에 약값을 포함한 모든 것을 응급실 퇴실시에 정산하여 계산하게 된다. 그리고 급여1종은 여기에서도 벗어나지 않는다.

만나본 급여1종중에서 가장 황당했던 환자는 변비를 주소로 경북 영주에서 서울대학교 병원까지 밀고들어온 정신지체자와 그 보호자였다. 그것도 한두번이 아니라 4월 들어서만 2~3번.
무작정 큰 병원을 찾는 것도 어느 정도가 있지, 정말로 위급한 상황에 놓인 환자들이나, 암환자들의 급성 악화 증세를 해결하기도 벅찬 대학병원 응급실에 단지 자기 부담금이 5000원도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응급상황도 아닌 변비 환자가 들어와서 관장을 요구하며 의료 자원을 낭비한다는 것은 이미 환자의 권리 이전에 양심의 문제가 아닐까? 더군다나 출혈 환자도 줄 수 있는 침상이 없어서 발을 구르는 판에 침대까지 달래.
아무리 서울대학교 병원까지 올 필요가 없고 그 근처 2차병원, 아니 그냥 동네 의원에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귀가 따갑게 설명하고 오시지 말라고 해도 자기는 못믿겠으니 그냥 오겠단다. 글쎄 과연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비급여로 자기 부담금이 수십만원씩 나와도 동네 병원에 대한 불신감이 남아있을까?

병에 걸리면 무조건 큰 병원에 가야한다는 잘못된 인식도 문제지만, 이런 환자들을 내칠 수 없는 국가의 제도는 더욱 큰 문제다. 정말로 3차 의료기관에서 해결할 만한 응급상황이 아니라면 급여1종이라도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면 안되는 것이 아닐까? 경북 영주에서 서울대학교 병원까지 오는 왕복 교통비만 해도 변비환자를 비급여로 치료하기에는 충분할 것 같은데.
  1. 말을 할 수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마취 시작하면 의식을 잃는데 [본문으로]
  2. Levin tube. 환자들에게 설명할 때는 콧줄이라고 한다. 코를 통해서 위까지 통하는 관을 집어 넣는 것으로 위의 압력을 줄이거나, 위 내부의 출혈이 있을 경우 확인후에 세척을 하거나, 그것으로 식사를 넣거나 하는 용도 등으로 사용된다. [본문으로]
  3. 의료기관 급수(1~3차)에 따라 다르지만 5000원 미만이다. [본문으로]
  4. 정확하지는 않다. 수납에서 해결하는 문제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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