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되어 병원에 취직하는 순간부터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빳빳하게 다려진 가운을 입는다는 것이 의사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다시 각인하는 것이라면, 가운을 직접 빨아서 다릴 수 있다는 것은, 의사가 되기 직전 의대생으로서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임상실습생으로서 처음 가운을 입고 병원에 들어서던 순간의 두려움과 기대, 설레임을 지금 다시 찾을 수는 없겠지만, 가운을 다리는 순간만큼은 그 때의 감각을 조금이나마 다시 일깨워 준다.

가운을 다리는 것은 분명 귀찮은 일이다. 그 길이는 둘째치고라도 수없이 다린 드레스 셔츠로서 단련된 다림질이라도 가운을 다릴 때는 힘들고 빡빡하다고 느낄 정도이니 분명 쉬운일은 아니다.

그러나 한번 한번 다리미를 댈 때마다, 내가 겪었던 수많은 환자들을 기억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이나마 책임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처음 맡은 환자에게서 병력을 물어보던 일, 멀리 중국에서부터 한국으로 일하러 온 조선족 환자의 고민을 들어주던 일, 익숙하지 않은 신경학적 검사를 뇌졸중으로 사지가 시원찮던 환자에게 시켜보던 일, 그리고 퇴원 직전의 환자와 편안하게 이야기 할 수 있었던 일 등 나의 실습의 대상이 되어주었던 수많은 분들의 기억을 되살려 주게 한다는 점에서 직접 가운을 다린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게 해준다.

하루 하루가 힘들고 지치도록 하여, 때로는 환자를 보는 것이 귀찮고 그렇기에 대충 대충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되는 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요일 저녁 자기직전에 가운을 다리면서 다시금 각오를 되살려 본다.

비록 앞으로 가야할 길은 험난하고, 내 인생에 있어서 평탄한 길을 찾기 위해서는 수없이 긴 세월을 지내야 하지만, 그래도 그것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입는 가운에 담긴 수많은 기억에 의존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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