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내에서 곧 임종을 맞을 것 같은 환자에 대해서 터미널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국내에 있는 다른 어떤 병원들보다도 중증 암 환자가 많은 근무처의 특성상 이런 터미널 환자를 보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라고들 한다. 이는 부인과도 예외가 아니어서 근무를 시작한지 1달만에 벌써 3번째 케이스를 맞이하였다.
앞선 2번의 케이스는 수술장에서 바쁘게 일하던 도중이었고 그 가운데 특별한 환자와의 관계도 없어서 크게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어제 맞이하였던 임종은 나름 특별한 의미를 지닌 듯 하다. MICU에서 사실상 치료 포기를 선언하고 날린 환자로 애초에 병동으로 날릴 때 DNR 1 동의서를 받은 누가보아도 상태가 심각해보이던 환자였다. 그리고 그 환자분을 병동으로 옮긴 것이 바로 본인이다. 2
수술이 끝나고 늦게나마 쉬고 있을 무렵, MICU에서 연락이 와서 앰부를 짜면서 병동으로 옮길 때에도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양측 상하지 모두와 엉치뼈 근처의 욕창을 보게 된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도저히 살아서 돌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데에서 오는 측은감과 함께 이 분의 소독을 하루에 2번이나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그것이었다. 더군다나 VRE 환자라 비닐로 된 덧가운에 장갑까지 껴야한다는 귀찮음은 더더욱이나 컸었고. 3
어찌되었건 한번 소독하는데 30여분 정도 걸리는 환자분을 소독해드리면서 처음에 들었던 측은감은 점차 휘발되어가고 귀찮음과 부담감만이 벗겨지지 않는 때처럼 진득하게 남았을 무렵, 수술장에서 나오면서 들었던 그 환자분의 사망소식은 무엇보다도 내게 해방감을 크게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서야 사람이 죽었다는데 해방감을 느꼈다는 죄책감의 부차적인 감정으로서나 측은감을 느끼게 되었다.
본래 본인의 성격상 나와는 큰 관련이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았기는 했지만, 환자분의 사망으로 가장 처음 느꼈던 감정이 해방감이었다는 것은 뭔가 씁쓸하다. 인턴보고 뇌가 없다고 하는 말은 많지만 감정에 국한된 영역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일까? 앞으로도 수없이 보게될 이런 경우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해방감을 가장 먼저 느끼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