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매해 2번 전국적으로 엄청난 신규 환자가 발생하는 질병이 있다. 뭐 정확한 인과 관계가 밝혀져 있지는 않은 것 같으니 그냥 명절 증후군이라고 하련다. 20대에서 때로는 60대 정도까지 발생하는 고른 연령별 분포를 보이며, 대개 성별은 여성에게 한정되어 있다. 남들이 다 즐거울 명절에 괜시리 머리가 아파지고 몸이 축축 쳐지면서, 연휴가 끝나는 순간부터 밀려드는 불쾌감과 전신의 통증을 주소로 한다. 비록 후유증이 심하지 않고, 단기간의 경과를 거친 채 자연 회복되는 성향을 지닌지라 예후가 나쁘지는 않으나 워낙 유병율이 높기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질환이다.

뭐 명절에 일이 많은 것이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과연 대한민국의 현실 상황에서 이런 명절 증후군을 주장할 정도로 여성이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는가?
대한민국을 포함하여 대다수의 문명 사회는 문명이 싹트기 전부터 관습적으로 남녀의 역할을 구분해왔다. 원시수렵사회에서 시작된 모계중심의 일처다부제의 시기부터 남성의 역할은 외부에서 식량을 구하고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었으며 여성의 역할은 후세를 양육하고 식량을 조리하는 것이었다. 이는 생리학적으로 발생하는 남녀의 태생적인 근력차이로 인한 것이었고, 사회적인 관습으로 굳어져서 전쟁 등의 외부 사회와의 갈등이 두드러지는 시기를 제외하고 사실상 사회 내에서의 안전을 크게 위협받을 일이 사라진 상황에서도 계속하여 유지되었다. 물론 이는 산업혁명 이전 사회에서는 육체 노동이 주된 산업이었던 탓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관습은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오다가[각주:1], 두 번에 걸친 세계 대전으로 인하여 여성의 지위는 급격하게 상승하게 된다. 어떤 개념 없는 인간 말 처럼 남자들이 자신들은 '전쟁이나 일으키는 나라지키는 개'라는 것을 깨닫고, 우리가 잘못했으니 여자들에게도 권리를 주겠다고 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모든 남성들이 전쟁에 복무한 때에도 사회에 남아있던 여성들로 인해서 사회의 경제는 전쟁으로 인해서 상당히 피폐한 상태였기는 하였지만 계속해서 유지되었기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즉, 이전까지 남자의 일로만 생각해왔던 사회에서의 식량 확보라는 것이 여성들로도 가능하다는 것이 수년에 걸쳐 증명됨과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사회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여 여성 지위의 향상이라는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비록 여성운동의 메카라고 알려져 있는 미국도 여전히 성차별이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아직 가야할 길은 꽤나 남은 것 같지만.

어찌되었건 이와 같은 범세계적 경향을 따라서 한국도 모다니즘 신여성 시대부터 여성 운동의 기치를 높게 들어올렸다. 나름대로 바람직한 현상이기는 하다. 그들이 의무를 다해주기만 한다면. 혜택은 동등하게 받고, 의무를 할 때는 여자라는 핑계로 빠져나가는 사이비 페미니스트는 제치더라도 말이다.
한국 사회는 현재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되어질 정도로, 최근 여성들의 사회 진출은 거침이 없다. 뭐 쌍팔 서울 올림픽 개최할 때쯤에 한국의 1년은 세계의 10년이라고 우겨서 그런지 몰라도, 지은 지 몇십년도 안 되는 다리가 풀썩하고 무너지고, 커다란 백화점도 우르르 가라앉기는 했지만[각주:2] 여성의 권익 신장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해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다[각주:3]. 더군다나 국민의 정부 시절, 여성가족부[각주:4]의 출범 이래로 이와 같은 경향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본인 같이 이미 기득권 세력인 남성 입장에서야 조금 찝찝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방향은 이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군 가산점 폐지라던가 부모 성 같이 쓰기 같이 쓸데 없는 짓만 안 한다면 말이지. 뭐 세상의 반은 여성이고 그 반을 놀린다는 것은 사회적인 낭비가 아닌가?
그리고 가정 내에서도 굳이 남녀의 역할을 나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정 내에서의 합의가 있다면 남자도 칼들고 요리할 수도 있는 것이고, 여자도 망치들고 콘크리트 벽에 못을 박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만약 여성이 가정 내에서 남성이 가사를 분담해주기를 바란다면, 사회적인 역할에서도 똑같이 분담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성은 밖에서 미친 듯이 일하고 들어오는데, 여성은 집에서 일하다가 이제 네가 들어왔으니 가사일도 분담해야지 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전업주부'의 뜻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분명 가정 내에서 여성의 역할이 크다고 느껴진다면, 사회에서 가정을 위해서 압박 받는 남성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라. 가정 내에서의 역할이 맘에 안 든다면, 자신이 솔선하여 사회적인 책무를 떠맡을 책임을 한 후에, 가정 내에서의 역할 분담에 대해서 주장하라. 여성은 사회진출이 힘들어서 어쩔 수 없다고? 그럼 그것은 그런 사회에 항의를 하고 개선을 요구하라. 가정 내에서 깽판치지 말고. 전국적으로 파업을 할 수 없으니, 가정 내에서 파업을 하겠다는 소리인가?

명절이라는 것은 일종의 공휴일이다. 유대인들이야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그 안식일에 대신 가사일을 해줄 비유대교 하인, 하녀를 고용했다고 하지만 대다수의 사회에서 이러한 공휴일은 가정 내에서의 일까지 생각하고 만들어지지 않으며, 가정 외 사회적 책무를 쉬는 것으로 결정된다. 즉, 전업 주부는 해당 없다는 소리이다. 이것이 억울하면 가정 내에서의 책무를 면제 받을 수 있도록 가정 내에서 합의를 보라. 그리고 사실 이러한 것은 깨닫지 못할 뿐이지. 외식이라던가 파출부 고용의 형태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내 조상도 아닌데 제사 음식 만들기가 짜증난다고? 아마도 당신 오빠나 남동생의 아내도 같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게 억울하면 자기 조상 제사 지내는 친정가서 돕던지. 사실 며느리가 일 안하면 시누이는 감싸주기는 커녕 더 바가지 긁지 않았나? 자기는 남자 형제가 없다고? 어쩔 수 없다. 부모님을 탓해라.

이제 제발 명절 증후군은 그만 떠벌렸으면 좋겠다. 정말 명절 증후군에 대해서 언론이 떠들고 싶다면, 사회적 책무와 가사 분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서 남녀 모두 일을 한다면 가사도 분담하는 것이 옳고, 이에 대한 연장선으로 명절 내에 발생하는 가사에 대해서도 분담해야만 한다는 어조로 이야기 했으면 한다.
솔직히 전업 주부가 명절 증후군에 시달린다고 뺑끼치며 골빈 사이비 페미니스트스러운 글을 쓰면서 자신은 진보적이라고 착각하기보다는, 한국 사회의 잘못된 야근 문화에 대해서 설레발을 푸는 것이 더욱 기자로서 적합한 태도가 아닐까?

  1. 물론 산업 혁명 이후로 여성도 어느 정도 생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되면서 중간중간에 여성 운동이 발생하긴 했지만 [본문으로]
  2. 1년이 10년이라면 가능한 것 아니겠나? [본문으로]
  3. 물론 안티도 해가 다르게 늘어나는 것도 현실이다. [본문으로]
  4. 계집 녀가 아닌 같을 여라고 우기기는 한다만 실은 양성평등청으로 고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싶다. [본문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