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의 일이다.
아메리카 합중국과 소비에트 연방간 냉전이 극을 치닫고 이의 대리전 양상으로 우주개발 경쟁이 치열했던 때의 일이다. 소비에트 연방에서 스푸트니크 계획(Sputnik,
Спутник)을 통해 최초의 인공 위성을 날려보내고, 보스톡 계획(Vostok, Восток)을 통해 유리 가가린(Yuri A. Gagarin, Юрий Алексеевич Гагарин)을 대기권 밖으로 보내서

'지구는 푸르다.'

드립을 치던 때로 이에 충격을 받은 아메리카 합중국이 아폴로 계획(Apollo)을 발동하여 '우리가 먼저 달로 가겠다.'며 전의를 불태우던 때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어찌되었건 아메리카 합중국은 우주 탐사에 있어 큰 난관에 부딪히게 되니
우주 비행사들이 무중력 상태에서는 잉크가 중력에 의해 내려오지 않아 볼펜을 쓸 수 없어, 우주에서 한 실험을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던 것이다.

... 그렇다고 소비에트 연방에 전화걸어서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지.

이에 진노하신 아메리카 합중국의 수장은 미 항공우주국(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NASA)을 갈궈서 새로운 펜의 개발에 매진하게 된다. 역시 만년필의 원조 Waterman이 살았던 나라답다. 이런 전차로 야심만만한 스페이스 펜(Space pen) 계획이 시작되고 막대한 돈을 부어서 무중력 상태는 물론 물속에서도 쓸 수 있는 스페이스 펜을 개발하게 된다.

Fisher, Space penFisher, Space pen


그리고 이 돈지랄 막강한 연구 개발을 통한 제품을 들고 우주로 날아간 우주 비행사들. 우주 공간에서 소비에트 연방의 우주 비행선과 도킹하게 된다. 이에 새 장난감을 얻은 초딩처럼 소비에트 연방의 우주 비행사 앞에서 스페이스 펜을 꺼내들고 자랑질을 시작한다.






"이번에 새로 개발한 스페이스 펜이오. 돈지랄 막대한 연구 개발비가 들었지. 당신들은 이곳에서 무엇으로 기록을 하오?"

이에 소비에트 연방의 우주 비행사는 아무말도 없이 한참을 스페이스 펜과 아메리카 합중국의 우주 비행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에 속으로 한창 의기양양하던 아메리카 합중국의 우주 비행사는 소비에트 연방 우주 비행사의 한마디에 박살나게 되는데.

"우리는 연필을 쓰는데요."

뭐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고, 연필의 탄소가루가 대기권 진출입시 폭발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하니, 아메리카 합중국의 뻘짓은 엄밀히 따지자면 완전한 닭짓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만 글씨를 쓴다는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서 연필을 사용할 생각을 못했다면 그 것을 두고 우리가 부르는 말이 있다.

'헛똑똑이'

다행히 미 항공우주국은 두번 다시 이런 실수를 하지 않기로 결심했는지 아폴로 프로젝트에 보내기 위해서 착용할 시계는 외부에 하청을 주게 되니 그 것이 바로 Omega의 speedmaster line이었다. 물론 Omega에서 그냥 '옛다 가져가라'라고 주지는 않았을 것이고 무엇인가 손을 봤겠지. 그리고 이 전통에 따라 Omega speedmaster line의 일부는 'moon watch'라고 하는 새로운 line을 창시하게 된다.

어찌되었건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발을 붙이고 사는한, 시계를 시간을 알기위해서 착용한다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명쾌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손목시계를 착용한다는 것은 굉장히 멍청한 짓이다. 기술의 발달로 전파로 계속해서 시간이 갱신되는 휴대전화를 두고 손목 시계를 차는 것은 과잉에 중복 투자이기 때문이리라.

직업적인 이유[각주:1]로, 혹은 개인의 취향에 의해서, 죽어도 손목 시계를 차야겠다고 한다면, 시계 본래의 목적에 가장 맞는 것은 역시나 쿼츠(Quartz)가 명쾌한 해답이 될 것이다. 가장 온도에 둔감한 고유 진동수를 가진 석영의 진동을 기준으로 삼아서 시간을 측정하는 쿼츠 시계는 휴대전화를 제외하고는, 현재까지는 그 정확성을 따라갈 수 있는 시계가 없다[각주:2]. 더군다나 가격도 저렴하여 손목 시계의 대중화를 앞당긴 주역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토매틱이라고 불리우는 기계식 시계를 차고 있다. Automatic watch라고 함은 시계가 자동으로 시간이 맞춰진다던지, 위급상황에서 자동으로 트랜스포머로 변하여 주인을 위기에서 구한다던지 하는 그런 막대한 기능을 갖고 있는 시계가 아니다.

Automatic이라는 뜻은 기계식 태엽 시계의 태엽을 차고있으면 자동으로 감아준다고 해서 Automatic이라는 말을 갖게 된 것이다. 즉, 아침마다 감아줘야하는 태엽을 직접 손으로 감을 필요가 없다는 것만 제외하고 그 속은 전통적인 태엽 시계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그런고로 leading edge를 달린다고 할 수 있는 쿼츠 시계와 비교한다면 그 오차는 말도 못하게 크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쿼츠 시계의 오차가 ± 0.5sec./d. 임에 비해서, 그나마 이 시계는 믿을만한 시계임이라는 뜻의 chronometer[각주:3] 인증을 받은 오토매틱 시계의 오차는 ±5sec./d. 정도 된다[각주:4]. 그리고 이에 분개한 시계공들은 미 항공우주국과 같은 만행을 저지르게 되니, 그것이 바로 뚜르비용(Tourbillon)[각주:5]이라고 불리우는 중력에 의한 오차 보정 기술이다. 그 기계적 원리야 나는 모르겠고 간단히 설명하자면
'비싼 기술'이 들어간 '비싼 시계'에만 들어가는 특수한 '기계장치' 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
물론 그래도 쿼츠의 정확성은 못따라간다.


그런고로 나도 쿼츠 신봉자였다. 내가 직접 오토매틱 시계를 차기전까지는.

Hamilton, Jazzmaster H32616133Hamilton, Jazzmaster H32616133

인턴때 내가 차던 시계가 어딘가로 사라져서 시계를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을 때 눈에 들어왔던 모델이 바로 Hamilton의 Jazzmaster라는 모델이었다.

그때 내가 생각했던 조건은 디자인이 마음에 들 것. 그리고 당일배송이 될 것. 마지막으로는 쿼츠일 것이었다.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쿼츠 신봉자였다고.

3가지 조건을 걸고 인터넷을 뒤졌으며, 당시 2가지 조건에서는 최고의 점수를 받았으나 쿼츠가 아니라는 것이 걸려서 한참 고민을 했었다. 한 10분정도?

그러다 그냥 이번 기회에 오토매틱이나 한번 차보자라는 생각으로 결국에는 구입을 하게 되었고 이는 내가 오토매틱 시계를 계속해서 착용하도록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오토매틱 시계는 태엽을 감기위한 추가 내장되어있고 이는 팔의 움직임에 따라서 회전을 하며 감기게 된다. 그리고 상기 모델은 그러한 오토매틱 시계중에서도 이 추의 회전이 상당히 묵직한 편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저 시계를 차고 한참을 뛰다가 멈춰서면 '윙'하는 소리와 함께 추가 돌아가는 진동이 계속해서 느껴질 정도. 그리고 이러한 점은 기계가 살아 있다는 느낌과 함께 나와 함께 시간이 흘러간다는 아날로그 적인 향수를 자극하게 해주었다. 

쿼츠의 시간은 정확하다. 1초 1초가 딱딱 끊어움직이며 정확히 60번의 움직임을 거친 뒤에 분침이 움직이게 된다. 그야말로 0과 1이라는 디지털적인 원칙에 걸맞는 시계다. 다만 이러한 방식은 정확하지만 정확하지 않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인간은 그것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분간을 해두었지만 결국 쿼츠의 시간에서 초침이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옮겨갈 때의 시간이란 비어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리고 오토매틱은 정확하지 않지만 정확한 시간을 보여준다. 비록 쿼츠의 정확성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째깍거리는 소리와 함께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는 것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끊임없이 서서히 흐르는 초침을 통하여.

디지털 시대에, 초를 다투는 시대에 오토매틱 시계를 착용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그러나 아마도 나는 계속해서 오토매틱 시계를 선호할 듯 하다. 모든 것이 정확하게 떨어지지 않는 삶처럼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을 알려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마음을 가지며 살 것 같기 때문이다.


  1. 의사, 군인, 우주 비행사 등등 [본문으로]
  2. 물론 쿼츠 자체의 품질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본문으로]
  3. uoosoon 님의 지적으로 수정되었습니다. [본문으로]
  4. Chronometer 인증을 받지 못한 시계의 오차는... 상상에 맡긴다. [본문으로]
  5. 실제로 Tourbillon 기술 자체는 쿼츠보다 먼저 나온 기술이다. 약 18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니...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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