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재학 중의 일이다.

교육 과정 중 블럭 강의[각주:1]시간에 PBL[각주:2] 실습 시간이 있었다. 본인을 포함한 조원들의 닭스러운 토론 끝에 몇가지 의심되는 질병 후보군을 정하고 이를 감별하기 위한 검사를 결정할 차례였다. 의대생뿐아니라 병원을 한번이라도 다녀본 일반인이라도 당연히 알 수 있는 검사인 X-ray와 피검사[각주:3]를 당당히 요구했고, 담당 강사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미리 작성되어있는 방사선 영상 화면과 결과지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 검사 결과를 받아본 우리는 요구시의 당당함은 이미 향불에 피워 하늘로 올려보내고 다시 삽질의 연속인 바보들의 토론을 계속해서 또 다른 결과를 도출해냈다. 이걸로는 모르겠으니 MRI를 요구한다가 그 답이었다. 그리고 담당 강사 선생님은 아마 절반의 한심함과 절반의 비웃음을 담아 MRI 영상 화면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시 바보가 되었다.

당연히 최신 검사 기법이고, 그렇기에 당연히 더 검사 결과를 보기 편할 줄 알았던 우리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 허공에 멍멍거리면서 짖어댈 뿐이었다. MRI는 더 모르겠었던 것이다. 어찌어찌해서 뛰어난 동기의 기지로 그 시간을 모면하긴 했지만, 본인에겐 '아! 나는 내과나 영상의학과는 가면 안되겠구나!'라는 결심을 하게해준 수업이었다. 물론 이후 실제 의사 생활을 하면서 외과계는 외과계 나름의 학문적 고통이 있었지만, 흔히 의사들끼리 얘기하는 무식한 목수질[각주:4]이 진짜 의사[각주:5]보다는 내 적성에 맞았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본인이 아마 정형외과 2년차로서 병원에서 있는 시간이 그 외의 시간보다 압도적으로 많을 때의 시절이었다. 그날 마지막 정규 수술을 마무리하면서 수술장에서 치프 선생님[각주:6]과 노가리를 까고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목수 얘기가 나왔다. 그러면서 아주 예전 막 정형외과가 태동기에 접어들 때 쯤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었다. 지금은 모교에서 은퇴하셨지만 여전히 정력적으로 활동 중이신 모 교수님의 수술 중 있었던 일이다. 척추측만증[각주:7] 교정 수술을 하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환자의 심장이 멎었다. table death[각주:8] 직전 상황이니 당연히 수술장은 난리가 났고, 수술이 문제가 아니라 환자가 살아 나갈 수 있을지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수술장은 집도하는 교수님과 치프, 담당 주치의인 전공의, 인턴 그리고 마취과까지 포함하여 총 5명의 의사가 있던 상황이었으나 마취과를 제외한 나머지 의사들이 평상시에 V/S[각주:9]을 다루던 사람이 아니었기에 모두가 패닉에 빠져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하신 교수님의 일갈은 전설이 되었다.

"야! 의사 불러와!"


대한민국의 의료법상 의사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인정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 면허 시험을 통과하여 보건복지부가 발급한 의사 면허를 소지한 이들을 일컫는다. 대한민국에서야 워낙 전문의가 발에 채이는 동네니 환자들도 인턴은 의사가 아니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은데, 의료법상으로는 인턴도 의사의 역할은 다 할 수 있다. 이미 대한민국 의사 면허 자격 시험을 통과했기에 법리상으로만 따지면 인턴도 아니 인턴조차 하지 않은 그냥 일반의도 뇌수술이나 심장 이식 수술을 해도 법에 저촉되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겸허히 안하는 것 뿐이다.

현대 의학은 이미 세분화가 상당히 진행되었고,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닌 다른 과의 지식을 빠삭하게 꿰고있는 의사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심지어 자기 전공 분야에서도 분과가 다르면 어려운 의학적 판단을 내리기 주저하는 경우도 있는데, 다른 과의 일은 오죽하겠는가? 그렇기에 대다수의 의사는 다른 과의 의학적 판단을 요구하는 상황이 되면, 일단 자신의 지식에서 해결가능한 상황인지 고민한 다음, 도저히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되면 다른 과의 전문의에게 협진을 의뢰하거나 전원을 시키게 된다. 


진단에 필수적인 방사선 영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공이 척추와 사지의 근골격계 및 혈관, 신경을 주로 보는 정형외과여서, 근골격계 영상의 경우 아주 애매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영상의학과의 정식 판독을 기다리지 않고 추후 빠진 것이 있나 확인하는 정도로만 사용한다. 그러나 본인이 주로 보지 않는 아주 유명하거나 위급한 몇몇 질환을 제외한 다른 분야의 영상을 던져주면 잘해봐야 '어 이거 뭔가 이상한데?' 정도 이상의 판단을 내리기는 힘들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근골격계 영상을 볼 때 마다, 내가 놓친 것은 없을지 고민하면서 영상을 읽는다.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힘들 경우에는 영상의학과에 문의하기도 하고. 전공의 생활부터 치면 의사 생활 8년째인 지금도 그런데, 선배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런 걱정은 경력이 계속해서 쌓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대한한의사협회에서 아무 재미있고 무시무시한 사고를 쳤다. 십여년전 우리는 비싼 검사 없이 진맥으로 모든 것을 진단할 수 있다던 패기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한의사들이 '우리도 X-ray, 초음파, CT, MRI 찍을 수 있게 해달라능!'하고 징징거리고 있다. 뭐 패기야 의료사고로 소송 몇번 당하면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니 그렇다고 치지만, 우리도 영상의학기기 사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 시행한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의 골다공증 검사 시연이 참 어디서부터 까야할지 모를 정도로 개판으로 한것이다.


링크한 기사에 잘 정리되어있지만 귀찮은 분들을 위해 간단히 정리해보자.


일단 골다공증의 표준 검사법은 DEXA라는 X-ray를 이용한 측정법이다. 최근에는 CT를 이용한 방법이나 이번 한의사 협회장이 시연한 초음파를 이용한 방법도 있기는하지만 아직까지 신뢰도 측면에서는 DEXA를 따라 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뭐 DEXA나 CT를 이용한 QCT 방법은 장소 상의 문제로 준비못했다고치고 초음파를 이용한 것으로 관대히 넘어가보자.


이 시연 환자의 T-score는 -4.4, Z-score는 -4.3이다. T-score, Z-score는 통계학적인 방법으로 계산하는데 모두 설명하자면 너무 길어지니 임상적인 의미만 적겠다. T-score는 비교적 건강한 20-40대 사이의 젊은 연령층의 평균치와 비교했을 때, 지금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 대조하는 수치이고, Z-score는 같은 연령층의 평균치와 비교했을 때, 지금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 대조하는 수치이다.

골다공증이라는 것이 주로 나이가 들면서 발병하는만큼, 임상 상황에서 일반적인 경우라면 T-score를 이용하는 것이 정상이다. 보통 젊은 사람들이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으면 골다공증에 걸릴 일은 없으니까.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시연에 참가한 모의 환자가 29세의 젊은 남자라는 점이다.

대부분 골다공증 검사가 필요한 사람들이 50대 이상이기에 일반적인 경우라면 앞서 얘기한 것 처럼 T-score를 이용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50대 미만의 환자를 대상으로 검사를 시행했다면 동일 연령대의 평균치에 근거를 둔 Z-score를 읽어야 한다. 뭐 'Z-score라는 것이 그냥 T-score만 적기에는 종이 공간이 남으니 적혀있는거아냐?'라고 생각했을 수 있으므로 T-score만 보았다고 관대하게 넘어가보자.


T-score가 -4.4가 한 70-80대의 노인에서 나온 수치라면 바로 진단을 내려도된다. 그러나 문제는 시연에 참가한 환자가 20대 젊은 남성이다. 20대 젊은 남성의 검사에서 저런 수치가 나왔다면 의사가 제일 처음 의심하는 것이 무엇일까?

만약 DEXA나 QCT 처럼 검사실이 따로 있어서 검사실 직원이 검사했다면,

'검사실 이 새끼들 또 개판으로 검사한 것 아냐?'라고 먼저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시연처럼 의사가 직접하는 방식이었다면,

우선 '아 검사 잘못했구나' 아니면 '아 이 기계 남성 성기 같아서 못쓰겠네' 일 것이다.

그럼 그 다음에는 당연히 검사가 잘못되었으니 바로 다시 해야할 것이 재검이다. 검사 오류 가능성을 먼저 확인해야하는 것이다. 만약 거듭되는 재검에도 계속해서 저런 결과가 나왔다? 그럼 그 때부터 환자는 매우 괴로운 길을 걷게된다. 왜냐고? 이는 해석 결과의 확인을 먼저 다루고 다시 설명하겠다.


한의사 협회장은 자신있게 이 환자의 진단을 골감소증이라고 내렸다. 아쉽지만 틀렸다. 다른게 아니고 틀렸다. WHO 기준에 따르면 골감소증 진단에 있어 T-score의 기준은 -1.0이다. 그리고 골다공증을 진단하는 기준은 T-score -2.5이다. 골감소증이건 골다공증이건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기본적으로는 같은 질병군이다. 그런데 왜 이런 분류를 하는가? 골다공증이면 골다공증 치료제의 투여를 고민해야하기때문이다.

이 세상에 있는 약리작용을 보이는 모든 물질은 모두 합병증을 동반할 수 있는 가능성이있다. 심지어 물도 너무 많이 마시면 저나트륨혈증으로 죽을 수 있는데, 약은 오죽하겠는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골다공증 치료제의 종류 중 하나인 비스포스포네이트 계열 약제는 장기간 복용할 경우 오히려 골절의 가능성이 더 높아질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며, 심한 경우는 턱뼈가 괴사하는 등의 심각한 부작용[각주:10]도 발생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의사들 및 환자 상태에 따라 어느 정도 경과가 호전되었으면 검사 수치상 골다공증이 완전히 치료되지 않았어도 휴약기간을 두는 등의 임상적 치료를 행한다. 

세상 모든 것은 돈에 의해 굴러가니 의학적인 것 말고 경제적인 면으로 보자. 만약 골감소증이라고 진단하고 저런 약제를 썼으면 그 처방은 심평원에서 모조리 삭감한다. 대한민국내 학계 일부에서는 한국인은 T-score -2.0부터 처방을 고려해야한다거나 한국인 표준에 맞춰서 T-score를 다시 계산해야한다는 주장도 있는 판인데, -4.4를 골감소증이라고 진단명을 붙있다면 심평원은 T-score 같은거 읽을 생각도 안하고 좋다쿠나하고 그냥 삭감의 칼을 휘두를 것이다. 저 한의협 협회장의 병원은 괜찮은가 걱정된다. 


뭐 이것도 양보해서 사람이 실수로 오진할 수도 있지라고 생각해보자. 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리는 것도 아니고 대언론홍보용 쇼를 위해 1명 진단하면서 오진율 100%를 달성하여 오진하기도 쉽지 않지만 말이다. 앞서 언급한 왜 환자가 괴로운 일을 겪는지 설명하겠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 수치가 70-80대 노인에서 저런 수치가 나왔다면 고민안한다. 29세의 젊은 남성이라면 의학적 상식상 단순한 골다공증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할 수 없는 수치다. 저 나이대에서 저런 수치가 나오려면 체내 호르몬 분비에 뭔가 이상이 있거나, 아니면 을 의심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온갖 종류의 호르몬 검사를 진행해야하고, 이 검사 결과따라서 PET-CT 등의 비싼 최첨단 진단 장비를 이용하여 추가 검사를 해야한다. 그리고 정말 암이 맞다면 길고 긴 항암 치료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 더 암울한 것은 저 정도 연령대의 환자에서 암이 맞다면 예후가 아주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저 시연에 참여한 모의 환자분은 꼭 병원에 다시 가서 재검을 받기를 권한다.


그러나 우리의 한의사 협회장은 호쾌하게 치료법을 제시한다. 골수를 보충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로서 8년째,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골수를 보충할 수 있다는 치료는 들어본 적이 없다. 만약 한의학에 그런 치료법이 있다면 꼭 공개해주기 바란다. 골수 이식후 힘들어하는 전 세계의 백혈병을 비롯한 온갖 혈액암 환자에게 크나큰 희망이 될 것이다. 노벨상도 문제없다.


의료 기기는 분명 의사가 만들지 않는다. 현대 의료기기는 이론적 원리를 만들어내는 과학자와 이를 실용화하여 기기를 만드는 공학자의 작품이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기기를 의료의 영역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의사의 역할이다. '이 기기를 이용했을 때, 이런 소견이 보였다면 이는 염증이 있다는 뜻이다'라고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이 기기가 보여주는 해부학적 위치를 짚어내야 하고, 그 부위의 진단이 맞는지 조직검사를 해야하며, 이 조직검사 결과와 비교하여 정말 염증이 맞는지 진단을 해야한다. 이 과정에서 해부학적 위치를 확인해야 하는 의사, 조직 검사를 시행해야하는 의사, 그리고 그 조직 검사를 해석하여 비교해야 하는 의사가 모두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현대 의학의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실수와 이를 논박하는 과정을 거쳐 차곡차곡 쌓아올려졌고, 지금도 이 과정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압축되고 요약된 지식을 얻기 위해 지금도 전 세계의 의과대학생과 의사들은 끝임없이 공부한다. 공부하지 않아 뒤쳐진 이들을 그 누구도 동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제안한다.

의과대학의 길은 모두에게 열려있다.

한의사인 당신들도 예외는 아니다.

수능이나 MEET를 다시 준비해야겠지만.

  1. 블럭 강의란 어느 특정한 부위의 의학적인 면을 집중적으로 강의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화기학, 호흡기학 이런 식이다. 의과대학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다녔던 학교는 본과 2학년 과정 중에 있었다. [본문으로]
  2. Problem based learning의 약자. 말그대로 문제 기반 학습인데 의과 대학에서 PBL이란 보통 가상의 환자 사례를 주고 이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과정에 대해서 토론하며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3. 보통 환자들에게는 그냥 피검사라고 설명하지만, 피검사의 종류는 수백가지다. 피 한방울로 모든 병을 다 감별할 수 있는 검사 방법은 SF 영화외에는 없다. [본문으로]
  4. 정형외과를 두고 흔히들 타과에서는 무식한 목수라고 자주 깐다. 이는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대한민국내에서만 그런 것은 아닌듯 싶다. [본문으로]
  5. 무식한 목수들이 흔히 얘기하는 진짜 의사는 보통 내과 의사를 의미한다. [본문으로]
  6. 과마다, 병원마다 다르지만 보통 전공의 마지막 년차인 4년차를 의미한다. 내가 수련받은 곳은 정형외과 내에서도 분과별(어깨, 무릅, 족부 등등)로 팀이 갈렸기에, 그 팀 전공의 중 최고 연차를 치프라고 불렀다. 팀마다 다르지만 3년차 혹은 4년차가 맡았다. 3년차를 보고 vice 혹은 vice chief라고 부르는 곳도 있다. [본문으로]
  7. 허리뼈가 옆으로 휜 것을 의미한다. 일정 각도 이상 휘게되면 성장에따라 계속해서 휘는 각도가 늘어나고 이게 심해지면 척수 신경이 눌려 걸을 수 없게되고 정말 심할 경우에는 허리가 너무 휘어서 일반 의자에도 앉지도 못하는 병이다. [본문으로]
  8. 수술대 위에서 환자가 사망하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9. vital sign. 의학적 정의상 사람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생체 징후를 의미한다. 혈압, 맥박, 호흡수, 체온으로 구성되는데 보통 의사들 사이에서 바이탈을 다룬다고하면 자신의 진료가 직접 환자의 생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과, 외과, 흉부외과 등등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10. Bisphosphonate Related OsteoNecrosis of the Jaw, 줄여서 BRONJ라고 하는 병이다. 주로 의사들보다는 치과의사들이 더 신경쓰는 병이지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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