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격언이라 함은 먼 예전부터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긴 시간만큼을 견뎌왔다는 것은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기에 가능한 일이나 아쉽게도 와전된 뜻으로 이해되고 현재까지 전해내려오는 어구가 많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자.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A sound mind in a sound body, Orandum est ut sit mens sana in corpore sano)’. 체육과 관련된 곳이라면 명언, 격언이라면서 붙여놓는 곳이 많은 어구이다. 그러나 실상은 어떠할까? 이 말을 처음으로 꺼낸 것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Juvenalis)이다. 그는 과연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꺼냈을까?
‘로마’라고 하면 떠오르는 중장보병의 이미지, 혹은 검투사의 이미지 때문에 체력 증진을 장려한 것으로 보기 쉽다. 그러나 원문의 뜻은?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도 깃든다면 바람직할텐데.’ 라는 뉘앙스에 가깝다. 즉 거칠게 바꿔보자면 ‘저 근육 바보가 머릿속도 채우면 좋을 텐데’라는 뜻으로 ‘제발 공부 좀 해라. 이놈의 자식들아.’가 가깝겠다. 당시 검투사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많은 사람들이 부와 명예를 위해서 신체를 단련하고 검투사가 되는 길을 지원하는 세태에 대해서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내뱉은 말인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는가? 그럼 다음 것으로 넘어가보자.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None but the brave deserve the fair.)’ 아마도 고백을 앞두고 망설이는 남성(일부 여성)에게 용기를 내서 고백하라고 충동질할 때 주로 사용되는 어구이며, 간혹 상대편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데 계속해서 들이대는 이들이 자기 합리화를 위해서 주로 사용하기도 한다(스토킹과 구애의 경계에 있다고 보면 되겠다.).
출처는 John Dryden의 ‘Alexander’s feast’에 나온 말로 다음과 같다. ‘오직 용기 있는 자만이, 오직 용기 있는 자만이, 오직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을 것이다.(None but the brave, none but the brave, none but the brave, deserve the fair.)’. 원래는 로마의 시성 베르길리우스(Vergilius)의 ‘아이네아스(Aeneid) XI, 283’에 나오는 ‘Experto credite quantus in clipeum adsurgat, quo turbine torqueat hastam.(방패를 저렇게 높이 들고, 투창을 소용돌이 치는 것처럼 돌리는 베테랑(전문가)를 믿어라.)’이 모티브가 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연관 관계는 모르겠다.
라틴 시구와 연관시키는 것은 조금 이해가 안되지만 우선 저 어구가 정확히 나와있는 John Dryden의 Alexander’s feast에 대해서 보자.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이라고 불리우는 고대의 군인 겸 정치가에 대해서 적은 작품이다. 흔히들 그리스의 왕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그리스라고 하는 것은 예전에 배웠다시피 느슨한 도시국가(폴리스) 연방에 가까운 형태였으며, 알렉산더도 그리스 전역의 왕이라기 보다는 그리스 문화권에 속하는 마케도니아의 왕으로 이후에 그리스 전역을 정복했기에 이런 오해가 빚어지고 있다. 어찌되었건 마케도니아를 포함한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군인이란 시민들이 무장한 것으로 특권층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사회에서 무구로 분류되는 갑옷과 방패는 당시 기준으로 매우 비싼 물품이었으며,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는 이러한 무구를 모두 개인 부담으로 갖추어야만 했다. 즉, 자기 돈 들여서 무장하고 전쟁을 나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자기 목숨 아까운지 모르고 저런 짓을 했던 것일까?
우선 사회적 지위를 들 수 있겠다. 예전 군사정권 시대에 출세하려면 육사를 가야한다는 말이 있던 것처럼 고대 그리스 사회는 전쟁 영웅이 매우 대접을 받는 시기였다. 당시의 교육은 대개 고대 영웅들의 서사시를 읽고, 쓰고, 해석하는 것이 기반이 되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저런 사상 교육을 세뇌받은지라 아가멤논, 헥토르, 오딧세우스 등과 같은 이들이 사회의 우상이자, 영웅으로 대접받은 것이다. 그런고로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서는 직접 전장에 뛰어들어 싸울 필요가 생긴 것이 첫번째 이유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승자는 패자의 모든 것을 획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으며 여기에는 노예와 적들의 무구가 포함된다. 앞서 말한바 있듯이 당시 무구는 매우 비쌌다. 전쟁터에서 살아남아서 적들의 무구를 얻었다면 그야말로 남는 장사인 것이다. 게다가 포로는 모두 노예가 되었으니 그것만 해도 전쟁에 참가해서 이기고 돌아온다면 몇 곱절 남는 장사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2가지 이유를 염두에 두고 다시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라는 문장을 살펴보자. 앞서 말했듯이 군대는 특권층 집단이다. 즉 어느 정도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갖춘 이가 더 큰 명예와 부를 얻기 위해서 참가한 것이다. 그 중에서 ‘용기 있는 자’라고 함은 적의 지휘관의 목을 베었던가, 위기에 빠진 동료를 구해냈던가, 성벽에 가장 처음 기어올라갔던가 하는 ‘전쟁 영웅’을 의미한다. 즉, ‘용기 있는 자’라고 함은 무일푼에 능력도 없는 애가 깡만 좋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 돈 많고, 사회적 지위도 있으면서 육체 건강한데다 용기까지 있는 완벽한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로 치면 ‘재벌집 아들에, 국회의원 자리도 꿰차고, 운동선수 뺨치는 신체를 가진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자’를 뜻하는 것이다(한국에서는 찌질한 정치 행보를 제외하고 보면 정몽준-_-;;이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이것으로 끝나면 다행일까?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None but the brave deserve the fair.)’에는 짝이 되는 어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용기 없는 자가 미인을 얻은 적은 없다.(Faint heart never won fair lady.)’이다. 이 어구는 이미 속담처럼 되어버린 위 어구에 대칭되는 어구로 나온지라 앞서 말한 고대 그리스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반영해본다면 ‘찌질한 새끼는 미인한테 찝적거리지마!’가 될 것이다. 한숨이 절로 나오지 않는가?
그나마 위 두 개의 어구는 그나마 원래의 형태라도 보존하고 있으니 조금 낫다. ‘손자병법’에 나온다고 알려진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서 백번 이길 수 있다.(知彼知己 百戰百勝)’이라는 정체불명의 어구보다는. 고대 중국의 병법가 손자는 절대로 싸우는 데로 다 이기는 군대를 최상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아무리 대승을 하더라도 손실은 입기 마련이며, 이는 결국 국가에 큰 경제적 부담을 주어 패망의 지름길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상으로 간주하였고 그 와중에 나온 것이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고, 적을 모르고 나를 알면 한번은 이기고 한번은 지며, 적을 모르고 나를 모르면 매 싸움마다 위태롭게 된다(知彼知己者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殆).’이다. 즉, 그는 '양측의 전력을 비교하여 위험하다면 싸우지 않고 화평하는 것을, 자신이 유리하다면 공격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은 것인데, 어찌된 것이 '양측의 전력을 잘 분석하면 반드시 싸워 이길 수 있다.'라는 단순 무식 군바리 같은 어구로 변한 것인지 손자가 알면 땅을 칠 것이다.
같은 말을 해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한다. 그러나 같은 '아'라고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곡해를 한다면 이런 어이없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러니 제발 대화할 때는 제대로 좀 듣고, 생각 좀 해가면서 하자. 뚫린 입이라고 나오는 데로 지껄이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