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국기에 대한 맹세’의 문장이 드디어 변화한다. 예전부터 진보 계열의 학자, 정치인들에게 끊임없이 공격받은 ‘국기에 대한 맹세’가 폐지까지는 되지 않더라도 대폭 수정이 가해지는 것이다. 정상적인 12년의 교육 과정을 거쳤다면 당연히 세뇌되어 외우게 되었을 문장이지만 한번 살펴보자.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원안의 문장을 찬찬히 살펴보면 섬뜩한 구석이 있다. 우선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이 그것인데, 이는 거꾸로 생각해보면 국가는 언제나 국민의 몸과 마음을 바칠 것을 강요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이 공격받는 전시체제 등의 상황에서 몸과 마음을 바치라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으나 평시에, 혹은 어떤 미친 독재자가 집권하여 계엄령을 선포한 후에 몸과 마음을 바치라고 하는 것은 글쎄? 이는 국가의 주권은 국민 개개인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뿐더러, 국가의 주인은 위정자에게 있고 국민은 신민으로써 취급하는 왕정시대에 더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그 다음으로 걸리는 것은 ‘조국과 민족’이라는 점이다. 물론 저 어구 하나만으로는 그다지 섬뜩한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문제는 뒤의 ‘몸과 마음을 바쳐’와 결합되면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원래의 문장대로라면 대한민국의 국민은 집권자가 원한다면 무조건적으로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 억지스러운가? 그러나 원안은 개정안과 달리 어떠한 전제조건도 없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아니라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라면 비록 조국이 자유롭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하더라도 집권자의 뜻에 따라서 가미가제식의 충성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국가라면 ‘자유롭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나라의 정부를 위해서 충성하라고 윽박지르기보다는 그들이 개선안을 내도록 격려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충성을 다한다는 것. 대한민국의 대다수 사람들이야 유구한 유교적 전통과 ‘삼국 연의’, ‘충무공 이순신 위인전’을 비롯한 온갖 매체에 세뇌되어 있어서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단어 혹은 막연한 향수와 함께 호감을 일으키는 단어일지도 모르겠지만, 절대로 충성이라는 단어는 ‘대등한 관계’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대등한 친구 사이에 충성이라는 단어를 쓰던가? 충성이라는 단어는 충성을 하는 자와 충성을 받는 자가 계층적으로 나눠져 있음을 의미하고, 충성을 하는 자가 충성을 받는 자보다 낮은 위치에 있을 때야 성립하는 단어이다. 그런고로 이 단어는 대한민국의 근간을 구성하는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대놓고 반발하는 형세가 된다. 참으로 아쉬운 점은 이번 개정안에서도 ‘충성을 다할 것을’을 삭제 혹은 수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충성을 다할 것을’ 이라는 어구보다야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나라를 사랑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정도의 어구로 수정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분명 국가는 소중하고, 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자발적으로 하기를 바라는 것보다 세뇌에 가까운 교육으로 성취하도록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이번 조치가 완전히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