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진 마라.'란 말과 함께 개인적으로 참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다. ‘죄 없는 자만 돌을 던지라’는 말이 비난 받는 자가 면죄부처럼 사용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말은 사회 생활의 근간을 흔들어대는 말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원시공동체 사회를 이루면서부터 죄의 씨앗을 뿌렸다. 그네들은 맹수의 힘이라던가, 초식동물의 빠른 다리, 작은 짐승들의 엄청난 번식력과 같은 자연의 축복을 크게 받지 못한 것처럼 보였고, 더군다나 한명의 사람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동물의 수배에 달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보듬을 장치가 필요했는지라, 어쩔 수 없이 군락을 형성하면서 규율을 만들어나간 것이다. 이는 ‘간음하지마라’, ‘다른 이의 것을 훔치지마라’와 같은 동물로써의 본성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며-자연계의 어떠한 동물도 성욕과 식욕을 해결하기 위한 행위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는 동물은 없다. 인류와 가장 유사하게 발전한 것으로 알려진 원숭이들조차 그 우두머리가 보이지 않을 때에는 과감하게 자기들끼리 짝짓기를 하지 않는가? 물론 들켰을 경우에는 처절하게 응징받지만-, 그랬기에 현생 인류는 지금까지 발전해 올 수 있었다. 법과 도덕, 그리고 예의는 인류 사회가 그 구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했던 필요악이었으며, 죄는 이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었던 부산물인 것이다.
‘죄’라는 것은 어떤 특정한 개인의 탁월한 덕망으로 한정지어지는 것이 아닌, 사회 전반에 걸친 동의-이를 상식, Common sense라고 한다.-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고, 이는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서 조금씩 변화하게 된다. 이것이 지금이야 자위 행위를 하는 것이 남에게 말하기에 부끄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중세 기독교 윤리에 경도되었던 서구에서처럼 악덕으로 취급하지는 않는 이유이며, 지금은 지나가던 여자를 납치해서 강제로 성관계를 맺고 결혼하는 것이 엄청난 중죄로 처벌받지만 이전 약탈혼이 성행하던 시기에는 처벌받지 않았던 이유이다.
죄를 지은 사람이 비난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 비난하는 사람이 어떠한 죄를 지었던 간에, 비난 받는 자가 사회적 상식에 어긋나는 죄를 지었을 경우, 그 사회적 상식에 기반을 두어 비난하는 것은 옳은 행위일 뿐만 아니라, 사회의 구성에 있어서는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희생양(scapegoat)’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듯이 사회가 단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넘치는 죄를 해소할 만한 창구가 필요하고, 그렇기에 다른 어떤 이보다도 큰 죄를 지은자가 그 역할을 떠맡게 된 것은 인류 역사이래로 공통적으로 발전되어온 과정이다.
현생 인류는 문명을 발전시켜나감에 따라서 원시적 감정으로 한정 짓던 악덕과 희생양이라는 것을 세련되게 다듬어서 사회적 법률에 따른 죄와 범죄자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으며, 그 처벌 방식도 이전의 신체적 구속이라던가 도덕적 비난이라는 약간은 모호하고 야만적인 방법에서 법률에 따른 적절한 처벌로 발전해 오게 되었다. 그랬기에 대부분의 건전한 상식을 갖춘 사회인들은 자신들의 상식을 크게 위협하는 자에게 있어서, 개인적인 도덕성의 유무를 떠나서 본능적으로 비난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비난하는 자들이 사회적 상식을 괘념치 않고, 그 것을 넘어설 정도로 비난하는 것은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겠지만, 그네들이 사회적 상식의 테두리 안에서 비난하는 것을 두고 ‘죄 없는 자만 돌을 던져라.’라고 강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회란 것의 형성은 필연적으로 죄라는 개념을 잉태시킬 수 밖에 없었으며, 그 죄를 지은 자에 대한 처벌은 사회의 구성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