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정아, 이지영 때문에 난리도 아니다. 사실 영어학원, 입시학원을 비롯한 학원계에서 학력 인플레가 심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쉬쉬하던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한 명은 국내 유명 대학의 교수였고, 한 명은 방송계의 스타 강사였으니 매우 파장이 크다. 그리고 이번 일로 가슴 졸이고 있는 분들도 꽤 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들에 대한-이지영씨를 두둔하는 분들이 더 많기는 하지만- 호의적인 여론도 없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학력을 속인 것이야 어쨌든 간에 실력이 있었으니 괜찮은 것 아니냐라는 말도 꽤나 나오는 판국이고, 이 일을 기회 삼아 학력 중심의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많다. 물론 이 말들이 원칙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아직까지도 지방-내가 살았던 울산이 기준이다. 다른 곳은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광역시급 규모의 지방에서 이정도 인식이면 다른 곳도 비슷하리라 생각한다.-에서는 서울대라고 하면 자동으로 출세길이 보장된 것으로 알고 계시는 분들도 많고, 남편이 서울대를 나왔으면 그 아내가 서울대를 나온 것처럼 목에 힘을 주는 분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죽하면 어머니께서 본인이 현재 다니는 학교에 입학했을 때. 절대로 마누라는 저런 년들은 얻지 마라.’라고 하셨겠는가.

 

분명히 학벌을 중심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태도는 사라져야 하고, 실력을 우선시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우선 신정아씨나 이지영씨의 경우 가장 큰 문제는 학력 위조가 유력시된다는점-현재 신정아씨는 시인을 하지 않으므로 추측형태를 사용하였다.-이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 사회의 풍토가 이 둘과 같은 학력 위조 사건을 조장하도록 유발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으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가? 예전에도 비슷한 글을 쓴 적이 있지만, 죄라는 것은 사회의 구성에 따라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부산물이다. 아무리 내가 빚쟁이에게 쫓기더라도 권총들고 은행터는 것을 국가가 용서하지 않듯이, 아무리 내가 실력은 박사 학위자 뺨치더라도 학위가 없어서 구직을 못하는 것을 한탄하여 학력을 위조하고 취업하는 것은 용서해서는 안될 범죄행위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둘의 더 큰 문제점은 학력 중심 사회가 불만이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공개한 상태로 성공을 거두어서 실력이 우선시되어야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학벌이라는 카르텔에 들어가기 위해서 자신의 학력을 위조함으로써 정말로 실력이 있을지도 모르는 무학위자의 길을 막아버렸다는 점이다.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면 안된다고 수없이 들어오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이 중국이나 일본에서 뭔가 이상한 사건이 터지면 '짱깨들은 내지는 쪽발이 새끼들은' 이라는 말을 먼저꺼내는 것이 현실이다. 아마도 이번 사건으로 일반 국민들의 인식 속에 '못 배운 놈들은 저래서 안되!'라는 관념이 더더욱 뇌리에 박힐 가능성이 커졌으며, 이러한 것은 정말로 실력있는 제2, 제3의 신정아나 이지영이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저 둘에 대한 성토는 이쯤하고, 우리 사회에서 학벌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자. 앞서 적은 바 있지만, 현재까지 한국에서 '서울대'라고 하면 뭔가 먹어주는 것은 사실이고, 아무리 자신이 학벌을 보지 않는다는 사람도 '중졸'이나 '고교 중퇴'인 사람을 자신의 아래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즉, 현재 한국사회에서의 학벌이란 단순히 자신의 학력을 나타내는 수준을 넘어서서 어느 정도는 신분적인 계급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일까?


우선은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선망하는 대기업 입사 및 승진 문제에 있어서 경쟁의 불리함이 첫번째 원인이 될 것이다. 본인이 다니는 단과대가 속칭 전문직-국가에서 면허를 발급하고, 그 면허를 소지한자 이외의 사람이 면허 소지자에게 허락된 행위를 할 경우 그 사람의 실력이나 의도에 상관없이 범법자로 간주하여 처벌하는 직업, 의사, 변호사 등이 대표적이다.-을 양성하는 곳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기업 입사를 꿈꾸게 된다-물론 IMF이후로 공무원에 대한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 삼성이야 학벌을 적는 칸이 아예없고 따로 자체 시험을 봐서 뽑는다고 하지만, 대다수의 대기업은 엄연히 '학력'을 적는 칸이 있고 학력이 좋지 않은 사람은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입사 이후에도 소위 말하는 학벌때문에 승진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다고하니 한국 사회에서의 학벌은 후천적으로 취득 가능한 신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속칭 상아탑-과연 이러한 고고한 명칭이 어울리는지는 별개로 하고-에서도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대다수의 대한민국의 의대 및 대학 병원만 하더라도 '친 서울대 계열'과 '친 연세대 계열'로 갈라지는 것이 사실이고 아무래도 앞서말한 이 두 대학 출신자가 좀더 좋은 취직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 또한 공공연한 사실이다. 전문직도 이러한 곳인데 다른 단과대는 오죽할까?
하다못해서 자기들도 자기네 대학 출신들은 안뽑을텐데 이러한 국내 석사, 박사 학위가 무슨 소용이냐면서 한탄하는 것이 현실아닌가?

그렇다면 왜 이런 학벌 중시 풍조가 생겨났을까? '우리 사회가 교육열이 높아서 그렇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니까 무시하겠다. 한국처럼 기복신앙이 투철한 나라-교회에서도 천국가기를 기도하기보다는 자기 자식 대학 잘가기를 기도하는 나라이다.-에서 순수하게 교육열이 높아졌다는 것은 어불성설아닌가? 뭔가 남는 것이 있으니까 교육열이 높아진 것이지. 앞서 말했지만, 그것은 대기업의 인사 정책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것이 나쁜 것일까?

지금처럼 학벌이 무조건적으로 우선시되는 풍조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무조건 나쁜 것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나마 '대학입시'라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칠 수 있는 시험 중 가장 공정한 것이 아니던가? 대기업 인사 담당자가 정확히 어떠한 것을 보는지는 모르겠으나, '학부때 배우는 지식은 기업에서 필요한 지식과는 전혀 다르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도는 세상이니 분명히
실력을 측정하는 절대적 지표로써 학벌을 보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보는 것은 실력보다는 '12년의 정규 교육 과정을 과연 어떻게 이수했는가?'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대답을 보기위해서 학벌을 본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울산지역 마지막 비평준화 세대로 나름 지역 제일의 명문고 출신에, 현재까지는 대한민국 최고 학부로 인정받는 곳에 재학중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기에 저런 관점을 보이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저러한 대답이 가장 근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머리가 영특한 사람은 놀면서 학교를 다녀도 성적이 잘 나왔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죽어라 공부해도 따라잡을 수 없다고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요즘 사교육 때려잡기 바람이 불면서 사교육으로 학력차이가 난다고 주장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런 극소수의 예를 제하면, 수능 성적은 자신이 공부한 만큼 나오게 되어있다. 아무리 자식 교육에 돈을 때려부어도, 그놈의 자식 새끼가 할 마음이 없다면 성적이 안나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정말로 머리가 영특한 아이가 있어도 공부안하면 성적이 안나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우리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해서 큰일이에요.' 대기업 인사담당자 입장에서야 후보자들은 실적이 없으므로 누가 가장 실력이 좋은지 파악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경력자 구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은 신입사원 구직을 기준으로 한다.-, 겉으로 보기에 성실해보인다고 성실한 것은 아니니
그나마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지표로써, 12년간 정규 교육 과정 결과물인 출신 대학 학부를 활용하여 평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출신 학교별로 패를 가르고 나뉘어서 세다툼을 하는 지금의 풍조가 올바른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대기업 입사 정책에서 출신 학교를 보고 선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나마 가장 공정해야 할 학계에서도 출신대학으로 학파가 갈려서 싸움박질을 하는 세상인데 어쩔 수 있는가? 문제는 입사 이후에 모든 개인에게 적절한 능력을 펼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풍조를 만들기보다는 어떻게는 연줄을 이어서 그 카르텔을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이 대다수여서 문제지만. 이러한 점이 싫다면 개개인의 지적 능력과 성실성을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 척도를 만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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