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어느 천재 여류화가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두고 어떤 평론가가 내린 '다 좋은데 깊이가 없다!'라는 한 마디에 고뇌하고 절망하는 모습을 그린,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 소설 '깊이에의 강요'는 재미있는 책이다. 이 글을 두고 '사람은 말 조심을 해야한다!'라던가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다!'라는 교훈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대략 초등학교 5~6학년경?-의 단순한 나에게는 그런 시덥잖은 교훈보다는 힘있는 사람은 무엇을 해도 용서된다라는 것과 역시 사람은 뭔가 있어보이는 것에 약하다라는 깨달음이었다. 특히나 그녀 주위의 모든 다른 사람들이 다 좋은데 깊이가 없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그녀 자신도 결국은 그에 함몰되어 서서히 침몰되어 가는 모습을 보며 객관적으로 측량할 수 없는 깊이라는 것이 주는 무서운 의미를 깨닫고, 역시 사람은 뭔가 있어보이게 행동해야 무시받지 않는구나라는 약삭빠른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1. 고 이은성 씨의 미완성 유작-결국 다른 사람이 대필로서 마무리 지었지만- 환상 역사 소설 '소설 동의보감'은 출간과 동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 이와 유사한 역사 소설의 붐을 일으키는데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후 전광렬, 황수정 주연의 드라마 '허준'으로 재구성되어 다시 한번 전국민의 인기를 끈 이 소설은 이타적인 삶을 산 허준과 권력지향적인 삶을 산 유의태의 찌질한 아들-이름도 기억안난다-을 대비시켜서 전개시켜나갔다. 현실에서라면 그 과정이야 어찌되었던 간에 시험에도 떨어진 찌질한 허준은 주변 인물로부터 백안시를 당했을 것이고, 단번에 합격한 유의태의 찌질한 아들은 뭇 동네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겠지만, 소설에서 허준은 유의태에게 진정한 의사의 재목이다라는 칭찬을 듣게 된다. 소설 자체야 그닥 뛰어날 것도 없는 범작이지만 원체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박혀있는 '의술은 인술'이라는 개념으로 작품 수준 이상의 대접을 받고 교과서에 까지 실리게 되었다. 소설에서야 예진과의 로맨스가 드라마 만큼 그려지지 않았던 것 같지만, 본인이 느끼기에 남자가 대놓고 자기 마누라두고 첩질하는 것이 당연히 여겨지는 이 소설이 이에 대한 도덕적 공세를 받지 않았던 것은 신기했던 것 같다. 그에 따라 들게 된 이 소설의 교훈이 '의술은 인술이다.'가 아닌 '능력있는 남자는 딴 눈좀 팔아도 된다.'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라는 것은 본인이 삐딱해서일까?

2.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평등하기를 바라면서도 자신 및 자신의 가족들 중 누군가는 초인과 같은 역할을 하기를 꿈꾼다. 그러기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살육한 전범들과 자신의 욕망을 위해 반역을 든 권력 찬탈자의 이야기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위인전이라는 알 수 없는 책들이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팔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따지고보면 나폴레옹이나 히틀러나 차이가 있는가? 나폴레옹도 당시 자신의 적이던 프랑스와 다른 나라 왕족들의 목을 기요틴으로 쳐가면서 오른 자리이고, 히틀러도 경제적 지배권자였던 유태인들의 머리에 총알구멍을 내가면서 오른 자리인데. 대한민국과 북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에는 불행한 일이었겠지만 추축국들이 승자의 위치에 올랐다면 아마도 우리의 위인전 목록에는 최소한 3명의 전기가 더 꽂혀져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히틀러와 무솔리니, 그리고 도조 히데키.
부모들이야 그들의 전쟁기술이라던가 더럽고 포악한 성격과 교활한 지혜를 배우라는 의도가 아니라 그들의 역사적 사명감을 배우고 그들의 자세를 본받으라는 자세에서 이러한 책들을 사주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들의 사명감이라는 것도 별 것 없다. 에디슨이야 발명품으로 인류를 행복하게 만들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사리 사욕을 위해서 경쟁자의 특허를 모략으로 획득하고 부하들의 특허까지 치졸한 방법으로 빼앗아가면서 회사를 이룩한 수전노고, 콜럼버스야 황금과 후추에 눈이 먼 에스파냐 여왕을 꼬드겨서 배 3척을 끌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 원주민 학살의 장을 열고 신종 매독균을 들여온 파렴치한이고, 징기스칸이야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가족들도 내팽개치고 달아나면서 글도 못읽는 무식한 조폭 두목이지 않은가. 뭐 개중에도 김구 선생 같은 위대한 정치가도 몇몇 껴있지만, 다른 입장에서 보자면 지금의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은 눈길로 쳐다보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 일본에서는.

3. 역사라는 것이 발생하면서 계속해서 내려져 온 기록들을 살펴보면 인류의 공통적 성향을 한가지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가치관과 '남 일은 얘기하기 쉽다.'라는 경향성이다.다른 똑똑하신 분들이야 다른 인류 공통적인 휴머니즘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무식한 나의 깜냥으로는 이것이 전부이니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그 중에 '남일은 얘기하기 쉽다'라는 경향성을 살펴보면, 이것이 만만치 않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의 작은 허물은 살피면서 제 눈앞의 들보는 못보고, 똥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것처럼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한 경향이 존재한다. 나라와 조국을 위해 자신의 집안을 말아먹고 자기 자신도 인생망친 순국 선열에 대해서는 위인전이라는 찬란한 이름으로 금칠을 하기는 바쁘지만, 막상 자기 자식이 머리 좋고 똑똑해서 충분히 서울대학교 의학부, 법학부, 경영학부 등을 갈 성적이 되면서도, 조국 영농을 위해서 농대를 가겠다고 하면 뜯어말리기 바쁘다.
이 정도로 그치면 다행이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에 대해서는 가볍게 버릴 수 있는 사명감을 다른 이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기준삼아 비판한다.이들의 기준으로 의사는 돈도 많이 벌면 안되고 불쌍한 사람은 무조건 무료로 의료 행위를 시행해야 진정한 의사고, 교사는 애들을 잘 가르치는 실력은 물론이고 밥 굶는 애들이 있으면 자신의 사비를 털어서라도 밥을 먹여야 하며, 모든 일에 있어서 모범이 되어야 스승이다. 상인은 절대 손님을 속여서는 안되고 무조건 최고의 품질과 최저의 가격을 갖추고 장사를 하되 전혀 도움이 안되는 손님이라도 친절해야만 개념 박힌 상인이고, 정치인은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서 한몸 바치면서 돈도 밝혀서는 안되고, 능력도 있어야하며, 절대 권력을 탐을 내어서도 안되야 진정한 영도자다.
뭐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평생 살면 좋겠으나, 아쉬운 점은 자기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근처에 있으면 이런 사명감은 가볍게 쓰레기통에 구겨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이득이 될 만한 관계의 사람이 의대를 갔다고하면 요즘은 무슨 과가 돈을 잘 번다더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거의 뭐 덕담이고, 사돈의 팔촌이라도 국회의원 한 자리 꿰찼다고 하면 자기 아는 사람이 금뺏지 달고있다고 떠벌이지 못해서 안달이다. 어디그뿐인가? 봉사활동 점수라는 이상한 교육과정덕에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 어린 애새끼들이 담배 한갑과 봉사활동 2시간을 바꿀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사회 아닌가? 이런 추태를 보고있으면 '사명감,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다.

4. 대의민주주의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 정치인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평균 수준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 다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나와서 확률적으로 당선되는 제도이기때문에 절대로 평균 이상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대의민주제를 비꼬는 의도에서 발생한 이 말은 아쉽게도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과 무섭도록 맞아 떨어진다. 택시만 타면 지겹도록 듣는 정치인들을 씹어대는 소리가 무색하게, 옆 자리 손님이 자고 있으면 이상한 길로 뱅뱅 돌아다니는 것이 택시기사고, 의사 새끼들 도둑놈이라면서 다 쳐죽여야 된다고 흥분하는 시장 소매상인들치고 밑지고 팔아서 망한 장사치는 본적이 없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뇌물수수로 감방가고 애새끼들 군대 빼는 정치인들이 나빠보이지만, 대한민국의 평범한 인간들을 그 자리에 올려놓으면 더하면 더했지 절대로 덜할리가 없다는 것이 개인적 생각이다. 술자리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아직 군대 안간 남자애들 어떻게 하면 면제받거나 공익으로 빠져서 편하게 살까하고 궁리하는 것을 보면.
더이상 눈에 보이지도 않고 계량할 수도 없는 사명감을 강요하지 말자. 어차피 자기 자신이 그 자리에 오르면 지킬 생각도 없는 사명감으로 괜히 다른 이들을 구속하기보다는 자신이 그 위치 이상의 자리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궁리를 해라. 뭔가 나라꼬라지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싶으면 자기 자신이 정치인이 되서 바꾸면 되는거고, 의사 새끼들이 맘에 안들면 자기 자식 의사로 만들어서 평생 낙도에서 자원 봉사 시키면 되는거다.
'그래서 세상이 언제 바껴요?'라고 물을지도 모르겠으나, 분명히 세상은 바뀐다. 김영삼 정부 이래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까지 계속해서 발전해 온 언론의 자유는 젊은 시절 민주화라는 열망에 사로잡혀있던 이들이 사회의 주력이 되면서 가져온 현상이다. 위정자들이야 우리가 언론을 풀어줘서 그렇다고 지껄일지 모르겠으나, 지금의 조중동을 비롯하여 한겨례, 경향 등이 미친 듯이 날뛰는 것도 이런 경향을 뒷받침 해주는 깨인 국민들이 있어서 가능한거다. 전두환 시대때만 해도 대머리라던가 주걱턱 여사 욕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간다는 소리가 있었다는 말만해도 당시 시대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더이상 사명감을 강요하지 말라.그런 헛된 소리로 기득권층을 비난하고, 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능력이 안되서 가지지 못하는 것에서 기인한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고, 그들이 이익을 포기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다른 물질적 수단으로 그들이 봉사할 수 있도록 유도하라. 지금처럼 일정 금액 내의 기부시에는 세금 감면을 해주는 방법처럼 말이다. 이를 두고 부자들의 생색내기 내지는 기업들의 위선적 행태라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실제 도움받는 이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인간이 큰 맘먹고 내는 ARS 1000원보다 대기업에서 세금 감면 목적으로 주는 혜택을 더 많이 받는다.
국민들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것은 이 나라의 법이 얼마나 공정하게 집행되는지에 대한 감시뿐이고, 그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될 경우 시정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뿐이다.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와 그 느릿느릿한 변혁 속도가 맘에 안들면 홍길동처럼 무인도하나 잡아서 율도국을 세우던가 아니면 박정희처럼 쿠데타라도 일으켜라.
 괜히 자기도 지키지 않을 사명감으로 욕하지 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