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cino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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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 of invective
시작하기에 앞서 '이고깽'이란 '이계 난입 고교생 깽판물'로서 사용된 단어입니다. 환상 소설에 큰 관심이 없으신 분들은 읽어도 재미없으실 겁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환상 소설[각주:1]의 위치는 전례에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미즈노 료와 그 동료들이 소드 월드라는 게임의 룰을 팔아먹기 위해서 시작한 TRPG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한 '로도스도 전기'가 저작권 문제로 '마계마인전[각주:2]'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기 시작하여 판타지 소설이라는 것을 받아들인 한국은김근우의 '바람의 마도사' 출판[각주:3]으로 싹을 틔운 후에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에 이르러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 이전까지는 단순한 게임 스토리 이상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던 환상 소설이 일종의 장르 소설로써 자리 매김을 확고히 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드래곤 라자'가 처음으로 출판되었을 때만해도 그것을 처음 읽은 주변인들은 게임 같다는 말을 먼저 꺼냈으니, 최근의 장르 소설 중 환상 소설이 차지하는 규모를 보면 격세지감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 이후, 환상 소설은 전민희의 '세월의 돌', 이경영의 '가즈나이트', 홍정훈[각주:4]의 '비상하는 매' 등의 나름대로의 수준 있는 작품[각주:5]들을 계속해서 쏟아내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환상 소설계의 양적 규모는 어느 나라 못지 않게 발전된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조앤 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가 환상 소설계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의 공전의 히트를 치게된다. 이러한 경향은 J. R. R. Tolkien의 소설 'Lord of the rings'가 영화화 되면서 더욱 증폭되어 현재로서 장르 소설의 대표는 기존의 추리 소설이나 무협 소설을 넘어선 환상 소설이 차지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양적 규모의 팽창은 본인과 같이 환상 소설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바람직한 경향이다. 분명히 이전에는 환상 소설이 뭔지에 대해서 알려줘야 할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면, 최근에는 환상 소설에 대해서 알려줄 필요가 없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대다수는 환상 소설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지만. 한국 문학계에 있어서 순수 문학 지향성과 경도될 정도의 사실주의 강조 경향[각주:6]이 그 근본 원인임은 장르 문학계에 있어 당연한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과연 이것이 기존 문학계만의 문제일까? 환상 소설의 구분은 크게 High-level fantasy와 Low-level fantasy로 나뉘게 된다. 이러한 구분은 '작품의 수준이 어떠한가?'라는 것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소설에서 사용되는 작가의 세계관이 현실 세계와 얼마나 큰 밀접성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나뉘게 되는 것이다. 즉, 작가가 설정한 세계관이 J. R. R. Tolkien의 'Middle Earth 연대기'나, 이영도의 소설과 같이 현재 및 과거의 지구와 유사성이 멀수록 High-level fantasy에 가깝다고 보면 될 것이며, 죠앤 K. 롤링의 해리포터나, Anne Rice의 뱀파이어 연대기[각주:7]와 같이 현실 세계에 가까울 수록 Low-level fantasy에 가깝다고 보면 될 것이다. 물론 여기에 C. S. Lewis의 '나니아 연대기'라던가, Lewiss Carroll의 '앨리스'와 같은 현실 세계의 인물이 주인공이되 다른 세계[각주:8]로의 이동이 주가 되는 분류가 약간은 어정쩡한 소설도 존재한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인터넷 연재 및 출간된 환상 소설의 대부분은 이에 속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이계 이동 소설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C. S. Lewis의 소설들에서 볼 수 있듯, 충분한 명작이 나올 수도 있고, 이러한 이계로의 이동은 '금오신화'라던가 '피터팬'과 같이 먼 예전부터 인류의 희망이기도 했던 만큼 순수한 이계 이동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제목에도 적은 바 있는 '이고깽'이지.
'이고깽'이란 '이계 난입 고교생 깽판물'의 약자로서 주로 사용되는데, 우연한 기회에 이계로 건너간 평범한 고등학생이 그곳에서 영웅 취급받고 삼처사첩을 거느리며 부귀 영화를 누린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물론 오노 후유미의 '십이국기'와 같이 이러한 '이고깽' 중에서도 상당한 수작이 나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이고깽'이 환상 문학계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로 인해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어떤 점때문에 이러한 '이고깽'이 환상 소설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었을까? 우선 환상 소설의 주 독자층 문제를 들 수 있겠다. 인터넷 소설의 작가층이건 그 외 일반인들이건 환상 문학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거의 없다. 요즘 학교들의 주 금서목록이 만화, 무협지, 판타지 임을 볼 수 있을 때, 환상 소설이란 유치하고, 애들이나 읽는 것이며, 진지한 문학이 아니다라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환상 소설은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그 독자층과 작가층이 어리다고 할 수 있으며, 생산과 소비는 거의 고등학생을 중심으로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고로 자신과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는 주인공에 호감이 간다는 것은 쉽게 예측 가능하며 이로 인해 주인공의 신분은 '고등학생'으로 정한다는 것은 간단하게 도출할 수 있는 결론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현실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창구로서의 환상 문학 자체의 역할이 이러한 경향을 부추기기도 하는데, 조선 시대의 민초들이 허균의 '홍길동전'이나 실제 도적 두령을 모티브로 한 '임꺽정전'을 읽으면서 대리 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것처럼, 현대의 고등학생들은 자신보다 별반 나을 처지에 있지 않은 고등학생이 그 위력을 보여주는 '이고깽'을 읽으면서 자신의 스트레스를 푼다고 해도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연령층이 어리다는 것이 원인이 될 수 있는데, 작가가 아무리 힘든 경험을 했더라도 현재 한국의 교육과정상 삶의 경험이라는 것은 제한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며, 이는 Low-level fantasy를 쓰기에는 부족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러기에 자신과 유사한 위치에 있는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하되, 그 세계는 현실이 아닌 이계라는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고깽'이 왜 문제가 될까? 부족한 필력이라던가 개연성 없는 전개 등은 차치해두고서라도 환상 소설의 가장 큰 무기인 '비정형성'을 버렸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된다. 초현실주의 문학, 환상주의 문학이 기존의 사실주의 문학, 사회주의 문학에 대한 반발로서 태동되고, 이는 기존의 정형성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을 무기로 삼은 것은 문학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비록 이상 사후로 계속해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한국 문단만 해도 고 이상의 문학들은 현실을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하게 비꼬는 것으로 기존의 사실주의 문단, 사회주의 문단에 일침을 가했으며, 보르헤스, 마르케스를 비롯하여 최근의 주제 사라마구까지 이러한 환상성을 기반으로 하는 문학은 비정형성을 가장 큰 무기로 전개해내고 있다. 그러나 '이고깽'에는 이러한 점이 없다. 대다수의 작가가 모두 고만고만한 설정을 기반으로 욕망을 배출해내듯 글을 쓰고 있으며, 그 대다수의 내용도 명예욕, 성욕, 과시욕, 정복욕과 같은 남성들의 전통적이고, 원초적 욕망을 배출해내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이러한 비정형성의 결과로서 현실에서 어떠한 사람이었던 간에 이계로 진입하는 순간, 그 이계 사람들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 당연시되어 극의 전개에 필연성을 떨어뜨린다. 물론 이계에 진입했던 자가 그 어떤 다른 자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은 북유럽 신화의 주신 '오딘'이라던가, 기독교 신화의 '예수 그리스도' 및 수많은 예언자들과 같이 인류의 원초적 본능에 가까운 것임은 인정한다. 그러나 신화로서의 영역에서라면 모를까, 문학에서까지 신화의 것을 도입한다는 것은 인류 지적 수준의 발달을 싸그리 무시하는 처사다. 적어도 어떠한 경로로 그러한 힘을 얻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줄 수는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이고깽'에서 얻는 힘만 하더라도 옛 미국에서 'Hollywood Fiction[각주:9]'이라고 까지 비난 받았던 무지막지한 힘과 같은 정형성을 보여주는 것에 대해서는 당췌 뭐라 할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현재 한국에서 환상문학을 보고 있으면, 이전 무협 소설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 것과 같아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틀에 박힌 전개와 지나친 성애 묘사로 노루표 무협지, 대본소 무협지라고까지 비난 받았던 구 무협 소설은 그 여파 때문인지 현재의 신 무협 소설 운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간 때우기 용으로 취급 받는 것이 현실이고, 이 추세대로라면 환상 소설도 정확히 그 길을 따라갈 것 같다. 이제 일정한 수준 이상의 작품을 바라는 것은 기존 환상 소설 작가들에게 기댈 수 밖에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