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나중에 후회해 본적은 몇 번 없으나 철이 든 무렵부터 현재까지 계속해서 후회하는 것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어렸을 때 피아노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것이다(그리고 두 번째는 이과를 택한 것이고, 그 중에서도 하필이면 의예과를 택한 것이라고 하겠다.). 혹시라도 피아노 대신에 현악기 중 하나를 배웠다면 후회가 조금 덜했을지도 모르겠으나 현악기라고 해봐야 멜로디보다는 박자감이 더욱 중요시되는 베이스를 쳤었기 때문에 실은 별 의미 없는 가정이라고 하겠다.
물론 서양음악의 기초이자 대한민국 국민학생의 기본 소양 중 하나에 들어가는 피아노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타고난 급한 성정에 의해 바이엘 상권을 배우다 때려치운지라 왼손과 오른손이 따로 노는 음악을 연주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피아노는 건반만 볼 줄 알지 전혀 못 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꿩 대신 닭이라고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야 피아노를 포기한 덕분에 플룻이라는 관악기를 손에 잡아 수년간 배워왔으니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면하였으니 악기를 전혀 못 다루는 것이 아쉬운 것은 아니나, 피아노 강습으로 인하여 길러질 수 있는 음감과 해석 능력의 저하가 아쉬울 따름이다.

 

현은 이성적인 음을 내고, 관은 감성적인 음을 낸다는 말이 있다. 이는 단지 음색의 차이에서 온 소리가 아니라 악기의 발전과정에서 파생된 말로 현악기가 현의 길이에 따른 수학적 법칙으로 소리를 냄과는 달리 관악기는 관에 뚫린 구멍을 막음으로써 소리를 내기 때문에 발생된 어구라고 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은 악기의 구조상 차이로 인해 현악기는 각기 다른 두께의 줄을 위치를 바꾸어 잡음에 따라서 같은 소리를 낼 수 있지만, 관악기는 굉장히 복잡한 기계 구조를 갖추지 않은 이상에야 서로 다른 운지로 같은 음을 내기란 요원한 일이다. 따라서 같은 음을 내는데 있어서 현악기는 어떠한 운지로 그 음을 낼 것인지를 결정하는데 있어 여지를 남겨두어 연주자의 이성을 요구하는 반면에, 관악기는 원칙적으로 한 운지에 하나의 음이 난다는 것에 의해 연주자의 직관적 감성에 따르게 되므로 현은 이성적인 소리를 내고, 관은 감성적인 소리를 낸다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것에 반해 피아노라는 변칙적인 발생 과정을 거쳤으면서도 주류를 차지한 악기는, 최고 10개까지의 서로 다른 음을 동시에 낼 수 있도록 하여, 한 운지에 하나의 소리라는 관악기적 특성을 갖춤에도 불구하고, 음계를 철저하게 분석하도록 요구하는 이전에 없던 형태의 발전을 하게 된다. 이는 사람의 음감을 발전시키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고 생각된다.

 

악기를 배우면서 음감이 길러지는 것은 공통적인 진리이나, 피아노를 비롯한 건반악기나 현악기가 음을 분석적으로 들을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데 비하여 관악기는 음을 직관적으로 들을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게 된다. 그러기 때문인지 본인이 음감이 크게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그 음을 분석적으로 들을 수 있는 능력은 거의 바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음악이 들려올 때, 그것을 직관적으로 듣고 따라 흥얼거릴 수는 있으나, 그것이 어떤 음인지 파악하지는 못한다는 소리이다. 그리고 이것은 음악을 배우는데 있어서 큰 장애로 작용하게 된다.
모든 언어가 그렇듯 음악도 듣는 귀가 발달해야 그것을 재현할 수 있게 되는데,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귀는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제대로 재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전혀 음악을 모르는 사람만 못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는 혹시 노래를 부르다 한 음이 제대로 생각나지 않아서 막힐 때의 답답함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대략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반하장격인 말일 수도 있겠으나, 본인이 어렸을 때 피아노를 억지로라도 배우도록 하지 않았던 부모님이 약간은 아쉽기도 하다. 물론 플룻을 선택하고 이에 따라서 리드를 사용하지 않는 관악기를 비교적 수월하게 다룰 수 있게 된 것은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피아노라던가 다른 현악기로 분석적으로 음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갖춰져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피아노를 배우려다 포기하는 사람이 있거든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피아노라는 힘들고 어려운 악기는 악기 자체의 연주력만을 길러주는 것이 아니라, 음을 분석하는 능력도 갖추게 해주니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많은 사람이 택하는 악기인 만큼 뛰어나게 잘하기는 힘들지 모르지만, 그 훈련과정에서 얻어지는 많은 것들은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줄 기초가 된다고 말이다.

comment

  1. Favicon of http://ingres.tistory.com BlogIcon 앵굴 2007.08.08 00:44  address  modify  write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시청/창음부터 독파를!!!
    나도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내가 바이올린 붙잡는 거만 봐도 폭력을 휘두르셔서-_-;;
    (결국은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대학 입학 발표나자마자 시작하긴 했지만 ㅎㅎ)
    어쩌다 보니 나도 의예과에 와있더라는....blabla...

    • Favicon of https://carcinogen.co.kr BlogIcon Carcinogen 2007.08.08 10:09 신고  address  midify

      흐 동생 올라온 다음부터 시간내서 배워보긴 했는데 포기했어요. 이미 머리가 굳어서 그런가? -_-;;;

  2. Favicon of https://yoshitoshi.tistory.com BlogIcon YoshiToshi 2007.08.08 09:42 신고  address  modify  write

    피아노...나도 배우긴 했었내 --);; 반복적인 연습의 지루함과 타고난 손가락의 짧음을 핑계로 때려치웠었지. 지금 생각하면 나도 참 아쉬운 (에효) 우리집에서는 피아노의 실패 이후 성악을 시키셨었지. 덕분에 노래는 그럭저럭 따라부를 정돈 되었지만 다룰 수 있는 악기 0.

    악기를 못 다루는게 가장 아쉬운 때는 좋아하는 노래가 정말 아름답게 들릴 때. 그럴 때 부쩍 표현수단의 부재를 느끼곤 하지.

    • Favicon of https://carcinogen.co.kr BlogIcon Carcinogen 2007.08.08 10:11 신고  address  midify

      악기는 즐길 수 있는 만큼만 다루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피아노는 음감에 큰 영향을 미쳐서 아쉬울 뿐. 어렸을 때, 2~3년만 배웠어도 이정도로 후회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