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학력으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맞는 말이다. 이상적인 관점에서는.

절대로 중세적 계급주의로 돌아가자는 소리는 아니지만, 현실에서는 위의 말을 적용하기 힘든 경우가 없지 않아있다. 분명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합법적인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지위나 체면 등을 결정하는 것은 직업과 학력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이는 직업별 선호도에 있어서의 차이로 나타난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것은 같은 업종의 직업에서도 이러한 차별이 공공연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은 장사꾼이고, 대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은 사회지도층 인사다.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파는 것이 자기 직업이라고 떳떳하게 밝히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대형 식품 유통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은 자기 직업은 요식업이라고 당당히 밝힌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로부터 중, 근세 사회까지 직업이란 신분과 일치하였다. 사회에 따라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기는 하였으나, 위정자와 사제 집단은 가장 높은 수준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대다수의 생산직은 피지배계층으로 간주되는 것이 상식이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에서 최초의 선거가 있을 때만해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어찌 감히 우리가 우리의 지배자를 선출하는가라는 의문을 빈번하게 가졌고, 근대민주주의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지역에서도 시민 혁명 이전에는 왕과 그를 돕는 귀족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성은 이미 법률적으로는 직업의 귀천 유무가 철폐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잔존하게 된다. 이것이 사회적 관습 면에서 현재까지 직업의 귀천이 유지되는 이유이다.

인간이 순전히 이성적이지 않다고 하더라도, 지극히 산술적이고 논리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이러한 직업의 귀천은 지금쯤이면 사라졌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이유는 뭘까? 속칭 화이트 칼라라고 불리우는 사무직 종사자들은 블루 칼라라고 불리우는 생산직 종사자보다도 괜찮은 직업이라고 여기는 것을 보았을 때,
육체적 노동 강도와 직업의 존귀함은 반비례 관계를 가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일까? 속칭 3D라고 불리우는 위험하고 더럽고 어려운 일에 종사하는 이들의 직업적 존귀성은 여전히 사회 계층에서 하부에 위치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실제로 육체적 노동 강도가 비슷한 직종에서도 이러한 차이는 발생한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사무직 종사자에 비해서,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사무직 노동자는 사회적으로 좀더 천대시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심지어 생산직 노동자도 대기업 소속자와 중소기업 소속자가 서로 다른 사회적 처우를 감내하고 있다. 더군다나 재미있는 것은 외과의의 경우 3D의 요건을 충분히 만족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처우에서 평균 이상이면 평균 이상이었지, 절대로 그 이하로 간주되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소득의 차이가 이러한 견해를 불러오는 것일까? 분명 동종업종 종사자간에 발생하는 사회적 관점의 차이는 이러한 이유로 설명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간에 평균적인 소득은 대기업 근로자가 중소기업 근로자보다는 높은 것이 현실이며, 구멍가게 사장과 대기업 사장의 사회적 위치를 생각해보면 그럴 듯하게 설명된다. 그러나 여기에도 모순이 생기는 것이, 고위 공무원보다도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자영업자가 과연 사회적으로 더 높은 지위를 갖느냐라고 반문한다면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보통 대형 덤프 트럭 및 콘테이너 트레일러 등을 소유하는 운수업체의 경우 차량 한대마다 연 1억에 가까운 소득을 올린다고 한다. 그렇다고해서 이러한 차량 20~30대를 가지는 운수업체 사장이 이보다 더 적은 소득을 올리는 판, 검사들에 비해서 더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심지어 판, 검사들에 비해서 더 높은 소득을 올리는 변호사도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는 동종업종 종사자이지만 더 사회적 지위가 낮다고 간주되지 않는가?

육체적 노동 강도도, 소득의 차이도 아니라면 기술의 숙련성 유무가 이러한 차이를 가져올까? 물론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몇몇 직업의 경우 이러한 견해가 맞을 수도 있겠다. 의사의 경우 예과를 제외한 4년의 정규 교육과정과 전문의 지망의 경우 추가 5년에 달하는 수련 과정을 요구하며, 충분히 이에 대한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고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수십년간 기술을 연마한 장인은 이에 합당한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고 있지 못한 것을 볼 때, 이것 역시 어불성설이라고 생각된다.

절대적인 원인이 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차이를 각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평균적인 인격의 차이 및 그에 기인하는 이미지에서 어느 정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직업이던간에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이미지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왠지 택시기사는 시끄럽고 쪼잔할 것 같으며, 시장에서 장사하는 자영업자는 목소리가 크고 무식할 것 같다. 건설업자는 화통하고 남자답되 거칠 것 같고, 대기업 총수는 냉정하고 혹독하되 우아할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선입견은 직업의 귀천을 가르는데 큰 역할을 하게된다. 분명히 육체적으로 비슷한 노동 강도를 갖는 직업이어도, 의사와 해체기술자간 사회적 지위의 차이는 천지차이라고 할 수 있으며, 엔지니어보다는 사무직 종사자가 좀더 똑똑하다는 느낌을 준다. 문제는 이러한 직업의 이미지를 쇄신하려는 노력없이 사회적인 법률로 차별을 해서는 안된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는 점이다.

분명히 사회적으로 직업에 따라 차별을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 국회의원들도 그들과 건설 노무자와 같은 지위로 대접한다면 '어딜 감히~'로 시작되는 역정을 낼 것이 뻔하고, 자기 자식이 능력이 되는한 전문직 근로자보다는 생산직 근로자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서양 고전 음악 종사자 아닌가? 풍류를 즐기는 몇몇 양반들이야 취미삼아서 악기를 다루곤하였지만, 100년전만 해도 악기를 다루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하부 계층의 직업이었다. 그러나 흔히들 클래식 음악이라 부르는 서양 고전 음악 종사자들은 자신들의 이미지를 멋지게 포장하여 이미 그 당시와는 비교도 안되는 지위를 누리고 있으며 이것은 당분간은 쉽게 무너질 것 같지 않다.

물론 이러한 이미지의 쇄신에는 앞서 말한 육체적 노동 강도라던가 기대 소득, 훈련성 정도가 바탕이 되어야만 한다. 양반 수염도 먹어야 석자라고, 형이하학적인 조건이 충분히 만족되지 않는 상태에서 형이상학적인 조건만을 개선한다는 것을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최근의 이공계 활성화 방안을 보면 너무나도 이러한 사회적 측면에서의 접근이 미흡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공계 장학금이라는 근시안적인 정책으로는 절대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들에게는 이미 좀 더 좋은 직업을 택할 수 있는 길이 너무나도 활짝 열려있고 더군다나 이는 국가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의학, 치의학, 한의학 대학원 아닌가?

정말로 이공계의 위기가 걱정된다면 괜히 언론에 의사의 이미지를 떨어뜨리고, 이공계가 죽어간다는 물타기 기사나 보내지 말고, 저러한 대안을 폐쇄시키고 그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라. 지금처럼 의학, 치의학, 한의학 대학원으로 갈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놓은 상태에서 이러한 길을 택하는 것은 개인의 일신만을 위한 것이라고 아무리 물타기 기사를 보내봐라. 효과가 있는가.

연구소에서 밤을 새고 야근을 했다면, 철저하게 감시해서 그들의 추가 수당을 지급하면 된다. 정말로 이공계가 국가에 큰 소득을 가지고 올 수 있다면, 저러한 조치만으로 그들의 소득은 개선이 될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연구직을 대우하는 회사는 자연히 도태될 것이다. 그러한 것이 돈이 아깝다고? 그렇다면 그들은 그만한 대우를 받을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국가가 이공계 위기를 조장하는 것은 아직까지 그들이 벌어들일 소득이 꽤나 크기 때문이 아닌가?

정말로 이공계 종사지원자가 적어서 그런 것이라면, 그들에 대한 사회적 처우 개선 방안을 열심히 연구하라. 그들이 존귀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사회적인 요건을 만들라는 소리다. 엔지니어들은 무식하다는 이미지? 엔지니어들이 취미생활을 항유하고 교양을 쌓을 시간적 여유를 가지면서도 소득이 높다면 아마도 개선이 될 것이다. 사실 의사라고 해서 저들보다 평균적 교양이 높기때문에 사회적 지위가 높은가? 소속 의료 기관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평균적으로 저들보다 사회적 처우가 좋고, 여유를 가질 수 있기에 적어도 의사가 엔지니어보다 무식하다는 이미지를 갖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닌가.

분명히 직업의 귀천은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지금과 같은 노력만으로는 사라지지 않는다. 직업의 귀천이 사라지는 날은 아마 인류가 멸망하여 더 이상 직업이 없어지는 날이 되어서야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보다 직업의 귀천이라는 관념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의 시작은 그 것을 과감히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눈가리고 아웅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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