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수년 전부터 의학 용어를 순수 한국어로 바꾸려는 노력은 계속해서 시도되고 있다. 시도되고 있다함은 우선 실제 병원에서 의사들의 사용빈도가 거의 없는 것과 개정이 계속해서 이뤄지면서 우후죽순으로 남발하는 용어 때문이다.
의학계 내에서 한국어 의학 용어를 주장하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나, 이들이 나름의 큰 세력을 얻고 있는 것은 의학계 외부의 힘이 크다. 그들은 한국어 의학 용어가 환자의 이해를 도우며, 자체적인 의학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름대로 그럴 듯한 이유다. 그런데 정말로 이러한 한국어 의학 용어와 한글 처방전이 환자의 이해를 도울 수 있을까?
간단한 예로 L/C(liver cirrhosis)를 들어보자. 한국어 의학 용어로 간경변으로 번역되는 이 질환은 L/C라는 것으로 표기할 때보다 간경변으로 표현할 때가 더욱 더 잘 이해가 되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과연 간경변이 무엇인지 이해가 가는가? 말 그대로 따지면 간이 딱딱해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만으로 간경변이 무엇인지 나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간이 딱딱해져서 어떻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과연 이것이 나같이 멍청한 의대생만의 문제일까? 현재 세계의학계의 중심이자 의학 용어의 메카인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뭐 드라마가 100%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 해도, 그 사람들로서는 모국어일 영어로 된 의학용어를 써서 영어로 설명해주는데도 환자 보호자가 하는 말은 다음과 같다.
"그래서 내가 여기에 서명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소리인거죠?"
실제로 용어가 한국어가 되었든 영어가 되었든 단순히 용어를 바꾸는 것으로 환자가 이해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헛소리다.
그나마 병명은 괜찮다. 처방전에 약 이름을 왜 한글로 써야 할지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약이름은 어차피 고유명사이고 그렇기 때문에 아스피린이라고 적든, Aspirin이라고 적든 환자에게 통하는 의미는 동일하다. 그런데 굳이 이것을 한국어로 적어야 할까? 영어를 읽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 적는다 치자. 그런데 어차피 한국어로 적는다 해도 이 약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알겠는가?
분명히 의학용어를 한국어로 바꾸는 것은 의학을 대중에게 좀더 친근하게 다가가게 하는 것에는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앓고 있는 '내 몸은 내가 잘 안다.'병이 더 퍼질지도 모른다는 것은 나의 기우일까? 보나마나 네이버 뒤져서 정확하지도 않은 의학지식을 한국어로 풀어서 설명하는 인간들과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더욱 더 늘어날 것이라고 걱정하는 것이 소심한걸까? 더군다나 한국어 의학 용어를 환자에게 던져주고 이것으로 설명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의사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것은 괜한 걱정일까?
환자를 이해시키는 것은 한국어 의학 용어가 아니라 의사의 상세하고 정확한 설명이다. 평생 한국어 의학 용어로 떠들어봐라. 차라리 환자의 개념에 맞게 일상적인 용어로 설명하는 것에 미치나. 아이들에게 설명할 때 치아우식증 혹은 충치라고 하는 것보다 이빨을 벌레가 파먹는 것이다라고 설명하는 것이 더 겁을 줄 수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