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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2007년 본과 4학년 교육과정중 '환자-의사-사회 6' 과목의 세부 교육 과정 '한의학과 보완대체의학'의 과제물로서 작성된 글입니다. 개인의 의견이므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교육 방침 및 목표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혹시나 이 글 그대로 긁어 붙이시지 않도록 미리 경고합니다.

현대 한국의 의사 사회에서 한의학을 보는 눈길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한의학에 우호적인 소수 의사들을 제외하면, 몇몇 의사들의 경우에는 한의학은 사기라고 거품을 물고 비난하며, 다른 이들은 철저한 경멸의 시선으로 한의학을 바라본다. 그리고 한의학에 우호적인 의사들의 대다수도 이것을 한의학적 관점으로 받아들이려고 하기보다는 서양의학의 테두리에 넣고 사용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대다수이다. 그렇다면 과연 한의학은 몇몇 의사들의 주장대로 신비주의의 탈을 쓰고 있는 고도의 사기술에 지나지 않는 미신일까?

한의학을 비롯한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세계의 전통의학은 분명히 어느 정도는 현대 의학이 밝혀내지 못한 효과를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다. 미신이나 위약 효과로 비난을 받던 침술도 지금에 와서는 경락과 경혈에 대한 나름의 생리학적 근거가 밝혀지면서 의학적 효과를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으며, 전세계 제약회사의 신약의 다수가 전통의학적인 근거에 기초를 둔 약제의 재료에 기반을 두기 시작한 것도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이러한 예를 고려하면, 전통의학을 무조건 신비에 기반을 둔 미신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굉장히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비록 지금은 모든 경우에서 명확한 의학적 근거를 알 수 없지만, 수년에서 수천 년에 걸쳐 마련된 수많은 임상적용사례가 전통의학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전통은 한국에서 한의학이 서양의학의 공격을 방어하는데 있어서 그 어느 것보다도 유용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전 황우석 사건 때, 최초로 그의 연구성과에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유명해진 브릭이라는 인터넷 웹사이트가 있다. 젊은 이공계열의 연구자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이 웹사이트를 두고 전 국민의 의식수준에 대해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겠지만, 구성 집단의 특성상 평균적인 대한민국 국민보다는 과학적인 사고에 익숙한 이들이라고 간주하고 전개하겠다. 비록 황우석 사건과 같은 국민적 관심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곳에서도 한의학의 효용에 대한 논쟁이 있었던 적이 있었다. 재미있었던 점은 황우석 사건 당시에도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한의학 논쟁 때에는 과학적인 면에서의 철저한 논증을 주장하기보다는 동양적 신비에 기반을 둔 효능을 주장하는 이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며, 이들은 이미 수천 년에 걸친 임상적용사례가 있으므로 추가적인 검증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 것이다. 분명 수많은 임상적용사례는 의학적 근거로서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갖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옳은 일인지 묻는다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의학을 구성하는 가장 큰 두 가지 개념은 효용성과 안정성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모든 의학적 시술은 효용성과 안정성을 철저하게 계산하여 선택해야만 하며, 때에 따라서는 심각한 부작용이 예상되더라도 효용성 때문에 시술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것은 국가에 의해서 배타적 독점권을 인정받은 면허를 취득한 의사에 의해서 선택되게 된다. 그렇다면 국가는 어떠한 기준으로 의사 면허의 취득을 인정하는가? 단순히 행정적인 면, 법리적인 면으로만 본다면 의사 면허는 국시원에서 주관하는 시험을 통과하는 자에게 부여하는 단순한 자격증일지도 모르나, 이 시험은 그 어떠한 시험보다도 철저하게 객관적인 시험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며, 이는 또한 전세계 의학계에서 이룬 학회와 논문을 기반으로 한 합의에 기초하고 있다. 의학계의 논문은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현대 과학의 기초인 통계적 분석방법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새로운 시술은 반드시 이러한 과학적 근거를 입증해야만 받아들여지게 되어있다. 또한 이는 신약과 기존의 약 사이의 비교, 의료 시술간 효율-안정성 비교 등을 통해서 기존에 행해지던 의료 시술에도 끊임없이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한의학은 이러한 일을 하고 있는가?

현재 한국에서 한의학은 소수가 이러한 과학적 입증을 시도하고 있으나, 이것이 주류라고 보기에는 힘들다. 오히려 처방 공개의 법제화가 되어있지 않아서 비방이라는 방식으로 각 한의사간 차별화를 두려는 시도가 횡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시술에 과학적인 입증을 요구할 경우, 수천 년에 걸친 수많은 임상적용사례가 입증하고 있다고 주장하거나, 서양 과학의 잣대로는 판단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분명히 현재의 과학으로는 한의학의 효능을 입증하는 것에 한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한의학의 효용-안전성을 입증해서 안 된다는 것은 과학에 대한 과대평가 혹은 오인에 기반을 둔 주장이다.

 

과학이라는 것은 절대로 순차적인 단계를 통해서 발전해나가는 학문이 아니다. 토마스 쿤이 일찍이 주장했던 것처럼 과학은 패러다임의 변동이라는 격렬한 변화를 거쳐서 발전하며, 이는 어제까지의 진리를 오늘날의 거짓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은 의학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 분명히 어제까지는 금기사항이었던 적응증이, 과학적인 근거를 둔 합의에 의해서 적응증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지금과 같이 의학이 발달하게 된 것도, 과학적 연구방법이라는 잣대를 받아들여서 히포크라테스를 기반으로 하던 교조주의적 의학 연구 사조를 몰아낼 수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며 이는 한의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분명히 현대의학의 시초가 되었던 서양의학도 이전에는 한의학에 있어서의 사상체질과 유사한 4체액설을 금과옥조로 떠받들던 때도 있었으며, 지금 보기에는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시술이 상당한 근거를 갖춘 것으로 간주되어 시행된 적도 있었다. 분명히 한의학은 근대 이전의 사고 체계, 철학적 체계의 틀로 본다면 진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과학적인 효용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사람은 철학적 사고로만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라, 유기 물질로 구성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의학의 이론적 체계가 어떠하던, 실제 행해지는 한의학적 시술은 반드시 신체에 물리적, 화학적인 반응을 유발하는 것으로 효용성을 발휘하지, 철학적인 이론체계로 효용성을 발휘하는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히 한의학은 효용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으로 환자를 위한다면 효용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의료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효용성이 있을지도 모르는 만큼, 효용성이 없을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위해성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현대의학적인 패러다임으로 한의학의 효용성을 검증하는 것이 힘들다면, 최소한 과학적인 패러다임으로 한의학의 효용성을 검증해야만 한다. 분명히 한 사람의 지혜보다는 여러 사람이 토론해서 얻는 지혜가 더 뛰어날 확률이 높다는 것은 공리이며, 한 명의 임상례보다 수많은 연구를 통해서 입증된 수많은 임상례를 증거로 하는 것이 더 신뢰도가 높다는 것은 진리이다.

 

한의학은 사기가 아니다. 그러나 한의학의 주체인 한의사들은 지금 기꺼이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다. 그들은 아직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사실을 입증 받은 것처럼 대국민 홍보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환자를 위한다면 굳이 한의학을 현대의학과 다르게 취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세계의 전통의학이 과학적 연구를 통해 현대의학으로 입증된 것과 같이, 한의학 또한 전세계를 무대로 효용-안정성을 입증해야만 한다.

한의학이건 현대의학이건 궁극적인 목표는 환자의 질병을 치유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 오직 하나다. 그러나 한의학이 신비주의적인 면을 버리고 효용성을 입증하여 현대의학과 동일한 위치를 차지하고 싶다면, 지금과 같이 무조건적으로 과학적인 입증을 거부하는 것은 업무태만이다. 분명 현대의 과학 수준으로 한의학을 모두 입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새로운 입증방법을 개발하기 위해서라도 한의학은 과학의 잣대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지금의 과학적 잣대를 이용하여 입증이 가능한 시술을 중심으로 의료행위가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이러한 것이 싫다면 지금과 같이 의학과 동등한 위치에 서려고 애를 쓰기보다는 종교적 치료와 같은 위치에 서는 것을 각오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과학적 진리란 한 명의 특수한 개인에게 적합한 사실이 아닌 인류의 보편 타당한 가치에 기반을 둔 사실이기 때문이며, 이론체계는 철학적일지 몰라도, 약제를 비롯하여 인체에 영향을 주는 시술은 물질적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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