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최저학력[각주:1]이라는 속칭 '이해찬 1세대'로서 국민학생으로 입학해서 국민학생으로 졸업했으니, 본인은 초등학교를 단 하루도 다닌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학교라는 말보다는 초등학교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아마도 뇌가 덜 굳었을 무렵에 바뀌어서 그랬던가? 하긴 중학교 입학하고 반에서 자기 소개할 때, 대다수가 'OO초등학교를 나왔습니다.'내지는, 'XX국민 아니 초등학교를 나왔습니다.'라고 말했으니 말이다. 실제 나온 곳은 국민학교이면서.

사실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초등학교로 바꾼 것에는 큰 불만이 없다. 국민학교의 국민 자체가 일제 강점기에 쓰였던 '황국신민'의 약자라고 하니까. 정말로 예전의 국민학교 시절에야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되는 말도 안되는 국민 교육 헌장[각주:2]도 줄줄 외우게 시켰다지만, 본인은 저런 격동기에 학교를 다녔기 때문인지 저런 거 외워본 적 없다. 물론 학교 구석에 국민 교육 헌장비가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이 때쯤 되면 궁금한 점이 생긴다. 왜 그토록 많이 쓰이는 '국민'이라는 단어 중에서 하필이면 '국민학교'만 바뀌었는가?

우선 좋은 의도로 고민해보자. 어린이들은 나라의 미래이므로 그들부터 천천히 교육시켜나가서 자주적인 인간으로 살도록 만들기 위해서 그리하였을 수가 있겠다. 이제 더 이상 한 나라의 국민으로 종속되어 살지 말고, 자주적인 인격을 갖춘 인간으로 살라는 뜻일 것이다. 그 덕분인지 시험점수도 알려주지 않는다고 하였고[각주:3], 등수로 갈리는 기존의 교육보다는 속칭 '미국식 교육'에 좀더 가까운 교육을 받는다고 들었다. 뭐 이것만이라면 좋겠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가?

아무리 초등학교 시절에 자주적이고 창의력을 강조하는 교육을 행한다고 해도 말이지, 절대로 기존의 교사들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모르나? 본인이 어렸을 때 '울산'이라는 전국 평균보다는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보이는 도시에서 교육을 받아서인지 초등학교 교사들 중에도 상당히 그런 성향의 교사들이 많았다. 아니 대다수랄까? '바른 생활'시간에 북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당시 담임이었던 교사가 우리 나라는 북한과 달리 '박정희 대통령'님이나 '육영수 여사'님이 훌륭한 분이긴 하지만 북한처럼 떠받들지 않는다고 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선생들에게 질문하는 것을 싫어했던 본인은 왜 현 대통령인 '노태우'가 아니라 들어보지도 못한 '박정희'란 사람을 꺼내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마지막 시간이었고 귀찮았거든. 당시 상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나마 남아있는 기억의 단편들을 조합해 볼 때, 그 교사분 전형적인 경상남도적 정치 성향을 보였던 것 같다. 근데 말이다. 이거 조금 심한 '세뇌교육'아닌가? 양친이 모두 전라도 출신이고, 그에 따라서 주변의 다른 사람들보다는 진보적인 정치색채(사실 별 차이는 없다. 지지하던 맹주가 기명사미가 아닌 김대중 슨상님이었다는 것과 박정희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외하고)를 띄는 가정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중학교 이후 대충 현대사에 대해서 알아 갈 수록, 계속해서 저 상황이 떠올랐었다. 더군다나 담임이었던 사람도 아무래도 '초등학교' 교사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도 떠오르고. 뭐 '국민학교' 교사로서는 모르겠지만.

뭐 어찌되었건 이상적인 최고의 환경에서 '초등학교' 교육을 받았다고 치자. 그러나 그 이후의 교육과정은 어떠한가? 이미 교육과정도 바뀌었지만, 여전히 대학에 목숨 거는 교육은 차이가 없지 않은가? '초등학교'를 나오나 '국민학교'를 나오나 어차피 겪어야 하는 그 이후의 과정에서 차이가 나지 않는데, '국민학교'가 '초등학교'가 되는 게 무엇이 그리 대수인가? 물론 어린 시절의 교육이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저런 식으로 급작스레 교육 환경이 바뀌는 것이 올바른 가치관 형성에 도움이 될까? 오히려 컬쳐 쇼크만 불러올 것 같은데.

그나마 교육은 조금 낫지. 미국발 국제화의 물결에 휩쓸려서 국제화의 탈을 쓴 미국식 표준화를 거칠게 밀어붙이는 미국과 그에 대항하는 EU를 비롯한 중국, 인도와 같은 제3의 세력간의 대결이 본격화된 현재에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기존의 가치와 새로운 가치간의 무한 충돌이 불러일으키는 아노미 상태에 빠져있다. 한 세대 만에 농업에서 공업, 정보통신업의 물결이 밀어닥치던 격동성 때문일까? 이미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대학 교육과정까지 모두 마치고 사회로 진출하는 상황에서도 '국민'이라는 단어는 사회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고, 기저에 깔린 민족주의적, 파시스트적인 개념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개나 소나 '국민 가수', '국민 여동생'이라고 자처하면서, 집단주의적 광기로 몰아가지 않았나?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꾼다고 모든 아이들이 입에서 영어를 씨부리면서 창의력 대장이 되어 졸업하지 않듯이(Hey men~, say Creative P.O.W.E.R!), 모든 것의 본질을 고치지 않은 상태로 이름만 바꿔 단다고 환골탈태하지는 못한다.
전반적인 사회의 뒷받침이 없는 교육 개혁이란 닭짓이기 때문이다.


P.S. 1. 한글과 컴퓨터에서 만든 '한글 2005'는 '국민학교'를 자동으로 '초등학교'로 고치더라. 옳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서글픈 느낌이 든다.
P.S. 2. 민주신당. 잘해봐. 그나마 너희는 언론이 취재하잖아.
P.S. 3. 올해도 '이인제'님의 활약을 지켜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여간 이놈의 세상이란. 참고 포스팅<2007/07/06 - [Talk] - Reputation or Notoriety>

  1. 과연 어떻게 측정했는지 궁금하다. 신기한데 [본문으로]
  2. 그럼 낙태당하는 아해들은 민족 중흥을 시키지 못할 것 같으니까 운명적으로 낙태된건가? [본문으로]
  3. 중학교 시절, 저 소리를 듣고 왠지 억울했었다. 누구는 전교등수까지 꼬리표로 달려나오는 시험을 보고 있었는데 -_-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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