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식객을 보았다. 허영만 화백의 원작을 기반으로 하여 제작된 영화로 처음 티져 광고를 보고부터 기대를 많이 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화려한 한정식 같은 느낌이다.
본인은 속칭 한정식이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본래 아버지가 정식이라는 개념보다는 단품을 여러 가지 시켜서 양껏 드시는 것을 좋아하시던 스타일이셔서 그런지는 몰라도, 본인 또한 한정식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래서일까? 나는 일명 한정식을 잘한다는 곳에는 가본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갈 것 같지 않다.
한정식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색색의 수많은 반찬들이 화려하게 나열되어 식욕을 돋운다. 그러나 그 수많은 반찬들 가운데서도 항상 사람들의 손이 가는 반찬은 지정되어있다고 보아도 될 정도이며, 그래서인지 그런 반찬들 외의 구색 맞추기로 내어놓은 반찬은 같은 식당에서 내어놓았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나는 한정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여기에는 본인이 한정식을 좋아하지 않는 만큼 맛있는 한정식 집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다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만화 식객은 한정식이라기보다는 투박한 뚝배기에 담긴 사골 국물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한 개의 요리, 혹은 한 개의 식 재료를 가지고 내용을 만들고 이를 따뜻하게 전개해나간다. 만화 식객의 서사는 결코 빠르지 않다. 뭔가를 감각적으로 보여주려고 하기보다는 핵심을 짚어나가면서 천천히 보여준다.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어머니가 아이가 칭얼거릴 때 가끔씩 뒤돌아서 웃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이러한 식객의 장점은 사라졌다. 영화가 요리 제조 프로그램도 아니고, 식 재료 다큐멘터리 영화도 아닌 이상에야 한 개의 에피소드로 영화를 만들기는 사실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영화 식객에는 만화에서 극찬을 받았던 많은 에피소드들을 수없이 짜깁기해놓았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보여주기 위해서 요리대회라는 형식을 채용하였다. 물론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는 모르겠다. 준비한 재료를 다 써먹어야만 할 테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천천히 그러나 따스이 바라보던 눈길은 화려하고 감각적인 영상으로 변형되었다. 물론 이것이 절대적으로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 식객은 원작을 무리하게 재현하려고 했다가는 어설픈 휴먼드라마가 되기에 딱 좋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1
사실 식객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저러한 영상이 아니었다. 실제로도 본인은 화려하고 감각적인 영상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2아마도 식객이 원작이 없었다면, 그리고 본인이 원작을 보지 않았다면 좀더 극찬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영화 식객의 영상미는 뛰어나다. 하지만 문제는 요리대회라는 틀과 그에 억지로 끼워 맞춘 편집, 그리고 주인공 성찬의 변화다.
‘미스터 초밥왕’으로 번역된 ‘쇼타의 스시’나 ‘요리왕 비룡’으로 번역된 ‘신 중화일미’나 모두 요리대회라는 틀에 집착을 해서 이야기가 그려진다. 실제로 저런 요리대회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서사 전개의 틀이 잡혀버린 이상 만화가는 그림의 퀄리티와 소재의 독특함, 그리고 표현의 과장으로 차별화를 시키는 수 밖에 없다. ‘미스터 초밥왕’의 박수 손 아저씨는 박수를 쳐대면서 혓바닥에서 바다가 느껴진다고 중얼거리고, ‘요리왕 비룡’의 암흑 요리사들은 마약까지 풀어대면서 요리를 만들지 않는가? 아마 만화 식객이 저런 요리대회 타이틀을 걸고 쌈질하는 만화였다면 나는 아마 보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이미 비슷한 만화가 있는데 그에 비하면 서사 외적인 면이 약한 식객을 굳이 볼 필요가 있었겠는가? 식 재료 차장수라는 친숙하지만 한번도 주인공이 되어보지 못한 직업을 기초 삼아 그려나가는 식객의 이야기는 성찬이 운암정의 요리사가 아니라 떠돌이 차장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또한 앞서 말했듯이 호평을 받은 에피소드를 억지로 끼워넣다보니 영화 중간중간에 전개가 비약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뭐 이 부분은 어떻게든 화려한 영상으로 메우고 있기는 한데, 뭔가 어설픔이 느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보기에 예쁜 조각들을 모조리 꿰어다 만든 조각보라는 느낌이랄까? 그나마도 실밥이 눈에 튀는.
더군다나 영화에서 성찬은 정말 맘에 들지 않는다. 생긴 거야 영화 흥행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성찬과 닮지 않은 배우를 썼다고 치더라도 그 성격까지 최고지향형 열혈 바보 요리사를 만들어낼 것은 또 무엇인가? 아아 식객에 ‘비룡’의 용이 각인된 전설의 식칼이 자꾸 떠오른다. 미친다 아주 그냥.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있기에 좋아했던 것이, 실제로 그 싫어하던 틀을 그대로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이대로 식객 2, 3편이 만들어진다면 광선검을 들고 회를 치는 요리사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영화 식객은 만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수작일지 모르겠으나, 원작의 독특함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평범한 범작으로 그칠 것 같다. 화려하기만 한 한정식처럼.
P.S. 1. 임원희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이미 극에 도달한 것 같다. 하긴 무대인사에서 ‘저 다찌마와 리 아니거든요?’라고 했다더라. 이미 실생활과 일체화 된 것인가?
P.S. 2. 써놓고 보니까 너무 재미없는 것 같은데, 재미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