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 모든 지름은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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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cinogen Roasting #2. GX-10+35/2, F3.2, 1/8sec.



연세대학교 임상의학종합평가를 보기 전날의 일이다. 이미 카페인 중독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물질 남용을 자행하고 있는 나로서는 밥도 먹었고 배도 불러서 커피나 마셔볼까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Indonesia Mandehling[각주:1]full-city roasting[각주:2]되어있는 캐니스터[각주:3]를 열었다. 그렇다. 모든 일은 이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날 저녁 갈아 마시기에는 충분한 양이 있으나, 이전에 사두고 냉동실에 고이 보관한 1kg짜리 원두는 이제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며, 우선 캐니스터에 있는 원두를 탈탈 털어 Zassenhaus[각주:4] 151MA 핸드 밀에 부어 넣은 후 들들들 갈면서 커피 메이커에 넣고 기다리는 와중에 원두를 살 때마다 고민하던 웹사이트[각주:5] 중 한 곳을 방문했다. 그렇다. 모든 일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시험기간에는 일간지의 사설조차 재미있다는 소리가 있다. 평소에는 죽어라고 하지 않는 집안 정리도 왠지 이맘때면 하고 싶고 말이다. 커피를 내리는 도중에 그 웹사이트의 Contents란을 클릭한 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 그곳에는 Home Roasting이라는 악마의 유혹이 고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모든 일은 이곳에서 효시를 쏘아붙였다.

재미있게 글을 읽던 도중, 문득 나에게는 하나의 번뜩이는 영감이 떠올랐다. ‘나도 해보자!’ 그렇다. 모든 일은 이곳에서





관두자.
그래.
질렀다
. -_-;;




Indonesia Mandehling
Indonesia Java[각주:6]는 여태껏 한번도 보지 못한 태초의 모습[각주:7]을 뽐내며 우리 집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커피를 볶을 때는 바닥이 두껍고 깊은 조리 기구에 볶아야 타지 않고 제대로 볶을 수 있다는 말에 끌려서 가마솥 재질인 무쇠로 된 튀김 솥도 오늘 집에 도착하여 육중한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니께서 집으로 돌아가신 다음에 와서 일단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어머니가 계셨던 어제는 무쇠 솥도 도착하기 전이고해서 바닥이 사정없이 긁혀서 쓰지 않는 냄비에다 시험 삼아 볶아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옆에서 따스하게 지켜보시던 모친의 말씀이 나중에 살림은 잘하겠구나.[각주:8] 어찌되었건, 사정없이 볶고 나서 식힌 다음에 시험 삼아 한 스쿱 갈아보았다.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뻑뻑하니 갈리지 않는다. 혹시 하는 마음에 핸드밀의 배를 열고 속을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평소보다 밝은 모습을 보이는 커피가루가 수줍게 배를 깔고 누워있었다. ‘~ 덜 볶았구나.’ 일단 식히고 있던 커피 콩 하나를 집어다가 깨물어 보았다. 역시나 겉만 타고 속은 덜 익은 상태다.

젠장 이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 한번 냄비를 올리고 불을 켠 후에 미친 듯이 볶았다. 다시 볶은 탓인지 맛은 다 날아갔지만 향은 살아있다. 그나마 다행이다. 어찌되었건 다시 한번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무쇠 솥만 오면 두고 보자
.’

그리고 마침내 무쇠 솥은 크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집에 도달하였다. 무쇠 솥에 묻어있던 기름을 닦아내고 다시 한번 도전하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 Carcinogen Roasting #2, Blending #6를 마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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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cinogen Roasting #2, Blending #6. GX-10+35/2, F3.2, 1/6sec.




언제나 그렇듯 모든 지름은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다.

  1. coffee의 한 품종이다. 강배전할 경우 고소하고 스모키한 맛이 일품이다. [본문으로]
  2. Roasting된 정도를 의미한다. 비교적 강하게 Roasting되어 있다. [본문으로]
  3. 밀폐용기를 일컫는다. [본문으로]
  4. 독일의 유명한 목재 제품 제작 브랜드. 6년전에 15만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구입하였다. 이젠 한국에서 찾기 어렵다고 한다. [본문으로]
  5. Jablum과 Caffe Museo [본문으로]
  6. coffee의 한 품종이다. 제법 유명해서 동명의 Soft-ware도 있다. 흔히들 말하는 카페 모카는 이 원두에 초콜릿을 첨가하면서 시작된 Hot Mocha-Java에서 유래되었다. [본문으로]
  7. Green Bean 상태 [본문으로]
  8. 참고로 본인은 남자다. [본문으로]

comment

  1. Favicon of http://glisten.co.kr BlogIcon 빛나는 어떤 것 2007.11.15 20:20  address  modify  write

    역시 안 물어보길 잘 했어.

  2. Favicon of https://yoshitoshi.tistory.com BlogIcon YoshiToshi 2007.11.15 20:59 신고  address  modify  write

    솥까지 질렀단 말이냐...무서운 놈 ㅡㅡ);;;
    그런데 가스렌지로 가마솥 급의 냄비가 데워지긴 하디...????

    (커피를 즐기진 않는다만 니가 뽂은 그놈은 시음을 한번 해보고 싶어지누만 ㅋㅋ;;;)

    • Favicon of https://carcinogen.co.kr BlogIcon Carcinogen 2007.11.15 21:50 신고  address  midify

      정말로 거대한 아궁이에 불을 떼야 사용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지 -_-;;

      그냥 약간 큰 냄비정도 크기다.

  3. Favicon of https://annikayou.tistory.com BlogIcon 곰주님2 2007.11.15 22:39 신고  address  modify  write

    바리스타님하 *ㅂ *

    자자 이제 카카오콩을 로스팅해보아요!
    설탕만 더 주문하면 되겠네♡ ㅋㅋㅋ

  4. Favicon of http://ingres.tistory.com BlogIcon 앵굴 2007.11.16 00:24 신고  address  modify  write

    커피를 끊어야 이넘의 tremor를 없앨 수 있을텐데.쩝.
    아침도 커피로 때우고 점심도 커피에 빵이고...내 kidney는 참 바쁠거야.

  5. Favicon of http://teaholic.pe.kr/tt BlogIcon t 2007.11.16 04:48  address  modify  write

    야야 Zessenhaus 그라인더 쓸만해? 한 번에 얼마나 갈 수 있어?

    이 몸이 그라인더를 애타게 찾는 중이시다 ;_;

    • Favicon of https://carcinogen.co.kr BlogIcon Carcinogen 2007.11.16 07:46 신고  address  midify

      1. zassenhaus 그라인더 좋아. 핸드밀중 가장 균일하게 갈린다더군. 크게 갈수록 약간 덜 균일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성능은 만족하면서 쓰는 중. 커피 관련 기구 중 가장 돈값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다는 설이 있다 -_-;;

      2. 내가 가진 것은 4 tablespoon. 그러니까 스타벅스서 파는 금속 계량 숟가락 2번 분량까지는 한번에 갈 수 있다. 이것은 용량따라 다르니 패스

      3. 최근 Peugeot 그라인더도 좋다고는 하더라만 난 안써봤음. 그리고 그라인더는 업소가 아닌 이상 핸드밀이 압도적으로 좋다고 본다. 잘 구해보게나.

  6. Favicon of http://glisten.co.kr BlogIcon 빛나는 어떤 것 2007.11.16 10:33  address  modify  write

    그라인더 잘못 고르면 철분 보충에 좋은 쇳가루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군.

    • Favicon of https://carcinogen.co.kr BlogIcon Carcinogen 2007.11.16 11:32 신고  address  midify

      다이나믹 코리아를 능가하는 판타스틱 중궈에서 생산된 제품들 중에 그런 웰빙 그라인더가 많다지.

      혹시 바람불면 날아갈까봐 중금속을 섞어주는 센스!

  7. Favicon of https://jjpuhaha.tistory.com BlogIcon 곰든벨 2007.11.18 02:05 신고  address  modify  write

    너나 나나
    지름에 항상 약하지..ㅡ.ㅡ;;
    그것도
    시험 전에는 말이지...ㅡ.ㅡ;;
    참..
    서태지 15주년 콘서트 하던데 갈거냐??
    가격도 5만원도 안하던데..
    20일 8시 부터
    내 기억이 맞다면
    티켓 링크에서 하던데...
    하필이면 그 때가
    실험 시간...ㅡ.ㅡ;;
    분명 누군가가 저주를 걸어 놓았을 거야..
    혹시 갈거면 내거도 사놔라..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