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등급제를 두고 말이 많다. 한쪽에서는 대학별 줄 세우기를 타파할 수 있는 혁신적인 교육 정책이라고 극찬을 하는 반면에, 한쪽에서는 노력과 결과의 차이를 희석시키는 말도 안되는 교육 정책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이런 논란의 와중에 올해도 결국 수험생 1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실 수능에 대해서 그리고 그 이전의 입시 단계에서도 대학별 서열화가 문제가 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절대로 망하지 않는 장사가 하나 있다면, 그것이 수험생과 그 부모의 등골 빼먹는 장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한민국은 건국이래 60여 년의 세월 동안 건국 초기의 극히 힘들었던 몇 년을 제외하면 사회의 모든 계층은 좋은 대학을 가는 것에 올-인을 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리고 이것은 과거 제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조선 시대의 선비들을 생각나게 하는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 정상적인 12년의 정규 교육 과정을 거쳐왔다면 한반도는 자원의 박물관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를 미리 예측한 것일까? 우리네 조상은 자원조차도 다품종 소량생산에 맞는 지형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경제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 산업입국이라는 기치를 높이 든 채로 자원 가공 공업 무역에 모든 역량을 투자해왔다. 영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의 대항해 시대부터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이어지는 역사가 오래된 경제 개발 계획을 역할 모델로 삼아서.

사실 이런 경제 개발 계획은 나쁘지 않다. 이전의 패러다임 아래에서라면 말이다. 지금 한창 자유 무역을 주장하고 있는 구미 선진국들도 실제로 국가 경제의 기반은 무력을 동원한 보호 무역으로 마련했음은 확고부동한 사실이고, 이러한 점은 원가의 절감과 판매가의 극대화를 통한 시세 차익이 기반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미국과 같이 자국의 자원을 기반으로 경제 개발을 이룩한 특이한 경우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어찌되었건 제3의 물결이라는 정보화 사회가 본격적으로 다가오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은 많은 양의 물건을 최대한 값싸게 생산할 수 있는 능력으로 매겨져 왔던 것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도 이를 충실히 추종해왔다. 정경유착으로 기반을 확고히 다진 대기업과 함께.

앞서 말한 것처럼 제조업이란 본질적으로 많은 양의 물건을 최대한 값싸게 생산하여 최대한 많이 팔아먹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각주:1]
그리고 이런 경제 구조에서 사회는 본질적으로 규격화된 구조를 추구할 수 밖에 없다. 사회의 다양성 추구? 컨베이어 벨트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다양성의 추구가 가당하기나 한 일인가? 물론 현재 서구 선진국에서는 다양성의 추구를 장려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과연 제조업의 패러다임아래에서도 그러하였을까? 본인이 그 시대에 살지 않아서, 그리고 그 시대의 그 국가에 살지 않아서 이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제조업의 시대 막바지에 영국에 살았던 이들의 노래 가사[각주:2]를 보면 결코 다양성을 추구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이런 사회는 사회적 구조상 고대로부터 내려져왔던 줄 세우기를 추구할 수 밖에 없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조립되는 제품들의 부품들이 규격에 맞춰져서 생산되어 제품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처럼, 사회의 최상층에 적합한 인재부터 잉여인간이라고까지 표현되는 사회의 최하층에 적합한 인물까지 한 줄로 나열한 후, 각 계층마다 품질 관리를 하는 것이 사실 가장 적합한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대한민국도 이러한 품질 관리를 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모든 비극이 발생하게 된다.

현재 대학들은, 그리고 사실상 이 대학들을 조종하는 대기업은 창의적인 인재를 원한다고 한다. 물론 빠방한 실력도 갖춘 채로.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에서 창의성과 상상력이란 상상화시간에 모두 똑같이 그려대는 초등학생들의 그림만큼이나 진부하기 그지 없는 주제이다. ! 무슨 그림인지 모르겠다고? 왜 그런 그림들 있지 않은가? ‘대전 엑스포한빛탑과 같은 건물들이 죽죽 서있고, 그 사이사이로 유리로 된 것과 같이 투명한 튜브 사이로 콘택 600’을 닮은 캡슐과 비스무리한 자동차와 같은 것들이 달려가는 키치적 정형성을 보여주는 그림 같은 것.

대학에 대한 무분별하고 소모적인 경쟁을 그만둘 것을 엄숙히 주장하는 이들도 이와 같다. 그들은 고등학교 때까지 모든 열정을 쏟은 이들이 대학생이 되는 순간 노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한탄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대학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큰 목소리로 떠들었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지금 대학생들은 엄청나게 바쁘다. TOEIC도 봐야 되고 TOEFL공부도 해야 된다. 물론 변태 같은 어느 학교에서는 TEPS를 보라고 학생들을 닦달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고시도 준비해야 하고, 그보다는 약간 격이 떨어지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SSAT[각주:3]를 준비하는 친기업적 성향을 보이는 대학생들도 있다. 분명 요즘 대학생들은 공부하느라 바쁘다. 그것이 대학에서 제공하는 교육은 아니지만. 지금 그들은 사기를 치고 있다.

수능 등급제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서는 교육 제도가 바뀌어야만 한다고? 개소리는 집에 있는 개 집 속에나 들어가서 하라고 전해드려라. 교육인적자원부의 장관이 바뀐다고 해서, 학력고사가 수능으로 바뀌고, 수능이 뭔가 또 알 수 없는 다른 시험으로 바뀌더라도, 본고사가 생겨난다고 하더라도 이런 사회 구조하에서 대학별 서열화는 없어질 수가 없는 문제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대학별 서열화가 아니다. 대학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대학교 입학 정원수가 고등학교 졸업 정원수를 뛰어 넘은 것으로 알고 있다. 단순히 생각하면 모든 고등학생들은 수능에서 꼴찌를 하더라도 대학은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극심한 학력 인플레이션은 결국 취업을 위한 또 다른 경쟁을 불러일으켰고, 이것은 이전 대입에서의 극심한 경쟁을 4년 뒤로 늦춘 것에 불과하다. 취업난? 물론 존재한다. 지금도 입시 경쟁은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88만원 세대’,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20대는 흔히 중소기업이라고 하는 곳에 자리가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곳에 취직하는 것은 사회 생활의 시작부터 스스로 한계점을 두는 것임을 무엇보다도 잘 알고 있다. 작은 회사를 내가 들어가서 크게 키우면 되지 않겠냐고? 그 노력이면 차라리 대기업 입사 시험 공부를 하겠다. 대가리에 총맞았는가?

전국에서 1등에서 100등까지를 모아놓아도, 아니 뒤에서 1등부터 100등까지를 모아놓아도 죄수의 딜레마와 같이 그 하부 집단 내에서는 경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대학도 마찬가지이다. 대학별 서열화를 폐지하기 위해서는 서울대학교를 때려잡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 현 제도 아래에서 를 때려잡는 순간은 곧 독수리호랑이
우왕~ ㅋ굳ㅋ를 외치는 순간이 될 뿐이다
.
대학들이 경쟁다운 경쟁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현재 있는 대학들의 수를 대폭 줄이고, 살아남은 대학끼리 무한 경쟁을 시키는 수 밖에 없다
. 너무 극단적인 것이 아니냐고? 현 제도 아래에서 서열의 밑바닥에 있는 대학들이 과연 감히 SKY를 비롯한 서열에 도전할 수 있을까? 나는 그들이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더 극단적이라고 여긴다. 본인이 현 입시제도의 수혜자이고, 비평준화 고교 출신으로 주변 친구들도 서열의 상위권에 있는 대학들에 대부분 진학했기에 이런 소리를 지껄이는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고등학교 3학년이 되서(혹은 학교에 따라서는 조금 더 이른 시기에), 모의고사 별 입시 배치표를 보기 전에는 이름조차 알 수 없던 대학들은 모조리 폐지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

이런 식으로 대학들을 폐지하는 것은 정보화 사회에 맞지 않는 행동이 아니냐고? 웃기는 소리하지 마라. 우리 대학에 들어오면 출석하지 않아도 학점 준다며 교수들이 로비하고 다니는 대학에서 잘도 우리 사회를 먹여 살릴 인재가 나오겠다. 그지?

수능 등급제는 단순히 교육 제도의 부작용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리 허접한 곳이라도 대학을 나와야만 인간다운 취급을 받는 우리 사회의 풍조와 제조업의 패러다임에 빠진 이들이 빚어낸 슬픈 기형아일 뿐이다. 수능 등급제를 해보라. 아마 올해도 입시경쟁은 치열할 것이다. 전국의 대학들이 서열화가 되어있는 이상, 그 서열의 상위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의 불만은 터져나올 수 밖에 없다. 제발 부탁인데 대학 정원을 줄이고, 각 대학끼리는 무한 경쟁을 유발할 수 있도록 하라. 하긴 의과대학 경쟁률이 세다고 의과대학원 제도를 도입하는 만행을 저지르는 이들이 이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1. 물론 속칭 명품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희귀한 수량을 기반으로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제조업의 분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제조업 패러다임에서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니까 넘어가자. [본문으로]
  2. We don't need no education. We don't need no thought control. No dark sarcasm in the classroom. Teacher, leave those kids alone. All in all it's just another brick in the wall. All in all you're just another brick in the wall. from Pink Floyd, the Wall [본문으로]
  3. 삼성입사시험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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