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음식의 조리를 시작한 이래로 끊임없이 미각을 충족시킬 수단을 강구하고 마련해왔다. 발효라는 미명으로 포장된 치즈나 홍어, 술뿐만 아니라, 죽음을 각오하고 섭취하는 복어회의 독까지 인류의 식재료에 대한 투쟁은 끝이 없는 듯 하다. 이는 최근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금도 퓨전 요리라는 이름 하에 세계 각국의 전통요리를 결합시키려는 노력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세계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더욱 큰 탄력을 받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이것은 커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커피를 끓여내는 방식은 차를 우려내는 방식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발달되어있다. 물론 이것은 차와는 달리 커피는 지용성 성분이 상당히 포함되어있다는 것에 기인하는 것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커피의 기원과 그 전파 방식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간주해야만 할 것이다.
커피가 서구에 전해진 것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공성전 실패와 철수에 의해 남겨진 군수 물자에서 발견되면서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비잔틴 제국민들이 가장 처음 어떻게 커피를 추출해내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초창기에는 그 특유의 쓴 맛에 의해서 커피가 큰 대접을 받지는 못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고래로부터 전해지는 터키 방식의 커피였다면 말이다 1.
어찌되었건 커피가 서구에 전해지면서 유럽이 잠에서 깨어났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커피는 석회질 성분으로 인해 물의 품질이 좋지 않던 유럽지역에서 와인의 지위를 몰아내고 생활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수많은 추출 방식이 만들어진다.
가장 간단한 추출 방식인 프레스 방식에서부터 종이 필터나 융을 사용하는 드립 방식 2 3, 그리고 기이하게 생긴 기구를 사용하는 사이폰 과 추출하는 데에 수시간이 걸리는 4 Dutch coffee 5까지, 유럽 지역에서는 커피의 지용성 성분과의 투쟁을 미친 듯이 거듭해왔다. 그리고 그 결정판이 100여 년 전 이탈리아에서 발명되었다. 엄청나게 높은 증기압으로 커피의 성분을 최대한으로 추출해내는 방법. 에스프레소가 그것이다 6.
사실 에스프레소는 기술의 발전이 없었다면 절대로 발명해낼 수 없는 추출방식이다. 현 7재 판매되고 있는 대다수의 에스프레소 기기는 10 bar이상의 압력을 자랑하는데, 1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만족할 만큼의 소형화, 대중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8그나마 가정에서 사용할만한 개량 에스프레소 기기인 모카 포트도 9 4 bar 이상을 넘는 제품이 없는 것을 보면 에스프레소 추출 방식의 어려움이 짐작이 가지 않는가?
사실 커피가 인류의 기호품으로 자리잡은 것은 굉장히 신기한 일이다. 커피는 맛, 산도 10, 묵직함, 11향4가지를 모두 즐길 수 있어야 제대로 즐기는 것이라고 하지만 12, 아무래도 가장 강렬하게 와 닿는 것은 쓴 맛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미각은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 2가지로 나뉜다고 하는데, 선천적 미각이란 생존을 위해 발달된 동물적인 감각을 의미하고, 후천적 미각이란 생존에 관련 없이 맛을 즐기기 위해 개발한 인류만의 감각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시면 되겠다. 13간단히 설명하자면 선천적 미각이란 이 물체가 먹을 수 있는 것인지 판단하는데 도움을 주는 감각인데, 이것은 탄수화물에 주로 함유된 단맛으로 대표된다. 그리고 후천적 미각이란 반복되는 접촉으로 인한 학습효과로 이것이 해롭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때 완성되는 것으로 주로 쓴맛으로 대표된다.
쓴맛이 미각 중 가장 충족시키기 어려운 고급의 감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은 쓴맛 자체를 즐기는 이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쓴맛을 즐긴다는 것은, 그 쓴맛을 포함하고 있는 식재료 자체의 향이나 질감 등의 다른 감각이 충분히 그 개인을 만족시킬 때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쓴맛을 자랑하는 술이나 두릅 등이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술을 즐기는 이들에 술의 쓴맛을 느끼며 인생을 느낀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실제로 이들이 그러한지는 알 수 없으나 술의 쓴맛과 함께 발생되는 기분의 고양감과 술 자체의 향기로 인해 학습된 효과로 술의 쓴맛을 기분 좋은 것으로 느끼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14
어찌되었건 과학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에스프레소는 유럽 일부 지역에서만 애용되다가 미국 발 Starbucks의 침공으로 전 세계에 널리 퍼지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현재 전 세계를 공략하는 Starbucks의 고향 미국은 이전에만 해도 커피가 맛없기로 소문난 동네였다는 점이다. Umberto Eco를 비롯한 많은 유럽인들이 American coffee로 대표되는 미국식 커피를 향도 옅고 맛도 밍밍한 걸레 구정물에 비유할 정도로 씹어대었으며, 이러한 경향은 지금도 남아있다고 한다. 실제로도 Starbucks는 그 원두의 신선도 면에서 다른 15local café에 비해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고, 이것을 커피 본래의 맛과 향을 해치는 시럽으로 메우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tarbucks는 커피를 처음 서구에 전해준 터키, 중동 지방에까지 침투하여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고 하니, 이를 보고 역설적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해야 할까?
아마도 인류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계속하여 식재료와의 투쟁을 거듭해 나갈 것이며, 이는 더욱 가속화되어 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도 지금까지는 상상도 못했던 방식이 개발될지도 모른다. 에스프레소를 두고 인공적인 맛이니 기다림의 여유가 없다느니 하는 말도 많지만 16, 아무려면 어떠한가 마음에 들면 즐기고 아니면 버리면 되는 것을.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하나 더 늘어난다는 것은 그 만큼 인류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 잘게 분쇄한 커피를 주전자에 넣고 여러번 반복하며 끓여낸 후에 그 가루까지 같이 잔에다 부어서 마시는 방식이다. 그 특유의 쓴 맛과 높은 카페인 함유량으로 유명하다. 중동 지역에서 보는 커피점이란 이 터키 커피를 마시고 난 후 바닥에 남은 커피 가루의 모양을 보고 시행한다고 한다. 물론 어떻게 보는지는 모른다. [본문으로]
- 굵게 갈은 원두를 뜨거운 물에 접촉시킨 후에 거름망을 통해 걸러서 먹는 방식이다. 원두 자체의 맛을 가장 잘 반영한다고 한다. [본문으로]
- 커피를 추출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필터나 융에 의해서 커피의 맛이 변질된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제대로 뜸을 들이고 추출한 핸드 드립 커피는 커피의 최고봉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커피메이커라고 부르는 기계들이 드립 방식을 응용하여 제조된 것이며, Starbucks에서 파는 오늘의 커피도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본문으로]
- 알콜 램프와 모래 시계 모양의 유리관으로 구성된 기구이다. 에스프레소 이전에는 가장 커피의 성분을 잘 추출해내는 것으로 각광받았으나, 에스프레소 이후 큰 타격을 받고 현재는 일본에서만 그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볼 정도로 크게 축소되었다. 물론 이것에는 사이폰의 관리가 힘들다는 것도 한 몫했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방식으로 파는 까페가 몇군데 있기는 하다. [본문으로]
- 길다란 유리관에 분쇄한 원두를 넣고 찬 물을 부어서 수시간에 걸쳐서 추출해내는 커피. 분명 차가운 커피지만 특이한 향과 묵직함은 다른 어떤 커피보다도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국내에서는 커피지인이라는 까페에서 접해 보았다. 다른 곳에서는 아직 본적이 없다. 혹시 다른 곳을 알면 제보해주시면 감사드리겠다. [본문으로]
- 현재는 우리 나라도 Starbucks의 영향으로 에스프레소가 친숙하지만, 그 이전만해도 이탈리아에서 커피를 마시면 눈꼽만한 컵에 한약처럼 쓴 커피가 나오니 한국식으로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cafe-au-lait를 주문하라는 것이 여행 안내 책자에도 당당히 기재되어 있었다. 이것을 보면 세월의 흐름을 잘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caffe themselves가 가장 맛이 있었던 것 같다. [본문으로]
- 내연 기관의 발명이 없었다면 에스프레소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본문으로]
- 초창기에는 무지막지하게 큰 가스 터빈을 이용했다고 한다.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본문으로]
- 개인적으로 모카 포트와 에스프레소는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간이형 에스프레소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모카 포트는 압력솥과 같은 방식으로 커피를 추출해내는데 연결 부위간 밀폐와 곱게 갈아진 커피로 인한 수증기압의 증가에 기초를 둔다. 물론 너무 과도하게 커피를 눌러담을 경우(템핑이라고 한다.), 수증기압이 이것을 이기지 못하여 커피가 제대로 추출되지 않기도 한다. [본문으로]
- 커피의 4가지 맛이란 단 맛(sweetness), 산미(acidity), 쓴 맛(bitterness), 신 맛(soreness)을 의미한다. 간단히 맛과 산도를 묶어보았다. 표현이 애매하지만 acidity란 적정하게 신 귤과 같은 과일에서 느껴지는 맛이라고 생각하면 되며, soreness는 오래된 유제품이나 식초 등과 같은 것에서 느껴지는 시큼한 맛을 생각하시면 되겠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acidity는 적당한 신 맛, soreness는 과도한 신 맛이라고 생각하시라. 신 맛이라고 표현하니 산미와 구분을 짓기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영어로 표현했음을 양해바란다. [본문으로]
- 커피를 마실 때 입안에 느껴지는 향과 여운을 표현한다. 와인과 같이 light-body~full-body란 말을 쓰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커피를 목으로 넘기고 나서 숨을 쉴 때 코끝에 맺히는 잔향이라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 커피에는 모두 7가지 향이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한 종류의 커피에서 이를 한번에 모두 느끼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후각이 고도로 발달하신 분은 다르겠지만. 우선 향은 혼합되어져서 느껴질 뿐만 아니라, 이 향이 커피의 맛을 좌우하기 때문이며, 원두의 종류와 로스팅 정도에 따라서 주로 느껴지는 향의 비율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7가지 향이란 fruity, nutty, cereal, smoky, chocolate, caramel, rubber를 의미한다. 보통 산도가 강한 커피는 fruity가, 단 맛이 강한 커피는 chocolate이, 쓴 맛이 강한 커피는 smoky가 주가 되며, 고소한 맛은 cereal이 주가 된다. 쓴 맛과 단 맛의 중간 정도의 향이 caramel이라고 간주되며, nutty는 볶지 않은 생땅콩에서 나는 냄새와 비슷한 냄새다. rubber는 smoky가 나무타는 향과 같은 느낌을 주는 것과는 약간 다른 느낌을 준다. 말로 설명하려니 어렵다. 그냥 그러려니 하시길 바란다. 보통 배전이 약할 수록 fruity, nutty가 강조되며, 배전이 강할 수록 smoky, rubber가 강조된다. [본문으로]
- 물론 인류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미뢰를 가지고 있는 소가 들으면 웃을 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인류는 소보다는 훨씬 다양한 식재료를 즐기므로 인류만이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자. [본문으로]
- 물론 이것은 본인도 그러하다. [본문으로]
- 로스팅 된 정도와 보관된 상태에 따라서 다르기는 하지만 7~10일 정도가 peak라고 간주된다. 신선도를 알아보기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은 드립 커피용으로 갈은 원두에 뜨거운 물을 부었을 때, 얼마나 부풀어오르는가를 관찰하면 된다. 오래된 커피는 거의 부풀어 오르지 않는다. 다만 강배전한 원두는 비교적 부풀어 오르는 정도가 미약하므로 이것을 절대적 척도로 삼아서는 안되겠다. [본문으로]
- 에스프레소는 물이 끓기 시작하면 30여 초 이내에 추출되는 것이 정상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