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방명록에서 신나게 까일 것을 기대하면서 글을 올린다. 아프간 사태 때 한국 개신교도 까고, 쁘띠 거니와 몽구, 승연이도 도매금으로 같이 까고 대선 당선이 유력시 되는 우리의 명박이 형도 까버렸는데 페미니스트 하나 더 깐다고 해서 생명 연장의 꿈에 큰 지장이야 있겠는가? 굳이 방명록을 클릭하기 귀찮다면 나를 댓글로 까도 좋아. 뭐 이건 매져키스트도 아니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대한민국의 페미니스트가 정말 싫다. 그렇다고해서 남녀가 평등해야만 한다는 기본적인 명제를 무시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난 그 정도로 꽉막힌 남성우월주의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시작하기에 앞서서 마초이즘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넘어가자.
오늘도 인터넷의 발달로 쌓여가는 재고 처리 비용을 네이버에서 받는 것으로 충당하는 두산 대백과의 정의에 따르면 마초란 다음과 같다. 마초(macho)는 에스파냐어(語)로 남자를 뜻한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성적 매력이 물씬 풍기는 남성을 의미하는데, 마초증후군은 이러한 남성적 기질을 지나치게 강조해 남자로 태어난 것이 마치 여자를 지배하기 위한 특권이라도 되는 듯이 행동하는 일련의 증상 또는 그러한 행태를 가리킨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용어로 굳어지지 않고 마초콤플렉스와 혼용되기도 한다. 마초의 두드러진 특징은 덩치가 크고 근육질이며, 정력이 센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날카롭고 부리부리한 눈매, 매섭고 강인한 인상, 빳빳하게 다림질한 와이셔츠의 칼라, 우람하고 억세 보이는 가슴 등 튼튼한 남성적 이미지는 모두 자랑거리가 되고, 자기 우월론의 바탕이 된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러한 성향이 여성들을 비하하거나 공격함으로써 여성을 남성의 지배 대상으로 삼는 성차별주의 또는 지나친 남성우월주의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증상이 바로 마초증후군이다.
뭐 여성 해방 운동을 일컫는 페미니즘의 찬사에 비하면 사뭇 까칠하기 그지 없는 표현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마초라는 용어 자체가 마초에 의해서 정의된 것이 아닌 페미니즘의 안티 테제, 즉 반명제로서 사용되는 것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과연 한국 사회에서 마초가 과연 나쁜 의미로 통하게 될까? 저 까칠하기 이를 적 없는 사전적 정의를 보아도 한국에서 마초란 '싸나이'라는 개념과 통하며 모름지기 남자란 저래야지라는 말을 들을 것 같은데?
한국 사회에서 남자란 살기 쉽지 않다. 소수를 제외한 남자들은 전방에서 빡세게 굴러야 하며, 그 소수의 일부도 관공서에서 일정기간동안 자신의 기회 비용을 저임금으로 치환해가며 의무적으로 노동해야 한다. 어디 그것만이랴. 지금의 중장년들은 자신과 비슷한 연배의 같은 남성 동료보다 못하다는 자괴감을 눌러 참아가며 치사하고 더럽더라도 언제 어떻게 짤릴지 모르는 직장에서 벌벌 기어가며 노동력을 돈으로 환산해가야만한다. 더군다나 조금이라도 힘들다고 징징거리려면 주변의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남자답지 못하다며 구박하기 쉽상이다. 뭐 그리고 그 남자다움이란 앞서 언급한 마초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하시면 되겠다. 그나마 지금의 중장년은 조금 더 낫다. 옆나라 일본에서 들려오던 황혼 이혼의 여파가 우리 나라로 밀려들기 시작한 것도 꽤나 되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젊은 날에는 불공평한 이득은 누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혜택은 그들의 절반도 받지 못한 채, 비난은 도매금으로 같이 받는 젊은 세대들이다.
남녀 평등을 주장하는 여성들에게 고통도 같이 분담하자, 너희도 군대가라라는 말을 하면 '너네도 애 낳아라!' 내지는 '남자 새끼가 니 애인, 니 동생 군대보내고 싶냐?'라는 말을 듣는 것도 그러려니 한다. 뭐 애 낳는 것이야 생물학적 당위에 속하고, 군대를 가는 것은 사회적 당위에 속하는 것을 모르는 기본적인 사회 상식이 박히지 않은 인간이 짖어대는 것을 들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으니까. 후자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도 없다.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한 때 '전거성'이라는 칭호로 인터넷을 주름잡았던 전원책 변호사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이미 이 문제에 관한한 남자들의 피해 의식은 이미 극에 달했다고 볼 수 있으니까. 굳이 여기서 또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내 생각이 알고 싶다면 1여기를 누르시라.
직장 내에서 또는 학교에서 공공연히 '남자 새끼가 힘도 없다.', '남자가 되서 그것도 못하냐?' 같은 남성 성희롱적 발언이 오가는 것도 그러려니 하자. 뭐 성추행도 있는데 그 정도가 대수인가? 그래 까짓거 한번 막나가보자. 남자도 똑같이 하면 되겠지 뭐.
'여자애가 생긴게 왜 그러냐?'
'여자가 되서 커피 하나 제대로 못타냐?'
분명 페미니즘이란 그 의도에서는 좋고 바람직한 사회 방향이다. 인류 역사 이래 비합리적인 이유들로 수천년간 억눌려왔던 여성의 사회적 권리를 찾는다는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나도 이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아니 전적으로 찬성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이미 이 단계를 넘어서서 그 이상의 권리를 탐하고 있다. 이건 무슨 개소리냐고?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으로 간주되었던 사법, 의료 영역에서 여성의 성과가 두드러지면 이건 여성의 뛰어나고 섬세한 능력이 발휘된 예다. 그러나 아직 이것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남성 기득권의 횡포로 인한 것이므로 여성할당제가 필요한 영역이다. 2
전통적으로 여성의 영역으로 간주되었던 분야에서 여성의 성과가 두드러지면 이것 역시 여성의 섬세함이 빛나는 찬란한 예이다. 그러나 이에 남성이 볼멘소리를 할라치면 남자 새끼가 쪼잔하게 지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을 여자탓을 하냐고 지랄이시다. 뭐 이런 것 말고도 사회적 관습으로 넘어가곤 했던 수 많은 사례들도 있지만 그것까지 다 따지자면 너무 한탄같으니 그만하자. 어찌되었건 그들은 동등한 권리 획득이 아닌, 기득권의 찬탈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 행위를 보이고 있다. 3
만약 저런 행위 자체가 전략적 목적 달성을 위한 전술적 행위라면 여성 운동하는 사람들이 똑똑하구나라고 인정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이다. 어찌되었건 자신이 목적하는 최종목표의 달성을 위해서는 그것보다는 과도한 요구를 한 다음에 져주는 척 하면서 획득하는 것은 협상의 기본이니까. 그러나 과연 그럴까? 사회적으로 억눌려 왔던 현실상 여성 위인이 탄생하기란 거의 불가능 했던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고 여성 위인도 지폐에 넣으라고 되도 않는 억지를 부리는가하면, 막상 넣어줬더니 신사임당은 마음에 안든다고 반발하는 세태를 본다면 아무래도 머리에는 바이져를 연 강철 하이바를 뒤집어 쓴, 옆구리에 랜스 차고 갑옷 입고 돌진하는 잔 다르크를 얼굴만 황인종으로 바꿔서 넣어줘야 되지 않는가 싶다. 유관순이 있지 않냐고? 존경할만한 독립유공자인 것은 맞지만 솔직히 말해서 유관순이 위인이라 불릴만큼 핵심인물이냐? 삐라 돌렸던 행동대장이지. 남자였다면, 그리고 이화 여대의 전신인 이화 학당 출신이 아니었다면 듣보잡 독립유공자로 그쳤을걸?
만약 진정한 양성평등을 원한다면 여성 할당제를 없애고 대신에 다수를 차지하는 한쪽 성의 비율을 제한하는 양성 평등제를 도입하면 된다. 물론 이것도 자유주의자의 입장으로서는 찝찝하기 그지 없는 행위이지만 이성적으로 용납할 수는 있다. 아직 현실적으로 완벽한 자유주의를 외치기에는 평등이 이루어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앞서 주장한 바 있듯이 여성가족부가 아닌 양성평등부로 조직을 개편하고 양성 평등 할당제를 도입하여 좀 제대로 된 정부 조직을 꾸려갔으면 한다. 4
내가 마초아니냐고? 그렇게 비난한다면 황공할 따름이다. 아까도 말했잖아.
난 그들이 말하는 Machoist도 Anti-Feminist도 아니다. 단지 Anti-Feministism을 가진 평범한 자유주의자일뿐이다. 5
그들이 주장하는 양성평등?
그냥 까놓고 말하자. 이 때까지 남자들이 해먹은 것이 부러우니까 그거 먹고 싶은 Feminine Fascist라고.
- 개인적으로 공감이 가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 토론 태도는 옳지 않다고 본다. 버럭하면서 말을 끊는 것은 토론 자세의 기본이 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긴 전여옥보고 토론 잘한다는 사람도 있는 세상인데 뭐. [본문으로]
- 간단히 예를 들자면 여성 합격자수 50% 초과, 사시 합격자 상위 10% 여성 독식 등등 [본문으로]
- 가장 대표적인 예가 초등 교육에 있어서 남자 교원 부족에 대한 방안으로 시행하려고 했던 남성할당제 무산이다. [본문으로]
- 지난 겨울 회식후 성매매업소를 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업체에게 지원금 수여는 연말 보도블록 엎기에 버금가는 코메디였다. 올해는 안하겠지? [본문으로]
- 철자는 잘 보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