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국시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다. 1다리도 아니고 2다리나 건너서 들은 것이지만 어느 한 의대 4학년 국시 준비생은 그다지 공부하지 않고 논다고 한다. 어차피 공부 하지 않아도 붙기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겠지만 그 4학년 국시 준비생의 동문 선배이신 친구 아버지께서는, 국시 준비로 바쁘다는 내 말의 진위를 확인하고자 여쭤본 친구의 말에 ‘국시는 떨어지면 원숭이 소리 듣는다.[각주:1]라고 하셨단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정상적으로 의대 본과 4년의 과정을 거쳤다면 국시는 합격을 해야 한다. 본인에게 새로운 솥을 안겨주었던 임종평을 쳤을 때, 서울대는 2년치 연세대는 1년치 족보만 스윽 훑고 갔는데도 60%를 넘은 것을 보면 어지간해서는 국시에 떨어질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도대체 나는 왜 국시 공부를 하는가?

 

왠지 시험이라면 무조건 준비를 해줘야 하는 의대생의 습성 때문인가? 아니면 본인이 옵세[각주:2]라서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할 일이 없어서인가? 의대생의 습성 때문이라면 겨우 2일 시험보는데 벌써부터 열심히 하지 않을 것이고, 본인은 슬프게도 옵세가 아니라서 옵세의 심리는 모른다. 그리고 아직도 할 일은 많다. 주문해놓고 아직 택배 상자조차 뜯지 않은 키에르케고르가 불안해하며 어둠 속에서 울고 있으며, 볶아야 할 커피도 남아있고, 가야할 많은 여행 장소가 내 앞에 펼쳐져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국시 공부를 하는가?

 

분명 국시 점수 자체는 국시의 비중을 다른 병원보다 낮게 본다고 알려진 본원에 남을 것을 희망하는 본인에게 있어서는, 합격 이후에는 합격 자체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는 못할 것이다. , 국시 점수가 인턴 전형에 큰 역할을 한다고 알려진 다른 대형 병원에 지망하지 않는 이상, 국시 수석 합격을 하지 않으면 합격선에 커트라인으로 붙던, 고득점을 받건 당락에 큰 영향이 없다는 소리이다. 더군다나 아직까지 학교에서 연락이 없는 것을 보아서는 본인은 합격 예상선인 임종평 60%는 넘은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나는 왜 국시 공부를 하는가?

 

면허란 그 소지자가 어떤 특수한 행위를 하는데 있어서 적합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배타적 자격증이다. 그러나 같은 면허증인 운전 면허증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총알 택시처럼 운전하는 사람도 있고, 김여사라 불리는 분들도 있으니, 절대적으로 같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 면허란 특수 행위를 하는데 있어서 최소한의 자격 기준을 갖추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것이 절대적인 실력의 지표라고 간주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국시 공부를 하고 있다.

 

국시 공부는 지겹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은 비교적 준비기간이 짧다고는 하지만, 본과 생활 이후 이토록 긴 시험 준비 기간은 처음이다. 걸핏하면 나태해지고 때로는 그 유혹에 넘어가지만 아직까지 국시 공부를 놓지 않는 것은 미래에 내가 만날 환자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의 피해를 가중시키지 않기 위해서이다. 물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서 지금 알고 있는 지식은 쇠퇴해갈 것이다. 나는 지금 간이 왼쪽에 있는지 오른쪽에 있는지 조차 기억 나지 않는다며 농담을 하시던 정신과 교수님처럼, 아니 굳이 멀리 가지 않더라도 당장 내년이면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하나도 기억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Tension pneumothorax라고 생각되는데도, 응급실에서 그것을 머리 속에서 떠올리지 못해서, 혹은 혹시 그것이 아니어서 환자에게 소송당하는 것이 무서워서 CXR을 찍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5개를 외우면 4개가 기억나는 n-1의 법칙에 따라서 보다 많은 것을 머리 속에 쑤셔 넣으면 보다 많이 남아 있지 않을까? 그리고 머리 속에 남아있는 것이 많을수록 좀더 잘 대처할 수 있겠지. 그렇기에 나는 국시 공부를 한다.

  1. 지적을 받고 수정하였습니다. 원글은 '국시는 원숭이나 떨어지는거다.' [본문으로]
  2. Obssesive-Complusive (Personal) Disorder 강박증 혹은 강박성 인격 장애. 본인이 강박적이라는 것을 알면 강박증, 그것을 모르면 강박성 인격 장애. 강박적으로 공부를 하는 의대생을 일컫는 말이다. 아마 옵세라면 지금쯤 철자가 틀린 단어를 발견했을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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