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영화에 대한 이런 상반된 현상을 보려면 우선 2가지를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 중 하나가 마카로니 웨스턴에 대한 이해이다. 본인이 태어나기 전, 한 때 온 극장가를 '서부 영화'라고 하는 웨스턴 무비가 전 세계를 휩쓸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웨스턴 무비는 장르 영화답게 대개 정형성을 보여주게 된다. 공포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저절로 닫혀서 절대로 열리지 않는 문이나 무협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대나무 숲 내지는 주루에서의 혈투라던가 하는 정형성처럼, 서부 영화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지 않은가? 해가 지는 석양을 배경으로 악당과의 1대1 총잡이 대결이라던가, 바람에 따라 휘날려가는 이상한 식물[각주:1], 그리고 가슴으로 열어 젖히는 스윙 도어같은 것이 이를 대표하는데 이러한 것을 채용한 웨스턴 무비는 한 때,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고 한다. 요즘이야 이해가 안갈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헐리웃 블록버스터가 전 세계 극장가를 휘어잡는 것을 보면 전혀 이해가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웨스턴 무비에 대항하여, '우리도 웨스턴 무비를 만들겠다!'라며 도전장을 내민 나라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이탈리아다.
솔직히 지금 생각에는 이탈리아가 무슨 웨스턴? 이건 뭥미? 이럴지도 모르겠다만 당시에는 꽤나 흥행에 성공했다고 한다.[각주:2] '웨스턴'이라는 장르에 이탈리아의 미남 배우들이 나온다는 것만해도 꽤나 성공했다나? 어찌되었건 이러한 웨스턴 무비 및 마카로니 웨스턴은 승승장구해가다가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몰라도 스리슬쩍 자취를 감추게 된다. 혹시 이러한 것과 비슷한 영화계의 변화를 한국에서 직접 관찰하신 분들도 계시지 않는가?
그렇다. 바로 90년대를 강타했던 '중국 영화[각주:3]'의 몰락이다. 80년대 초반생이었던 본인은 어찌보면 한국에서 '중국 영화'의 전성기를 마지막으로 관찰하고 겪었던 시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와 같은 현대를 배경으로 한 홍콩영화나 '영웅 본색'을 비롯한 홍콩 느와르는 자국 영화시장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큰 히트를 쳤다. 그러나 장르 영화의 특색이나 한계때문일까? 어느 순간부터 관객들은 홍콩 영화는 다 똑같다는 인식에 빠지게 되고 연이은 흥행실패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홍콩 영화시장도 마찬가지 였다고 한다. 물론 그 이면에는 중국으로의 반환과 같은 역사적 사건도 있었다고는 하지만. 어찌되었건 웨스턴 무비도 한국에서의 홍콩 영화와 비슷한 전철을 앞서 밟으며 점차로 사라진 것이 아닐까라고 추정해본다. 물론 내가 그 시대에 살지 않았으니 추정일 따름이다.
어찌되었건 그러한 마카로니 웨스턴에서도 유명한 작품이 있었으니 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란 제목의 원작이라고 할 수 도 있는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가 그것이다. 한국에서는 석양의 무법자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각주:4] 어릴 적 아버지가 빌려오신 비디오를 같이 보았던 것 밖에 없으니. 어찌되었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좋은 놈으로 나왔던 이 영화는 상당한 히트를 친 마카로니 웨스턴의 중심과도 같은 영화라고 한다.
혹시 쿠엔틴 타란티노라는 감독을 아는가? '저수지의 개들'이나 '펄프 픽션' 그리고 최근의 '킬 빌'까지 뭔가 B급 영화같은 영화를 찍으면서도 거장으로 칭송받는 그에 대해서 이해한다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대한 상반된 현상을 조금은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한다. 저수지의 개들이나 펄프 픽션같은 옛날 영화는 조금 접어두고 비교적 최근 영화인 '킬 빌'을 한번 보자.이 킬 빌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동양 액션 영화에 대한 오마쥬로 범벅이 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가장 간단한 예를 들어볼까? 바로 주인공이 입고 있는 노란 츄리닝과 흑백으로 처리되어 적들을 칼로 도륙내는 장면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장면들은 홍콩영화 혹은 무협영화를 보았다면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이 들것이다. 그렇다 바로 홍콩영화를 서양에 처음알렸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이소룡(李小龍, Bruce Lee)의 사망유희에서 입은 복장에 대한 오마쥬이며, 무협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객잔에서의 격투에 대한 오마쥬이다.
이러한 장르 영화에 대한 애정 혹은 지식이 없다면 김지운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만주 벌판을 배경으로하는 내용없는 액션 영화로 밖에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다시 생각해보면 쿠엔틴 타란티노도 배경이 서양인 중국 영화나 시칠리아 마피아가 아닌 갱 영화를 찍었을 뿐이지 않은가? 그렇다. 바로 장르 영화의 정형적인 미쟝센을 따라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서 조금씩 감독의 스타일대로 비틀어버리는 센스로 단순한 B급 장르 영화 그 이상의 파괴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럼 이러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배경이 만주 벌판이라는 것 외에 어떠한 점에서 차이가 나는가?
혹시 고전 웨스턴 무비를 본 사람들은 마지막의 대결을 기억할 지도 모르겠다. 석양이 저물어가는 텅빈 거리에서 총잡이들이 대결을 펼친다. 물론 야비한 악당은 약속보다 먼저 총을 끄집어 들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늦게 꺼내고도 한발의 총알로 적을 해치우고 유유히 떠나가는 것이 바로 고전적인 씬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 1발로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고? 우선 리볼버는 6발의 총알이 들어가는 것이 정석이다. 서부 시대에는 피스톨이 없었기 때문에. 더군다나 1발로 정확히 끝내지 않으면 명사수라는 이름이 울지 않겠는가? 그러나 아쉽게도 마지막 장면에서 끝임없이 총알을 쏟아부어댄다. 왠지 명사수라는 느낌은 전혀 안들지? 그럼 이것은 단순히 반항심에서 나타난 일탈적인 오마쥬 일까? 단순히 생각한다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귀시장에서의 혈투와 같은 것을 보고 있다면 단순히 일탈적인 오마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귀시장에서 좋은 놈은 왠지 정체를 알 수 없이 수없이 늘어진 와이어를 잡아타고 나쁜 놈들을 사냥한다. 그리고 이 장면은 왠지 어디서 보았던 것 같다. 그렇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던 무협 영화에서의 객잔에서의 혈투가 바로 그것이다. 수없이 늘어져있는 온갖 목재 구조물을 부숴가면서 벌이는 혈투는 무협영화에서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이는 서양의 웨스턴 무비와 큰 차이점 중의 하나이긴 한데 서양의 웨스턴 무비의 총격전의 특징이 수평적 구조에서 엄폐물을 이용한 총격전으로 그친다면, 무림이라는 가상적 공간을 상정한 무협 영화에서의 격투는 수직적 이동이 자유로운 편이다. 즉, 사람이 2~3층 거리를 단숨에 올라가고 무영각을 밟으면서 앞으로 끊임없이 나아가도 관객은 당연히 그러려니하고 이해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장면은 매트릭스에서도 오마쥬로 재현되었고. 또한 나쁜 놈이 예전에 이상한 놈에게 패하여 자신의 손가락을 잘렸다는 설정은 무협 영화에서도 흔히 나오지 않는가? 외팔 검객이나 가족의 몰살과 같은 형태로.
이러한 점을 볼 때, 마지막 1발로 끝나지 않는 마지막 결투는 웨스턴 무비에서 그 원형을 따오면서도 끊임없이 결판이 날 때까지 공방이 지속되는 무협 영화를 얹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러한 진지한 장면과 장면 사이에 이상한 놈이라는 캐릭터를 집어 넣음으로써 끊임없이 개그를 섞는다. 그리고 이것은 마냥 진지하기만했던 웨스턴 무비나 무협 영화와는 다른 비뚤어진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오마쥬를 끊임없이 따오고 그것을 감독이 살짝 비틀고 다른 것과 섞었다는 것으로 이 영화는 찬사를 받아야 하는가?
우선 이 영화에 대한 비판 중에 내용이 없다고 비판하는 것은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지만 사실 이 영화의 원형을 생각해보면 약간은 핀트가 어긋나있다고도 생각된다. 솔직히 말해서 액션 영화를 볼 때 스토리야 뼌한 것 아닌가? 그것이 웨스턴 무비라면 그것보다 더 한 것이고. 어찌되었건 이 영화는 내용이 없다고 비판하실 분이라면 내용 찾는 영화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미 구닥다리 장르를 리메이크한다는 것은 예전의 작품들에 대한 오마쥬와 패러디를 범벅하여 약간 비틀어서 자신의 영상을 만든다는 것을 공언하고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고, 영상미적인 측면이나 오마쥬와 같은 면에서는 충분히 만족스러웠으니까? 그렇다면 문제가 뭐냐고?
내가 보기에 문제는 하나다.
너무 쓸데없이 많은 내용을 쑤셔넣으려고 했다는 것.
이 영화의 편집을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했는지는 내가 감독이 아니라 모르겠다만 독립군이나 귀시장파 그리고 일본군은 아예 비중을 확늘려서 민족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영화를 만들었던가 아니면 좀더 내용을 축소시켜서 그냥 비중을 확 줄여버리는 것이 어땠을까 싶다. 특히 아편굴 씬과 그 뒤에 이어지는 소아 구출 씬은 더더욱 그랬고. 정말 제대로 된 활극을 만들고 싶었다면 굳이 독립군이 나올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물론 감독은 의도적으로 독립군의 역할을 축소시켜서 이 영화가 민족주의적 감수성에 의존하는 영화가 되기보다는 만주를 벌판으로 하는 활극으로 만들기를 바랬던 것 같았지만 마지막에 나타나는 독립군 내의 대립은 '도대체 얘들은 뭐니?'라는 생각을 먼저 들게 하였다.
더군다나 3명의 캐릭터간 정형성이 너무 강하게 묻어나오는 것이 불만이다. 물론 '좋은 놈'은 이전 영화에서의 좋은 놈과는 달리 조국의 독립따위를 위해서 열심히 투쟁하는 투사라기보다는 어차피 막장인 조국은 일단 제쳐두고 그 대신 나쁜 놈들을 잡아서 팔아먹는 것으로 연명하는 것에 더 관심을 두는 약간의 비정형성을 보여주기는 한다. '나쁜 놈'도 이전에 '이상한 놈'에게 당했던 과거를 하나 던져줌으로써 왜 그렇게 최고가 되는 것에 집착하는지를 설명해주기는 한다. 그냥 대놓고 나쁘니까 나쁜 놈이라는 전개는 아닌 셈이다. '이상한 놈'도 꽤나 무시무시한 과거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으로 마냥 또라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도 하고. 다만 아쉬운 점은 그렇다고 보기에도 너무 영화 제목에 매달리는 듯한 느낌을 주며 차라리 저런 배경을 설명하지 않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게한다. 왜냐하면 설득력이 느껴지지 않거든. 차라리 아예 뻔뻔하게 미칠듯이 정형성을 추구해서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에서 Mr. Pink는 그냥 게이니까 게이로 나온다처럼 설명없이 나갔으면 더 괜찮지 않았을까?
뭐 나름대로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겠다는 사람은 포기하기 바란다. 이 영화는 고전 웨스턴 영화와 무협 영화의 미학을 떠올리면서 코미디와 함께 화면의 스타일리쉬한 구성과 액션을 즐기는 오락영화니까. 애초에 태생이 오락 영화인데 그런 주제란 것이 크게 있을리가 없잖아?
P.S. 1. 막판에 조금 깐 것 같은데 나 이런 영화 좋아하는 것 알지 않나? 사실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봤다.
P.S. 2. 사실 이 영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이러한 패러디가 아닐까도 싶다. 전삐놈
- 이 장면은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에서도 오마쥬되었다. 물론 2008년판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특급 열차를 타라가 아닌 그 이전의 인터넷 판 영화 다찌마와 리를 의미한다. 본인은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special feature로 들어있는 것을 보고 다찌마와 리에 열광했다. [본문으로]
- 사실 전혀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닌 것이 우리도 '쉬리'를 두고 한국형 블록버스터라고 무지하게 띄워주지 않았던가? [본문으로]
- 이제는 대개 홍콩 영화라고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당시에는 구분하지 않고 쭝국-중국이라고도 발음하지 않는다.- 영화라고 불렀던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그랬다. [본문으로]
- 사실 몇편의 서부 영화를 보았는지라, 이것이 내가 보았던 영화가 맞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