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리고 지금까지도 꾸준한 인기를 누리던 한 여배우가 자살했다. 정말로 자살인지 아닌지부터 시작해서, 그 원인에 이르기까지 끝없는 루머가 나돌고 있지만 실제로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와중에 소문 유포자로 알려진 증권사 직원 중 한명이 구속되고 이를 빌미로 인터넷 상의 의견을 올리는 것에 대한 강한 제제를 보이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녀의 죽음의 원인을 찌질한 인터넷 키보드 워리어의 악플로 인한 것으로 간주하는 어떤 정치집단의 발의가 그것이다.
'최진실 법'이라는 로마법과 같은 이름의 가칭을 지닌채로
실제로 최진실이 찌질이의 악플때문에 자살했는지, 아니면 우울증으로 인한 정신병리적 현상의 최후로 자살을 했는지 알 수는 없다. 그것은 그야말로 죽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비밀이므로. 그리고 잠시 눈을 돌려 수년전에 나왔던 영화로 시선을 돌려보자. 1
V for Vendetta. 매트릭스의 감독이었던 워쇼스키 형제에 대한 떡밥으로 많은 사람들을 낚았던 영화가 그것이다. 모든 언론이 통제되어있고, 사람들은 그에 대해서 어떠한 의문도 갖지 않는 사회. 그리고 그러한 사회에 대항하기 위해서 기괴망측한 가면을 쓰고 국회의사당을 비롯한 건물들을 폭파시키는 괴인의 이야기.
사실 Big brother로 상징되는 언론과 사회에 대한 통제에 대한 이야기는 죠지 오웰 이후로도 끝없이 반복되어와서 진부하기 짝이 없는 소리일 수도 있다. 오죽하면 우리나라에서도 Big brother라는 단어가 그냥 사용되겠는가? 그러나 지금 보았을 때는 어처구니 없는 이런 상황이 실제로 수십년 전만해도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지금의 언론자유가 어찌보면 인류역사를 통틀어 보았을 때 비정상적으로 발달되어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실제로 대중매체라는 것이 발달한 이후로 정보의 파급속도는 그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가장 간단한 예를 들자면 '천리안'이라는 신통력에 대해서 들 수 있을 것이다. TV라던가 신문, 라디오 방송이 없던 시절에 멀리 떨어진 곳의 일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능력이었다. 실제로 정보의 중요성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항상 강조되어 왔었으며 정보가 나오는 곳에서 권력이 형성된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천리밖의 일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정보를 독차지하고 권력을 생성해낼 수 있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고 이는 실제로는 이뤄질 수 없는 기원과도 같은 느낌을 주게 되었다.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에 대한 기득권 층의 집착은 이러한 황당무계한 예말고도 역사속에서도 들 수 있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창제한 훈민정음이 그것이다. 실제로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 한문이라는 독점적 정보통신수단을 쥔 채로 권력을 형성해왔던 기득권층은 훈민정음으로 인한 기득권층의 상실을 굉장히 우려했을 것이라 생각하며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에도 이의 반포를 금할 것을 끊임없이 상소하였다고하니 굳이 한문을 배우지 않아도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세대는 행복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이러한 대중매체의 발달로 정보의 접근성이라는 측면에서의 격차는 크게 줄어들고 평준화되었다. 물론 정보의 질적 측면에 대해서는 여전히 격차가 있겠지만. 그러나 인터넷의 발달이전까지의 정보전달이란 일방적인 것이 대다수여서 각 언론사의 편집국과 그를 조정하는 권력층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 태반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예전에는 9시를 알리는 소리가 울리자 마자 '전두환 대통령께서는,...'으로 시작되는 어구가 뉴스를 장식한다고 하여 '땡전뉴스'라는 자조적인 표현도 있지 않았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약 10여년전부터 급속도로 발전해온 인터넷은 이러한 정보 전달의 틀을 바닥부터 뒤집었다. 이전까지의 정보 전달 방식이 식자층, 그리고 기득권층의 세심한 선별을 거친 고도로 정제된 정보를 중심으로 대중에게 전해지는 방식이었다면, 인터넷에서의 정보 교환 방식은 일종의 정글속에서 끊임없이 치고받는 공방을 통한 정보의 재생산과 다를바가 없다. 2실제로 방송에서 노출사고가 있었다고 하면 그 방송의 댓글란에는 실시간으로 그 노출 영상의 주소가 담긴 리플이 끊임없이 올라오며, 어떠한 소식에 대한 의견이 올라오면 그와 동시에 그에 대한 반박의견이 활발하게 올라온다. 물론 이 과정에서 온갖 유언비어와 루머 그리고 헛소문과 낚시가 횡행하지만 종국에 이르러서는 대다수의 경우 진실이 밝혀지고 한가지 입장으로 정리가 되게된다. 네티즌들은 국민 대다수보다 떨어지는 병신이 아니고, 국민 평균적인 정도의 병신도와 이성적 사유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3
그리고 문제는 다시 최진실이다. 최진실이 악플로 인해서 자살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다고 인정하자. 그러나 이를 빌미로 이러한 의견을 올리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한다면 결코 있어서는 안될 발상이다. 지금의 제도하에서 이런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이 결코 불가능하던가? 최초의 악성 소문 유포자로 추정되는 사람은 이미 체포되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도 수많은 연예인들이 이러한 이들을 상대로 고소를 하였고 대다수는 법적으로 처벌을 받았다. 그런데 이 와중에 원천적으로 의견을 봉쇄하자는 말인가?
지금은 악플을 금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다음에는 기득권 층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의견을 악플로 지정하는 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종국에는 모든 이들이 가식적인 칭찬만을 앞세우는 플라스틱으로 박제된 마네킹들의 대화가 넘쳐나는 무늬만 천국인 인터넷이 될 지도 모른다.
진실이 묻히는 방법은 거짓을 유포하는 것이 아니다.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기회조차 빼앗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진실에 귀막고 여물통에 집중하는 한마리 돼지 새끼나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최진실법에 반대한다. 그것은 진실을 묻어버리는 가장 확실한 악법이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하지만 죽음으로써 그 권리를 지키겠다는 말을 다시 생각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