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 조금 전 글에 올렸으니 되었고 이왕 이끼 이야기를 한 김에 계속해서 나가보자.

이끼에서 핵심적인 부분이야 천용덕과 류해국의 피말리는 싸움이야 되겠지만, 그 기저에는 천용덕과 류목형의 헤게모니 싸움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죄있는 자를 갱생하여 사람으로 만드려는 류목형과 그를 이용하여 세속의 부를 얻으려는 천용덕의 관계는 어찌보면 고래로부터 내려오던 왕권과 신권의 싸움[각주:1]을 연상시킨다.

한국, 중국, 일본을 비롯한 극동아시아 국가의 경우 고대의 제정일치 사회를 제외하고 왕권과 신권은 완연히 분리되어있고, 신권은 사실상 왕권의 밑에서 성장하였으므로 그 영향이 크지 않지만, 근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중세 유럽사는 왕권과 신권의 싸움이 곳곳에서 일어났다고 보아도 된다. 카노사의 굴욕이나 아비뇽 유수 같은 세계사적으로 유명한 사건 말고도, 바티칸 교국의 땅따먹기 전쟁사를 본다면 과연 저것이 요즘 우리가 생각하는 교황이 맞는지 싶을 정도이다.

어찌되었건 왕권과 신권의 대립은 고대 제정일치제가 붕괴되면서부터 일관성 있게 유지되었던 것이고, 그 시기는 각각 다르지만 결국에는 왕권이 승리하게 되면서 신권은 그 세속적 권위를 잃고 왕권에 종속되거나 혹은 세속적 권위에 도전하지 않는 형식으로 종교적 권위를 얻는 것에만 만족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고대 한국사에서도 이와 같은 진행을 찾아볼 수 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소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소도라는 것은 고대 종교의 지도자가 성역으로 지정한 곳으로 살인을 지은 중범죄자가 소도로 숨어들어도 왕권은 그 신권에 맞서 출입을 할 수 없었다고 하니, 이 곳에는 그 어떠한 세속적 권위도 먹히지 않는 공간이었다.

다만 이러한 소도는 고대 3국이 외래 종교를 도입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점차 그 역할을 다하고 스러져가게되었고, 통일 신라시대에서 신라-발해 남북국 시대를 거쳐 고려 시대로 역사가 진행되면서 불교로 신권의 이전이 진행되었다가, 절대적인 신권을 인정치 않고 종교를 왕권 아래로 국한시킨 유교를 국교로 도입하면서 신권이 왕권에 종속되는 세련된 형태의 제정일치 사회로 진행되면서 그 비중이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P.S. 천용덕을 주어 없는 그분으로 해석하는 정치적 해석도 보았다. 재밌더라.
  1. 술탄과 칼리프, 중세 각국의 군주와 교황 [본문으로]
  2. 소아는 찾아볼 수 없고 성인 여성이라고는 1명밖에 없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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