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한가지 사실을 적시하고 시작하자.
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굉장히 기부에 인색한 나라이다.
요즘들어 세액에서 혜택을 주는 등의 조치가 취해지고는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기부에 인색한 나라라는 것은 사실이다.
가끔씩 로또 당첨 기사가 뜨는 날이 있다.
뭐 이제 로또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겠으니 따로 설명을 하지는 않겠지만 로또에 당첨되었다는 기사가 뜨면 꼭 달리는 댓글이 있다.
'당첨된 사람은 기부하라.' 내지는 '내가 당첨되었으면 기부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정치가들 및 대한민국 정부 그리고 로또 사업본부가 절대로 그럴 분들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대한민국의 로또가 타 국가에 비하면 이월 횟수 자체도 적고 당첨자 수가 기이하게 많다라고 추측하는 입장에서, 당첨금의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기이하고도 절대 있을 수 없는 음모론적 소설을 써보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우선 로또는 절대적으로 정직하고 공정하게 운영되고 있음을 명시하고 이 글을 써보자.
사실 기부라는 것이나 봉사활동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선행의 관점으로 본다면 칭찬받아 마땅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본인도 소액이나마 그나마 믿을만하다고 생각하는 UNICEF에 매달 일정액을 기부하고 있는 입장에서 본다면, 기부를 하면서 얻는 내 자신에 대한 기분좋은 착각 1과 실제로 이에 혜택을 받는 사람들에게 유용할 것이다라는 믿음은 그 혜택을 받는 당사자뿐만이 아니라 하는 본인에게도 정신적으로 건강한 수단임은 분명 인정한다. 그러나 과연 기부가 사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정당한 것일까?
기부라고 한다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한 때 블루 스크린으로 세계를 평정했으며 MS 광고의 패러디로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땡스 빌' 횽아라고 비웃음을 받았던 Bill Gates(William Henry Gates III)가 그 사람이다. 한때는 일부 공돌이들 및 copy left 진영, open source 진영에서 공공의 적 취급을 받던 그는 결혼을 하면서 개과천선을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찌되었건 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을 설립하면서 가장 깨끗하면서도 모범적인 민간재단 중 하나를 설립하게되고 이후 이를 기반으로 사회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는 절대로 쉽지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전 인류 사회적으로 보았을 떄도 그 공헌도는 상당하다고 인정한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기부를 하는 부자들은 '오마하의 현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Warren Buffett등을 비롯하여 미국 사회에서는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이들의 기부 기사가 나올 때마다 대한민국의 네티즌은 신나게 깐다. 누구를? 흔히 재벌이라고 불리어지는 대기업 총수 일가 및 고액 소득 연예인과 전문직 종사자들을. 그런데 과연 부자들이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걸고 거액을 쾌척하여 사회 약자들을 위해 노력하는 이러한 미국식 사회는 건강한 사회인가?
미국과는 사뭇 다른 흔히 말하는 북유럽식 사민주의 노선을 걷는 국가들을 보자. 최근들어 신자유주의 물결로 인해 조금은 타격을 받고있는 것 같으면서도 재조명 되고 있는 북유럽 국가들을 본다면 사실 이 동네 부자들은 째째하기 그지없는 것 처럼 보인다. 우선 이 북유럽 국가들은 국격이 떨어지게 미국에 비하면 이러한 거대한 민간 사회 재단은 찾기 힘들다. 아니 하다못해 동북아시아 변방의 반쪽짜리 소국에서도 우리의 위대하신 민족의 영도자, 천하삼분지계의 입안자, 꼼꼼하고 섬세하신 제갈나르도 명박치 가카께서도 자신의 논현동 사저만을 제외하고 모두 청계재단을 만들어 기부하는 통큰 모습을 보이는데도 북유럽의 부자 국가들은 이러한 재단하나 찾아 보기 힘들다 2. 이 어찌나 째째한 부자들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체적으로 본다면 미국보다도 빈부격차도 적고, 안정적인 비교적 더 건강한 사회인 것 처럼 보인다. 아니 어떻게 이럴수가 있나? 사실상 지구상의 패권국가의 고액 납세자들이 간지나게 재단을 설립하여 불쌍한 사회 하층민들의 구제에 여념이 없는 영웅들이 넘쳐나는 미국보다, 째째하고 인색하기 그지없는 북유럽 사회가 더 건강할 수 가 있다니 이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닐수가 있는가?
잠깐 다른 길로 비껴나가보자. '영웅주의 사관'이라는 것이 있다. 역사시대 이후 중근세 사회의 사서에서는 굉장히 자주 등장하는 사관으로, 간단히 요약하자면 사회의 발전은 일부 위대한 영웅들에 의해서 발전해나간다는 관점을 지닌 역사관이다. 이는 이해하기 힘든 그 당시 사회상을 굉장히 단순화하고도 재미있게 설명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으며, 더더욱 큰 장점은 기득권 세력의 옹호에 있어서 굉장히 유리하다는 앞서의 장점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장점을 지닌 역사관이다. 즉, 위대한 인물이 해놓은 일이니 감히 우리에게 덤비지마라는 생각을 세뇌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사실상 지금에 있어서 학계에서는 이미 한물간 낡은 사관으로 알고 있지만 3, 현재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분야가 있다. 흔히 말하는 '위인전'으로 알려진 비정상적이며 인명을 경시하여 수만명을 학살한 학살자들의 이야기나, 편집적이고 정상인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비사회적인 성격을 지닌 일부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거나, 위대한 영웅의 도래를 바라는 흔히 말하는 '역사 소설'류가 그 것이다. 물론 대중들에게 쉽게 읽히기 위한 일부 사서의 경우도 있고.
그러나 이러한 사관은 민주주의의 발달과 함께 점차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게되는데 이는 어떠한 사회란 그 시대의 상황에 따라 무쌍하게 변동하게되며 흔히 말하는 위대한 영웅들은 그 당시 시대정신의 상징이지 절대적인 힘을 가진 영웅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반도 및 만주의 고대사를 예로 들자면 '광개토 대왕'이 고구려의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중국 대륙이 수많은 정치 체계를 갖춘 국가들간의 대립이 심화되었기떄문에 미쳐 만주 벌판까지 그 힘을 미치기 못했던 점이 우선이지 위대한 영웅인 광개토 대왕이 그 압도적은 능력으로 중국을 짓밟던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 관점이라는 것이며, '세종 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유도 물론 세종 대왕 개인으로서의 인품과 능력이 훌륭했다는 점도 큰 이유가 되겠지만 흔히 태종 이방원과 정도전으로 대표되던 왕권주의와 신권주의간의 조선 초기 권력 다툼의 헤게모니에서 왕권주의의 힘을 강화시키고 한문의 해석에서 오는 사대부들의 입지를 낮추기 위한 일종의 소도구로서 작용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최근의 사관은 몇 가지 단점이 있다. 첫번째는 이해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며, 두번째는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문제가 여기서 그친다면 그것이야 학계의 불행으로만 끝나니 다행이겠지만 사실 영웅주의 사관이야말로 평균 대중의 눈높이에 적합하다는 것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간단히 예를 들어보자면 흔히 말하는 상업성이 짙은 오락 영화의 대다수는 어떠한 영웅의 행태를 보여주는 것이 대다수이다. 뭐 대놓고 영웅물을 표방하는 Marvel Comics 및 DC comics의 만화가 원작이 되는 영화들을 제하고라도 흔히들 말하는 잘나가는 미국인이 나쁜 놈들 때려잡고 총쏘고 마지막에 키스하면서 끝나는 영화들은 대부분 영웅이 등장한다. 뭐 이거야 개인의 영화 취향이니 그렇다고 넘어가자. 진중권이 지적한 바 있지만 최근 화제가 되고있는 '나는 꼼수다' 또한 이러한 대중의 취향에 부합하면서 인기를 끈 점도 분명히 있다고 본다 4.
이것이 한 개인의 취향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은 분명히 많고, 사회를 보는데 있어 단순한 관점을 가지므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면 욕하면 되고 위대한 영도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은 기부를 찬양하며, 위대한 기부자를 칭송하고, 기부하지 않는 자에게 기부를 강요하고 있다.
분명히 기부는 그 사회를 개선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기부를 해야 그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도 있는 가능성을 지닌 사회와 기부를 하지 않고 국가의 세금으로도 그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사회 중 어떠한 사회가 더 건강하냐를 본인에게 묻는다면 당연히 후자라고 답할 것이다. 왜 여러 다양한 사람들이 고만고만한 제안을하면서 치고 박고 싸우면서 발전해 나아가야만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언제까지 영웅들에게만 의존해야하는가? 이러한 영웅들이 아주 정기적으로 예측가능할 수 있도록 꼬박꼬박 등장해준다면 이러한 영웅들에게 기대는 것도 나쁠 것 없다. 일반 대중은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면 되니까. 그러나 그렇게 대책없이 살 것이라면 왜 우리는 민주주의를 얻기위해 싸웠던 것이란 말인가? 그냥 전제주의 국가에서 위대한 영웅이 왕이 되기를 기도하면 되지.
기부를 강요하지 마라. 기부는 한 개인이 자신의 위대한 성품과 적절한 허영심을 만족하기 위해 시행하는 변덕적이며 비정규적인 예측할 수 없는 행위이며 사회에 어느 정도 도움이되는 필요악일 뿐이다.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우리가 해야할 것은 공평한 조세제도와 공정한 세금사용의 감시를 강요하여 기부가 필요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노력이다. 영웅이 이끄는 사회는 분명 매력적이고도 달콤하지만 우리는 영웅을 따르는 백성이 아닌 스스로 존재가치를 입증해야만 하는 시민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굉장히 기부에 인색한 나라이다.
요즘들어 세액에서 혜택을 주는 등의 조치가 취해지고는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기부에 인색한 나라라는 것은 사실이다.
가끔씩 로또 당첨 기사가 뜨는 날이 있다.
뭐 이제 로또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겠으니 따로 설명을 하지는 않겠지만 로또에 당첨되었다는 기사가 뜨면 꼭 달리는 댓글이 있다.
'당첨된 사람은 기부하라.' 내지는 '내가 당첨되었으면 기부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정치가들 및 대한민국 정부 그리고 로또 사업본부가 절대로 그럴 분들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대한민국의 로또가 타 국가에 비하면 이월 횟수 자체도 적고 당첨자 수가 기이하게 많다라고 추측하는 입장에서, 당첨금의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기이하고도 절대 있을 수 없는 음모론적 소설을 써보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우선 로또는 절대적으로 정직하고 공정하게 운영되고 있음을 명시하고 이 글을 써보자.
사실 기부라는 것이나 봉사활동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선행의 관점으로 본다면 칭찬받아 마땅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본인도 소액이나마 그나마 믿을만하다고 생각하는 UNICEF에 매달 일정액을 기부하고 있는 입장에서 본다면, 기부를 하면서 얻는 내 자신에 대한 기분좋은 착각 1과 실제로 이에 혜택을 받는 사람들에게 유용할 것이다라는 믿음은 그 혜택을 받는 당사자뿐만이 아니라 하는 본인에게도 정신적으로 건강한 수단임은 분명 인정한다. 그러나 과연 기부가 사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정당한 것일까?
기부라고 한다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한 때 블루 스크린으로 세계를 평정했으며 MS 광고의 패러디로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땡스 빌' 횽아라고 비웃음을 받았던 Bill Gates(William Henry Gates III)가 그 사람이다. 한때는 일부 공돌이들 및 copy left 진영, open source 진영에서 공공의 적 취급을 받던 그는 결혼을 하면서 개과천선을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찌되었건 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을 설립하면서 가장 깨끗하면서도 모범적인 민간재단 중 하나를 설립하게되고 이후 이를 기반으로 사회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는 절대로 쉽지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전 인류 사회적으로 보았을 떄도 그 공헌도는 상당하다고 인정한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기부를 하는 부자들은 '오마하의 현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Warren Buffett등을 비롯하여 미국 사회에서는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이들의 기부 기사가 나올 때마다 대한민국의 네티즌은 신나게 깐다. 누구를? 흔히 재벌이라고 불리어지는 대기업 총수 일가 및 고액 소득 연예인과 전문직 종사자들을. 그런데 과연 부자들이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걸고 거액을 쾌척하여 사회 약자들을 위해 노력하는 이러한 미국식 사회는 건강한 사회인가?
미국과는 사뭇 다른 흔히 말하는 북유럽식 사민주의 노선을 걷는 국가들을 보자. 최근들어 신자유주의 물결로 인해 조금은 타격을 받고있는 것 같으면서도 재조명 되고 있는 북유럽 국가들을 본다면 사실 이 동네 부자들은 째째하기 그지없는 것 처럼 보인다. 우선 이 북유럽 국가들은 국격이 떨어지게 미국에 비하면 이러한 거대한 민간 사회 재단은 찾기 힘들다. 아니 하다못해 동북아시아 변방의 반쪽짜리 소국에서도 우리의 위대하신 민족의 영도자, 천하삼분지계의 입안자, 꼼꼼하고 섬세하신 제갈나르도 명박치 가카께서도 자신의 논현동 사저만을 제외하고 모두 청계재단을 만들어 기부하는 통큰 모습을 보이는데도 북유럽의 부자 국가들은 이러한 재단하나 찾아 보기 힘들다 2. 이 어찌나 째째한 부자들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체적으로 본다면 미국보다도 빈부격차도 적고, 안정적인 비교적 더 건강한 사회인 것 처럼 보인다. 아니 어떻게 이럴수가 있나? 사실상 지구상의 패권국가의 고액 납세자들이 간지나게 재단을 설립하여 불쌍한 사회 하층민들의 구제에 여념이 없는 영웅들이 넘쳐나는 미국보다, 째째하고 인색하기 그지없는 북유럽 사회가 더 건강할 수 가 있다니 이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닐수가 있는가?
잠깐 다른 길로 비껴나가보자. '영웅주의 사관'이라는 것이 있다. 역사시대 이후 중근세 사회의 사서에서는 굉장히 자주 등장하는 사관으로, 간단히 요약하자면 사회의 발전은 일부 위대한 영웅들에 의해서 발전해나간다는 관점을 지닌 역사관이다. 이는 이해하기 힘든 그 당시 사회상을 굉장히 단순화하고도 재미있게 설명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으며, 더더욱 큰 장점은 기득권 세력의 옹호에 있어서 굉장히 유리하다는 앞서의 장점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장점을 지닌 역사관이다. 즉, 위대한 인물이 해놓은 일이니 감히 우리에게 덤비지마라는 생각을 세뇌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사실상 지금에 있어서 학계에서는 이미 한물간 낡은 사관으로 알고 있지만 3, 현재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분야가 있다. 흔히 말하는 '위인전'으로 알려진 비정상적이며 인명을 경시하여 수만명을 학살한 학살자들의 이야기나, 편집적이고 정상인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비사회적인 성격을 지닌 일부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거나, 위대한 영웅의 도래를 바라는 흔히 말하는 '역사 소설'류가 그 것이다. 물론 대중들에게 쉽게 읽히기 위한 일부 사서의 경우도 있고.
그러나 이러한 사관은 민주주의의 발달과 함께 점차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게되는데 이는 어떠한 사회란 그 시대의 상황에 따라 무쌍하게 변동하게되며 흔히 말하는 위대한 영웅들은 그 당시 시대정신의 상징이지 절대적인 힘을 가진 영웅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반도 및 만주의 고대사를 예로 들자면 '광개토 대왕'이 고구려의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중국 대륙이 수많은 정치 체계를 갖춘 국가들간의 대립이 심화되었기떄문에 미쳐 만주 벌판까지 그 힘을 미치기 못했던 점이 우선이지 위대한 영웅인 광개토 대왕이 그 압도적은 능력으로 중국을 짓밟던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 관점이라는 것이며, '세종 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유도 물론 세종 대왕 개인으로서의 인품과 능력이 훌륭했다는 점도 큰 이유가 되겠지만 흔히 태종 이방원과 정도전으로 대표되던 왕권주의와 신권주의간의 조선 초기 권력 다툼의 헤게모니에서 왕권주의의 힘을 강화시키고 한문의 해석에서 오는 사대부들의 입지를 낮추기 위한 일종의 소도구로서 작용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최근의 사관은 몇 가지 단점이 있다. 첫번째는 이해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며, 두번째는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문제가 여기서 그친다면 그것이야 학계의 불행으로만 끝나니 다행이겠지만 사실 영웅주의 사관이야말로 평균 대중의 눈높이에 적합하다는 것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간단히 예를 들어보자면 흔히 말하는 상업성이 짙은 오락 영화의 대다수는 어떠한 영웅의 행태를 보여주는 것이 대다수이다. 뭐 대놓고 영웅물을 표방하는 Marvel Comics 및 DC comics의 만화가 원작이 되는 영화들을 제하고라도 흔히들 말하는 잘나가는 미국인이 나쁜 놈들 때려잡고 총쏘고 마지막에 키스하면서 끝나는 영화들은 대부분 영웅이 등장한다. 뭐 이거야 개인의 영화 취향이니 그렇다고 넘어가자. 진중권이 지적한 바 있지만 최근 화제가 되고있는 '나는 꼼수다' 또한 이러한 대중의 취향에 부합하면서 인기를 끈 점도 분명히 있다고 본다 4.
이것이 한 개인의 취향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은 분명히 많고, 사회를 보는데 있어 단순한 관점을 가지므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면 욕하면 되고 위대한 영도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은 기부를 찬양하며, 위대한 기부자를 칭송하고, 기부하지 않는 자에게 기부를 강요하고 있다.
분명히 기부는 그 사회를 개선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기부를 해야 그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도 있는 가능성을 지닌 사회와 기부를 하지 않고 국가의 세금으로도 그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사회 중 어떠한 사회가 더 건강하냐를 본인에게 묻는다면 당연히 후자라고 답할 것이다. 왜 여러 다양한 사람들이 고만고만한 제안을하면서 치고 박고 싸우면서 발전해 나아가야만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언제까지 영웅들에게만 의존해야하는가? 이러한 영웅들이 아주 정기적으로 예측가능할 수 있도록 꼬박꼬박 등장해준다면 이러한 영웅들에게 기대는 것도 나쁠 것 없다. 일반 대중은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면 되니까. 그러나 그렇게 대책없이 살 것이라면 왜 우리는 민주주의를 얻기위해 싸웠던 것이란 말인가? 그냥 전제주의 국가에서 위대한 영웅이 왕이 되기를 기도하면 되지.
기부를 강요하지 마라. 기부는 한 개인이 자신의 위대한 성품과 적절한 허영심을 만족하기 위해 시행하는 변덕적이며 비정규적인 예측할 수 없는 행위이며 사회에 어느 정도 도움이되는 필요악일 뿐이다.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우리가 해야할 것은 공평한 조세제도와 공정한 세금사용의 감시를 강요하여 기부가 필요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노력이다. 영웅이 이끄는 사회는 분명 매력적이고도 달콤하지만 우리는 영웅을 따르는 백성이 아닌 스스로 존재가치를 입증해야만 하는 시민이기 때문이다.
- 내가 무려 기부를 했다. 고로 나는 착한 사람이다. [본문으로]
- 물론 본인의 시각과 정보력이 일천하여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혹시 좋은 예가 있다면 알려주길 바란다. [본문으로]
- 본인은 이 방면의 전문가가 아니라 역사에 관심이 많은 일개 개인이므로 틀릴 수도 있다. 틀린 점이 있다면 과감한 지적 부탁드리겠다. [본문으로]
- 사실 본인도 '나는 꼼수다'의 애청자이다. 그러나 '나는 꼼수다'는 분명히 기존 언론에서 다루지 못하는 분야를 과감히 파헤치고 정치를 풍자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대중에게 쫄지 말 것을 선동하는 바람직한 면이 있는 반면, 이를 무비판적으로 해석하게되면 전제주의와 다름이 없는 무비판적인 지지자를 마구 양산해 낼 수 있는 면도 있음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방송이 있는 사회와 이러한 방송을 만들 수 없이 억압된 사회 중 어느 것이 더 건강한 사회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당히 전자라고 답하겠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