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개의 진화 요인은 탄수화물 대사 능력에 기인한 것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읽다가 댓글란을 보니 아쉽게도 머리 텅텅 가슴에는 은혜 충만한 분들이 아침부터 손가락으로 설사를 싸지르고 있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된지 150여년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아직도 진화론을 비난하는 자들이 존재하고, 심지어 일부 국가에서는 창조론이라는 것을 진화론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치환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여전히 세상에는 병신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전에도 기술한적 있으나 진화라는 것은 무엇인가 좋은 능력을 얻는 것이 아니다. 초기 진화론 중 '라마르크(Jean Baptiste Lamarck)의 용불용설'이 이러한 개념을 대변하는 것인데, 어떠한 생물이 특정한 기능을 계속해서 수행하다보면 이에 적합한 형질을 획득하게 되고 이 것이 후손에게 전달된다는 개념이다. 그에 따르면, 기린은 높은 곳의 풀을 먹기 위해서 계속해서 목을 위로 뻗게 되었고, 이에 따라 점차 목이 길어지게 되었으며, 이는 후손들에게 전달되어 점차 목이 길어지는 방향으로 진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창조론 지지자들은 이러한 개념의 진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진화라는 것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개념이 아니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이 변화에 살아남지 못하는 개체들이 몰살당하고 남아있는 개체가 살아남아서 후손을 퍼뜨리기에 발생하는 대량 살상의 결과일 뿐이다. 아마 중학교 생물 시간 1에 졸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겸상 적혈구 병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병이 기억날지 모르겠다.
겸상 적혈구 빈혈(Sickle cell anemia)이라는 병은 2차원적 단면에서 보면 동그란 원 모양 2의 적혈구가 누가 한입 베어문 것 처럼 초승달 모양으로 변한 것을 말한다. 적혈구의 본래 기능이 인체 조직으로의 산소 전달이니 만큼, 본래의 동그란 원 모양에서 초승달 모양으로 변하면서 적혈구 표면적의 감소로 산소 전달 능력은 감소하게 된다. 그렇기에 다른 정상 적혈구를 가진 사람들에 비해서 당연히 생존 능력이 떨어지게 되고 3 대다수의 자연 환경에서는 자연적으로 도태되게 된다. 성인으로 자라기 전에 사나운 야수에게 잡아 먹혀서 후손을 퍼뜨리기 힘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겸상 적혈구 빈혈 환자의 적혈구에는 다른 정상 적혈구에 비해서 말라리아에 대한 저항력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말라리아 혹은 한의학적으로 삼일열이라고 불려왔던 병은 일종의 기생충 질환으로, 모기를 통해 전달된 말라리아 원충이 적혈구 내로 침투하여 성장을 하다가 성충이 되면서 이 적혈구를 파괴하며 밖으로 나오게 된다. 그런데 겸상 적혈구 빈혈을 지닌 이는 적혈구의 모양이 변화되어 있어, 타 정상 적혈구를 가진 사람에 비해서 말라리아에 대한 높은 저항성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아프리카 지역의 일부 흑인에게서 겸상 적혈구 빈혈 보유자가 높다는 진화학적 결과로 나타난다.
즉, 말라리아가 없는 환경이라면 맹수의 밥이 되어 전할 수 없을 유전자를 퍼뜨길 기회를 말리라아가 다른 경쟁자를 제거해주어 퍼뜨릴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만들어 준 것이다. 이와 유사한 진화론적 증거는 이전에도 기술한 바 있는 항생제 내성균의 출현도 있다.
신문에서 의학 섹션의 기사가 없을 때 심심하면 터뜨려서 독자들에게 공포감을 주는 슈퍼 박테리아가 그것이다. 세균의 종류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가장 흔한 병원균 중 하나인 황색 포도상 구균(Staphylococcus aureus)에 대해서 보자. 사실 황색 포도상 구균은 아무런 병이 없는 건강한 사람의 손을 닦아서 그 천을 배지에 배양하면 자랄 정도로 굉장히 흔한 균이다. 이러한 황색 포도상 구균이 인체 내부에 존재해서는 안될 곳으로 전파되면 임상적 증상이 발현하게 되는데 일부 특정한 환경 4에서 침투한 것이 아니라면 대다수의 황색 포도상 구균은 항생제가 잘 듣는 균이다. 사실 항생제라는 것이 일반적인 세균의 제거에 초점을 맞추어서 만들었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데, 간단히 설명하면 잘자라는 세균은 그만큼 이것 저것 잘 주워먹어서 그렇다고 생각을 하자.
그러나 사람이 100명이 모이면 100이면 100 모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듯이 세균도 모두 동일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일부는 식성이 까탈스러워서 아무거나 잘 줏어먹는 성질을 가진 세균에 비해서 번식력이 떨어져 일반적인 환경에서라면 아무거나 잘 줏어먹는 세균이 더 활발히 번식을 하게 된다. 하지만 항생제가 출동하면 어떨까?
항생제가 피를 타고 온몸을 돌게되면 아무거나 잘 줏어먹는 세균은 지 먹이인줄 알고 덥썩 삼킨다. 반면에 식성이 까탈스러운 세균은 삼켰다가 아 이건 내가 먹을게 아니구나 하고 다시 뱉어낸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항생제를 좋다고 삼켰던 세균은 몰살을 당하게 되고 까탈스러운 애들만이 살아남아 번식을 하게된다 5. 이 것이 바로 항생제 내성균의 출현이며, 세균의 진화가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다.
즉, 진화라는 것은 포켓몬 처럼 전투를 통해서 좀더 상위 개체로 변신하는 것이 아니라, 전투 이후 살아남은 패잔병이 주류를 차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인류 사회에서도 나타난다. 가장 극적인 예가 정치에서의 헤게모니 싸움이다.
대한민국 같은 대통령제 간접 민주주의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큰 선거가 끝날 때마다 당내 및 정당간 숙청이 이루어진다. 승리한 측은 승자의 논리에 따라서 당내 비주류 세력을 견제하거나 상대 당의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칼을 갈고, 패배한 측도 패배한 당내 주류 세력을 비판하며 자신들이 새로운 대안이라고 나서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승리와 패배가 반복됨에 따라서 각 정당은 일치된 합의점을 찾아가게 된다. 이 일치된 합의점에 어긋나는 이들은 정치적으로 생명력을 잃게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고로 민주주의 제도하에서 선거란 정치적 진화를 촉발하기 위한 거대한 환경의 변화와 같다. 이전 전제적 왕조주의 국가에서라면 대역죄인으로 끌려가 삼족이 멸족당할 주권재민의 원리는, 시민 혁명의 역사를 지닌 민주주의라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에서는 뿌리가 되어 살아남았다.
이전의 역사를 살펴보고, 현 상황에서 군집 생활을 하는 짐승들의 무리를 본다면 사실 민주주의는 기이한 제도이다. 인류가 태초의 군집 생활을 시작할 때에는, 자녀를 생산하는 어머니가 사실상 사회의 중심이 되는 모계 중심의 사회였다고 알려져있다 6.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최대한 많은 자손을 남겨야 했던 인류에게 누가 아버지인 줄 알 수 없는 상황 7에서 최소한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는 명확한 사실은 모계 중심 사회에 정통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구의 사용에 따라 인류가 자연과 투쟁을 시작하면서부터 외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강한 수컷을 따르게 되고, 이는 자연에서의 포식자 무리와 유사한 양상을 보이게 된다. 마치 수컷 사자가 모든 암컷 사자를 거느리는 것 처럼 8. 그리고 인류는 여기서부터 지도자라는 것을 만들면서 부계 중심 사회로 나아가게 된다.
분명 태초의 인류 사회는 개인의 실력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였을 것이다. 그 사회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자가 집단을 지도하였을 것이며 만약 현 지도자가 약해졌다면 다른 이가 그 자리를 차지하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9. 그러나 그 사회가 점차 커져가면서 인류 사회는 지도자의 변화에 따른 혼란을 원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고 이는 세습제로 발전하게 된다. 역사 시간에 배워서 알겠지만 고대 왕국의 왕권 강화의 상징이 부자세습제의 확립이라는 것은 이러한 연유로 발전된 통치 방식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자연적 재해 등은 아무리 강대한 권력을 가진 왕이라도 대처하기 힘들었고, 이에 따라 왕보다 높은 힘을 가진 신이라는 개념을 상상하게 된다. 물론 초기 원시 사회에서도 매장의식을 비롯한 원시 종교의 틀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원시 종교가 힘을 얻게된 것은 이러한 권력자의 옆에서 권력자의 권력을 정당화 하는 과정에서 얻은 부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 10이다. 왕은 신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자신의 힘이 닿지 않는 것을 신의 탓으로 돌렸고, 신의 말을 전하는 사제는 왕에게 신이 정한 권력이라는 권위를 주게된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와 권력의 유착은 극단적인 경우 제정일치 사회 11라는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타 국가와의 경쟁에서 패배한 국가의 신은 주신의 하위신으로 격하되거나 심지어는 악마로 매도 당하게 되고, 일부 국가에서는 더 강대한 문명의 종교를 스스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왕권의 강화를 위해서 왕이 스스로 도입하는 경우 12도 있고, 왕권의 약화를 강요하기위해서 다른 신하 혹은 백성 13들이 도입하기도 하였다.
인류가 무리 사회를 이룬 이후 몇천년간 왕정은 그 세부적인 개념에서 차이는 있더라도 가장 근본적인 사회 질서로서 작용했다는 점을 돌이켜보자. 물론 왕조는 영원할 수 없으며, 이에 따라 왕조의 교체가 있기도 하였지만, 근세에 이르기까지 왕조가 다른 왕조로 교체된 적은 많았으나, 공화정으로 교체된 경우는 없었다. 수천년의 세월 동안 피지배층은 지배층에 대항하는 것은 대역죄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며, 나라의 주인을 자신이 선출한다는 불충한 생각 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종교에도 도입된다. 예수와 12제자로 대표되는 초기 기독교의 사상은 사실 지금 보아도 급진적인 형태의 주장이 많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힘들다고 매도하는 반면, 성전에서 장사를 하는 장사치를 난동을 부려서 쫓아내고, 신앞에 인간은 모두 평등할 뿐이며, 가난한 자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라고 말하는 예수의 사상은 얼핏보면 사회주의 사상과 매우 닮아 있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기독교는 초기 기독교 사상의 의의를 잃고 순종과 인내, 믿음을 강요하며, 이전의 종교와 같은 길을 걷게 된다. 지배층에 대한 영적인 정통성의 제공과 그에 따른 교세의 확장이다.
이러한 종교-권력의 유착은 왕권신수설로 대표되는 절대왕정의 탄생에 공헌을 하게 된다. 물론 그 와중에 수없는 왕권과 교권의 대립이 있었지만, 기독교는 십자군 전쟁의 실패 이후로 왕권을 보조하는 위치로 격하되면서 왕의 곁에서 알량한 재산권과 지배권을 향유하는 계층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부르봉 왕조 지배하의 프랑스이다.
태양 왕이라고 까지 불리웠던 루이 14세의 치세 이후 프랑스는 가장 강력한 중앙집권국으로 태어나게 되고, 이는 대검 귀족 14이라고 불리우는 구 귀족과 법복 귀족 15이라고 불리우는 신 귀족의 지지와 귀족보다 높은 신분상 위치를 획득하는 사제 계급의 지지로 유지된다. 그러나 산업 혁명으로 대표되는 상공업의 발달로 평민 중에서도 몰락한 귀족 계급 16보다 많은 재산과 뛰어난 지식을 가진 자가 발생하게 되고 이들은 자신이 지배층의 헤게모니에 들어갈 수 없는 것에 점차 불만을 갖기 시작하였다. 흔히 말하는 프랑스 혁명의 부르주아지 계급의 탄생이다.
프랑스의 부르주아지 계급은 명예 혁명으로 대표되는 영국의 입헌 군주정을 보면서, 자신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귀족의 지배에 점차 반감을 갖게 되고, 때 마침 발생한 프랑스 대기근으로 불만이 팽배해있던 파리 시민과 농민들을 선동하여 입헌 군주정을 목표로 혁명을 유발하게 된다.
바스티유 습격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대혁명의 1차 혁명에서 대다수의 부르주아지들은 공화정을 원한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지가 봉건 귀족의 지위를 빼앗고, 왕권을 끌어내려 입헌군주정으로 진행하는 영국식 제도를 목표로 하였다. 이전까지의 왕권이란 신이 내린 것이기 때문에 왕의 목을 친다는 것은 당시의 과격한 부르주아지라도 감히 상상하기도 힘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감각과 정치력이 떨어지는 왕과 구시대 질서(앙시엥 레짐, Ancien regime)에 빠져있던 귀족 세력은 그 당시 지배층이라면 당연히 할만한 외세를 이용하여 저 반역자들을 처리한다는 모의를 하게되고, 이는 당시 부르주아지 세력이 이끌던 시민군에 의해 파훼된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 사건 속에서 혁명의 헤게모니는 입헌군주 세력에서 공화파로 넘어간다. 실제로 피를 흘린 이들이 당연히 요구하는 권리와 그들을 이용한 공화파 정치가의 합작으로. 혼란의 시기에서는 과격파가 온건파를 압도하는 것과 같이 한번 넘어간 혁명의 헤게모니는 쉽사리 다시 온건파로 돌아가지 않았고 이는 결국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이에 놀란 타 왕정 국가들은 왕국 수립 이후로 지속되었던 지배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두려워하여 프랑스에 맞선 대 프랑스 전쟁을 결의하고 이는 당시 프랑스의 장군이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비롯한 혁명군 세력에의해 와해되었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쿠데타를 일으켜서 자신을 종신 통령으로 만들어 제1공화정의 의의를 꺾고, 이후 제1제국을 만들어 공화정을 찬탈한다. 그러나 이후 이어진 정치적, 군사적 실책으로 나폴레옹의 제1제국은 멸망하고 다시 부르봉 왕조의 왕정 복고가 일어난다.
그러나 계속되는 신민 17의 생활고는 다시 한번 혁명을 유도하였고, 부르봉 왕가의 일원이었으나, 프랑스 대혁명의 지지자였던 오를레앙 공의 후손 루이 필리프(Louis Phillippe)가 시민왕이라는 별명으로 집권하여 입헌 왕정을 시도한다. 그러나 산업 혁명으로 인한 타국가와의 경쟁 및 제1제국 시절의 강대했던 프랑스를 잊지 못하는 이들이 루이 필리프의 입헌 왕정을 압박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2월 혁명으로 이어져서 한때 시민왕이었던 이를 끌어내려, 다시 늙은 독재자로 매도하게 된다.
이후 이어진 제2공화국. 그 사이에 여러 사건이 있었으나, 제2공화국은 결국 다시 한번 제2제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것도 국민들의 선거로.
나폴레옹의 조카인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Charles Louis Napoleon Bonaparte)가 왕정복고 이후 쫓겨난 프랑스로 2월 혁명의 물결을 타고 다시 돌아와 선거에 나서게 된다. 제2공화국 대통령 선거에. 그리고 그는 타 정치인들의 예상을 뒤엎고 75%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되게 된다. 그 때 수많은 지식인들은 왕정을 끝장낸 신민들이 다시 왕정의 상징인 그를 선택한 것을 두고 배신감과 절망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들이 선거권을 부여해준 시골의 소작농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나폴레옹 제1제국의 화려했던 시기만을 기억하고 그에게 표를 몰아주었기 때문이다. 마치 전두환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가 이겨버린 그런 느낌 18과 가까울까?
진화도 역사도 결코 절대적 이상향을 향해 진보하지 않는다. 사람이 실수를 되풀이하며 이뤄지는 것이 역사이고,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되며 떄로는 전진하며, 때로는 퇴보한다.
진화건 혁명이건 민주주의건 기본적인 대원칙은 같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적합하지 않은 요인들을 쳐내는 것이다. 진화란 적합하지 않은 것들의 몰살로 이뤄진다는 면에서 혁명과 동일하며, 현재의 대의제 민주주의와는 다르다. 그러나 소수가 다수에게 다른 의견을 제안할 수 있는 여지를 주어 현재의 상황을 다시 돌이켜보게 하는 것이 발전을 위해서는 더 적합하지 않을까? 51이 48을 몰살시키는 것과 51이 48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과연 어떠한 것이 더 적합한 것일까?
- 본인이 다녔던 교육과정에서는 분명 중학교 생물 교육 과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본문으로]
- 동그란 스카치 캔디 모양을 연상하면 된다. [본문으로]
- 조직으로 산소 전달 능력이 떨어진 다는 것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으나, 원시적 자연 환경에서 생존과 연관된 면으로는 야수가 인간을 습격할 때, 다리에 충분한 산소가 전달되지 않아서 힘이 빠져 쓰러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 사람이 야수에게 잡혀먹히는 동안 나머지 인간들은 무사히 도망갈 것이다. [본문으로]
- 이미 약제 내성 황색 포도상 구균이 유행하는 병원과 같은 환경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약제 내성균이 병원 내에서 유행이되면 병원 차원에서 이러한 환자를 따로 격리하고, 의료진에게는 철저한 개인 방호 장구의 착용 및 폐기를 명령한다. [본문으로]
- 엄밀히 따지자면 틀린 비유이기는 하나 이해를 돕기 쉽도록 간단하게 설명한다. 미생물학이나 약리학 시간도 아니고 세포벽이 어쩌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 [본문으로]
- 다산의 여신이나 풍요의 여신들이 태초 원시 종교에서의 주신의 역할을 차지했다는 점을 살펴본다면 이는 모계 사회의 위상을 드러냄을 알 수 있다. [본문으로]
- 사실 이는 원시 사회 뿐만이 아니라 유전자 감식법이 도입되기 이전까지 모든 남성의 고민이기도 했다. 자기 자식이 확실히 자기 아내의 피를 물려받은 것은 확실하지만, 자신의 피를 물려받은지는 자신과 닮은 외모를 제외한다면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왕조의 격변기에서 일부 찬탈자는 전임 왕을 정통성이 있는 왕의 자식이 아닌 왕비가 혼외 정사를 통해서 낳은 정통성이 없는 왕이라고 공격하기도 하였다.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까. [본문으로]
- 사실 이는 사자만이 아니라 원숭이 등의 타 유인원에서도 관찰되는 현상이다. 아마 이에 관련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은 쉽게 알 수 있을텐데 두목 원숭이는 자기 휘하의 모든 암컷 원숭이 들에 대한 지배권을 가진다. 물론 그 와중에 바람을 피우는 다른 암컷들도 있고, 다른 수컷 원숭이가 도전하여 두목의 자리를 빼앗기도 한다. [본문으로]
- 대표적인 예로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서도 기술된 바 있는 신체의 결함이 있을 경우 왕이 될 수 없거나, 왕이더라도 자리를 빼앗기고 희생되는 켈트 족의 예를 보아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본문으로]
- 현대에도 부족 사회를 이루고 있는 아프리카에 거주하는 부족민들을 보았을 때, 부족 내에서 제2권력자로서 행사하는 것이 주술사가 대부분임을 상기해보자. [본문으로]
- 고조선의 단군왕검도 무당과 왕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단어로 알려져있고, 고대 일본인 야마토 왕국에서도 신으 뜻을 이은 자가 무당-왕의 개념이 남아있어 이는 이후 왕권 강화기에 천황이라는 개념으로 확장된다. 아즈텍이나 잉카 문명의 경우는 제정일치 사회였음을 알리는 증거가 굉장히 강하게 남아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현 북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은 공화정이라기보다는 주체사상이라는 종교를 따르는 제정일치의 왕정과 가깝다고 보면된다. 무슨 놈의 공화정이 대대손손 물려가며 자리를 세습받나? [본문으로]
- 국사시간에 배웠을 이차돈의 순교가 대표적이다. 본래 박, 석, 김의 3 왕조가문이 돌아가면서 왕을 맡았던 신라는 이후 김씨 가문의 영향이 커짐에 따라서 부자 세습제로 바뀌게 된다. 문제는 부자 세습제 이후에도 기존의 종교 권력을 지닌 호족이 강대한 영향을 가지게 되고, 이에 외래 종교인 불교를 통하여 이러한 전통 종교를 억압함과 동시에 이에 기반을 둔 신하들의 권력을 약화시켜 왕권을 강화시켜려는 시도가 극적으로 나타난 것이 이차돈의 순교라고 볼 수 있다. [본문으로]
- 실제로 안정된 왕조의 왕은 자신의 통치 기반을 흔들수 있는 신생 종교를 관대하게 용납한 경우가 거의 없다. 일례로 조선에 퍼진 기독교가 어떠한 취급을 받았나 생각해보자. [본문으로]
- 말 그대로 검을 차고 왕을 보위하던 봉건제 시절의 기사들로부터 유래한 귀족 계급이다. 서양의 왕조는 중국 황조들이나 한국 왕조들과는 달리 과거제라는 시험을 쳐서 관리를 뽑는다는 제도가 근세까지 없었다. 과거제 자체가 강력한 중앙집권제 하에서 시행될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 법관으로 대표되는 신흥 귀족을 의미한다. 이전의 귀족들이 봉건제의 영주가 왕에게 충성을 바치는 과정을 거쳐 발생하였다면, 이들은 자신의 학식으로 법관을 비롯한 관리로 임용되며 구 귀족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왕의 의지에 따라 발현하게 된다. [본문으로]
- 실제로 귀족 들을 다루는 만화, 소설, 드라마 등을 보면 귀족 들이 아무런 능력없이 선조의 영광에 기대어 살아가는 버러지처럼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로 귀족의 지위를 계속적으로 유지하기는 쉬운일이 아니며, 살리카 법에 따른 남성 후손 균등 상속제 및 귀천 상혼제가 확립된 귀족사회에서는 능력있는 차남 이하 자식들이 세운 분가가 오히려 본가를 압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본문으로]
- 왕정 치하이므로 신민으로 표기한다. [본문으로]
- 당시 사건으로 수많은 민주화 진영의 지식인, 언론인들이 좌절을 겪고 치열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로 인한 반작용과 김영삼의 삼당 합당이라는 정치적 배신으로 수많은 민주화 진영 인사들이 다수 기득권 진영으로 투항을 하게 되고, 일부는 조갑제, 김영환 등처럼 더욱 철저한 변절자로 활동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