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의원을 시작으로 국민의 당 문병호 의원,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 정의당 박원석 의원, 더불어민주당 유승희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진행했고 지금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이 이어서 필리버스터를 하고 있다.
본인의 주된 신앙인 FSM께서 가라사대 해적 모지 선장에게 웬만해선 하지 않아야 할 계율을 전달하였고, 이후 해적들은 어린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며 그분의 복음을 전파하셨던 바, 해적질을 통해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현재의 상황을 보니 아직 야당이 박살나지는 않았구나라는 안도감을 갖게 된다.
필리버스터는 에스파냐어 filibustero가 어원이라고 한다. 해적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이 단어가 에스파냐어로 남지 않고 정치적 의미로 전용된 것은 19세기 미국의 캔자스-네브라스카 준주 승격 문제였다고 한다. 남북 전쟁 직전, 노예제를 인정하는 남부의 노예주와 인정하지 않는 북부의 자유주간 대립이 극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현재의 캔자스 주와 네브라스카 주를 준주로 승격시키는 문제가 있었다. 지도를 찾아보면 알겠지만 네브라스카와 캔자스는 바로 위아래로 붙어있는 지방이다. 당시 남부와 북부는 서로 자신의 세력을 늘리기 위해서 피터지게 싸웠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 위치상 남쪽인 캔자스는 노예주, 북쪽인 네브라스카는 자유주로 준주 승격이 될 예정이었으나, 문제는 캔자스 지방은 주민 구성상 자유주인 북부출신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유혈사태까지 동반한 주민 투표에서 결국 캔자스 지방은 자유주 형태로 준주로 승격해서 연방에 편입되었다. 그러자 빡친 남부는 네브라스카 지방의 준주 승격을 결사적으로 반대했고, 이를 보고 카리브해 해적같은 놈들이라며 부르던 멸칭이 바로 필리버스터다.
이후 필리버스터는 정치적 의사 진행의 방해라는 뜻으로 전용되는데, 사실 이러한 필리버스터의 원조는 이보다 훨씬 앞선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빠순이인 시오노 나나미에 의해서 장광설의 찌질이로 매도당한 소 카토가 기록된 최초의 필리버스터이다. 당시 소 카토는 카이사르의 농지개혁법안을 저지하기 위해서 하루 종일 떠들었으며, 둘째 날도 연설을 시작하려 하였으나 카이사르가 빡쳐서 경비대를 이용해 끌어내었다는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이를 볼 때, 이미 공화정의 형태를 갖춘 국가에서는 어디나 이런 시도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원조 가카 집권 시기에 김대중 전 대통령, 당시 국회의원이 의원 체포동의안을 막기 위해서 5시간이 넘게 연설을 하여 결국 성공하였고, 이후 원조 가카께서는 발언 시간 제한이라는 신박한 방법을 구사하여 이를 봉쇄하셨다. 그리고 때는 흘러 2011년 다가오는 총선 결과를 폭망할 것이라고 잘못 전망했던 레이디 가카를 위시한 당시 한나라당의 지도부는, 국회 격투기 등 추태를 없애고 토론을 통하여 선진적이고 합리적인 법안을 만들겠다는 명분으로 그리고 폭망하여 원내 소수당이 되면 딴지라도 걸어야겠다는 실리적 이유로 국회선진화법을 제출하여 통과시켰다. 그러나 박스를 까보니 오히려 한나라당은 원내 다수당이 되었고 이후 법안 제출 때마다 가로막히자, 이를 바득바득갈며 국회선진화법을 폐지시키려 하였으나, 오히려 원내 소수당이 된 여당이 이를 이용하여 막아내었고 여야가 바뀐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에서 필리버스터가 부활했다. 말로만 듣던 필리버스터를 보니 참 뭔가 감동적이기도하고 우울하기도 한 복합적인 감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필리버스터는 잠시 제쳐두고, 왜 테러방지법이 이토록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는지 잠시 생각해보자.
현대 정상적인 국가의 제대로 된 형법이라면 반드시 기반이 되는 법 철학이 있다. 10명의 범인을 놓칠지언정 1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이념으로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대표된다고 할 수 있겠다. 이를 위해서 기본적으로 형법은 이미 일어난 범죄 사건에 대해서 적용되게 된다. Philip K. Dick의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아닌 이상 미리 일어날 범죄를 예측할 수 없으므로. 그러나 21세기 민주국가의 형태를 갖춘 나라에서 이에 반하는 법이 제정되게 된다. 911 테러 이후 발효된 아메리카 합중국의 USA PATRIOT Act 1, 흔히 애국자법으로 번역되는 테러대책법이 그것이다.
애국자법은 대영제국의 압제에서 벗어나 자유를 쟁취하기위해 총을 들고 일어섰던 선조들에 무색하게, 스스로 시민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영장 없는 도청을 합법적으로 가능하게 하였다. 애국자법 제정 당시에도 수많은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에 의해서 공격받았으나 2015년까지 유지되다가 폐지되었으나, IS를 핑계로 애국자법 제2판인 USA Freedom act로 대체되어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사실상 기간 연장인 셈이다.
애국자법, 그리고 그 이후 자유법이 공격받는 이유는 여러가지이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중 하나인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국가의 구성원은 그 어느 누구든지 자신이 원하는 발언을 할 수 있다는 취지다. 물론 다른 사회구성원이 보기에 불쾌감을 느꼈다면 도덕적 비난을 받을 수도 있으며, 발언이 살해 위협 등의 협박이 담긴 것이었다면 협박 받은 당사자에 의해서 고소를 당할 수도 있는 등의 책임을 동반하고 있는 자유이다. 그리고 이 표현의 자유에 해당되는 대상은 성역이 없다. 행정부 권력의 최정점인 대통령부터 사회경제적 최하계층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모두에 대해서 각자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 이는 앞서 설명한 이미 일어난 범죄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형법의 원칙과 맞물려서 본인이 아무리 개쓰레기 같은 범죄 예고 발언을 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범죄를 준비했다는 물질적 증거가 없는 한 처벌할 수 없음을 보장한다. 그러나 애국자법은 이러한 형법의 근간을 흔들어놓았다.
실질적으로 전 국민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규정하여 영장 심사 없이도 도감청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미국 시민들의 자유를 억압하게 되는데,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에 미국을 난장판으로 만들겠다 2는 글을 게시했다는 이유로 미국 출입국사무소에 억류되는 등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졌고,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 이후 무제한 도감청은 제한하는 자유법으로 어느 정도 제어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2015년 IS의 산하단체로 추정되는 이들에 의해 샤를리 앱도 테러 사건과 파리 테러 사건이 2차례 프랑스를 휩쓸고 이에 한평생 국가만을 생각하신 레이디 가카께서도 대한민국에 이러한 테러가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신념 하에 테러방지법을 신설하고자 하셨다. 물론 일부 정치인들은 현행 법안 3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며 반대하였고 계속해서 표류 중이다가 정의화 국회의장이 지금은 국가비상사태라며 직권 상정하였다. 그리고 이에 반대를 한 야당은 무제한 토론 4을 신청하여 현재의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야당은 왜 반대를 하는가? 우선 제출된 테러방지법안을 보자.
제2조는 이 법안에서 쓰이는 용어에 대해서 정의하고 있는데 문제는 제2조 제3항이다.
3. “테러위험인물”이란 테러단체의 조직원이거나 테러단체 선전, 테러자금 모금·기부 기타 테러예비·음모·선전·선동을 하였거나 하였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를 말한다.
테러위험인물의 정의에서 테러단체의 조직원이라는 점에서는 반박의 여지가 없지만, 그 이후 사항에서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테러단체의 조직원으로 확인이 되면 당연히 범죄 단체의 조직원이므로 처벌이 가능하지만, 의심할 상당한 이유란 도대체 무엇인가? 물질적 증거가 있다면 당연히 테러단체의 조직원으로 확인이 될 것이니, 조직원으로 확인은 안되지만 의심되는 자란 결국 국가 행정 권력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 아닌가? 그 어떤 명확한 기준도 없이 위험인물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기에 우선 야당은 반대하고있다.
계속해서 보자.
제7조(대테러 인권보호관) ① 관계기관의 대테러활동으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 방지를 위해 대책위원회 소속으로 대테러 인권보호관(이하 “인권보호관”이라 한다) 1명을 둔다.
② 인권보호관의 자격, 임기 등 운영에 관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대책위원회 소속으로 대테러 인권보호관 1명? 국정원이 전담하게 되면 국정원 직원 전부와 인권보호관 1명이 맞짱뜨는건가? 무슨 인권보호관이 호로관 여포도 아니고 이길 수 있을 것 같나? 더군다나 자격, 임기 등 운영에 관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면 그냥 대통령 입맛에 맞는 인물 그냥 앉히겠다는 소리랑 뭐가 다른가?
그리고 제9조.
제9조(테러위험인물에 대한 정보수집 등) ① 국가정보원장은 테러위험인물에 대하여 출입국·금융거래 및 통신이용 등 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이 경우 출입국·금융거래 및 통신이용 등 관련 정보의 수집에 있어서는 「출입국관리법」,「관세법」,「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통신비밀보호법」의 절차에 따른다.
② 국가정보원장은 제1항의 규정에 따른 정보 수집 및 분석의 결과 테러에 이용되었거나 이용될 가능성이 있는 금융거래에 대해 지급 정지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금융위원회 위원장에게 요청할 수 있다.
③ 국가정보원장은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개인정보(「개인정보 보호법」상 ‘민감정보’를 포함한다)와 위치정보를 「개인정보 보호법」제2조의 ‘개인정보처리자’와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제5조의 ‘위치정보사업자’에게 요구할 수 있다.
④ 국가정보원장은 대테러활동에 필요한 정보나 자료를 수집하기 위하여 대테러조사 및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추적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사전 또는 사후에 대책위원회 위원장에게 보고하여야 한다.
이를 위의 문제 조항과 조합하면 국정원장은 대테러 업무에 관한 거의 무소 불위의 권력을 쥐게 된다. 더군다나 국정원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국회의 조사 요구에도 버틸 수 있는 조직이다. 물론 언제나 법과 원칙을 지키는 신뢰의 정치인 우리 레이디 가카 치세하에 그런 일은 없겠으나, 혹시라도 저 간악한 친노종북좌빨좀비들이 권력이라도 잡는 날엔 견제할 장치가 없다. 레이디 가카도 제갈명박 가카도 그냥 테러범으로 조작 당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언론은 테러방지법의 문제를 파헤치기보다 필리버스터가 지금 몇시간째 기록하고 있다는 부차적인 문제에 더 집중한다. 뭐 이렇게라도 관심이 는다면 그 중 몇몇이라도 이 법안에 대해서 생각해볼테니 나쁜 일 만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논조가 있다. 바로 필리버스터로 효율적인 의정 활동에 발목이 잡혔다는 의견이다.
엄밀히 말해서 민주주의는 효율적인 정치 체계가 아니다. 효율성만 따지면 반인반신 원조 가카께서 강림하셔서 성지를 내려 일을 처리하는 것이 반대도 없고, 딴지거는 사람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니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조선시대를 보면 알겠지만 세종 같은 성군도 있는 반면 연산군 같은 폭군도 있고 인조 같은 암군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지도자의 능력은 그냥 운빨로 결정된다. 다행히 내가 사는 시기의 지도자가 세종이라면 태평 성대를 누리다 가는 거고, 고종이나 순종 같은 지도자라면 타국에 의한 식민지 상태를 경험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아무런 의심없이 몇몇 특이한 사례를 제하고는 근대까지 계속해서 이어져왔다.
그러나 근대 계몽 사상의 전파, 프랑스 대혁명, 미국 독립 전쟁 등의 시대적 조류를 타고 점차 소수의 권력층이 아닌 시민 개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강조되었으며 이는 현대 민주주의로 나타난다. 민주주의란 모든 국가 구성원에 의한 정치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시민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대변할 대변인을 선출하고 이들이 바로 선출직 공무원인 국회의원과 대통령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변인을 잘못 선출하여 발생하는 결과는 모든 시민들이 나누어 받는다. 즉, 민주주의란 모든 시민이 국가의 정치에 참여함과 동시에 모든 시민이 책임을 나눠 갖는 제도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민주주의 의식을 지닌 이들은 아무리 이기적인 입장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해줄 대변인을 원할지언정, 반인반신이나 재림 예수 같은 강직하고 항상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도자를 원해서는 안된다. 이는 실질적인 독재정으로의 회귀이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민주주의란 비효율적이고 때로는 바보같은 결정을 할지라도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시민들이 나누어 지면서 계속해서 나아가는 제도다.
그렇기에 이런 시민 대변의 장인 국회는 항상 시끄럽고 시끄러워야만 한다. 대다수의 이익이 일치하는 아파트 재건축 회의만 해도 서로 싸우고 대표가 바뀌고 서로 소송걸고 난리인데, 각자가 각자의 사정이 있는 시민 개개인을 대변하는 국회가 조용히 일치단결한다는 것은 시민 개개인이 모두 칼라이로 의식이 연결된 프로토스가 아닌 한 5, 전시 상황 등의 국가비상사태가 아닌 이상에야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당연한 일 아닌가? 조선 시대 때도 왕이 무단으로 정책을 추진하면 대신 및 대간들과 전국의 유생들이 상소를 날렸는데, 권한이 더 세분화되어 쪼개진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가 아무런 논쟁없이 조용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회가 시끄러울 수록 그 국회의 구성인 국회의원들이 각자 다른 자신의 지지층을 더 잘 대변하고 있다는 뜻이며, 필리버스터라는 것은 그 필리버스터를 행하는 국회의원의 지지층의 의견을 전달하는 행위인 것이다.
아마도 필리버스터로 현재 법안을 완전히 부결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필리버스터로 회기를 넘긴다 하더라도 이미 필리버스터를 발동시키면 다음 회기 때 다시 필리버스터를 발동시킬 수 없으며, 지금 현재 상황에서는 국회 의장이 직권 상장을 포기하지 않는 한 무조건 표결에 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의석수를 보면 결국 새누리당이 원하는 안대로 법안이 처리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필리버스터를 이끌고 있는 정치인들을 지지한다. 그들은 자신의 지지층을 대변한다는 국회의원의 본질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기때문이다. 비록 패배하겠지만 이는 영광스러운 패배이며, 정-반-합으로 이뤄지는 긴 역사적 흐름에서 볼 때 미약하나마 한 걸음 내딛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아메리카 합중국의 The founding fathers의 한명인 Benjamin Franklin의 어구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Any society that would give up a little liberty to gain a little security will deserve neither and lose both.
작은 안전을 얻기 위해 작은 자유를 포기하는 어떤 사회도, 둘 모두를 가질 자격이 없으며 모두 잃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