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만 피하자.
0.
바람이 차갑다. ‘사계절이 뚜렷한 아름다운 나라’란 말은 어린 아이들의 교과서에나 어울릴 듯한 어구가 된 요즘에도, 뜨거운 아스팔트로 인한 더위가 수개월을 덮는 요즘에도, 귓가를 스쳐지나가는 여름의 밤바람은 차갑기만 하다. 언제부터일까? 봄옷과 여름옷, 그리고 가을옷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기 시작한 것은. 단순한 색의 차이 외에 큰 차이를 못느끼게 된 것은.
거리가 어둡다. 빠른 속도로 흩어져가는 잔상은 계속해서 눈을 괴롭히고 있지만, 더 이상 실체는 느끼지 못한다. 붉고 푸른 네온사인도, 주황색 불빛을 흩뿌리고 있는 골목의 가로등도, 가정집의 푸른 빛을 띄는 따사로운 형광등도, 시야를 밝히지는 못하고 있다. 점점히 다가오는 노랗고 밝은 불빛이 이따금씩 눈을 시리게하며 괴롭히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그 외의 것은 보이지 않는다. 언제부터일까? 내 눈앞이 밝더라도 내 앞의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된 것은.
아프다. 더 이상은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따금씩 신체가 크게 흔들리지만, 더 이상 반응할 수는 없다. 바깥에서는 무엇인가가 끊임없이 괴롭히지만 더 이상의 지각은 사라진지 오래다. 현재 남은 지각은 통각뿐, 그 외의 다른 것은 그에 묻혀 버린지 오래이다. 무엇인가가 육체를 집는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집고 있다는 생각뿐, 더 이상의 느낌은 오지 않는다. 언제부터일까? 내 앞의 모든 것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은.
이전에는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희미하게 빛이 바래서 기억나는 색채라곤 칠판의 짙은 청록색과 책걸상의 나무색 외에는 떠오르지 않는 시절의 나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 시절에는 어떠한 꿈이라도 이룰 수 있을지 알았다. 오늘은 위대한 과학자가 되고, 내일은 훌륭한 군인이 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교실의 한 구석에 조그맣게 자리잡고 있던 학급문고의 위인전 전집을 읽으면서, 그래도 내가 지금은 이 사람들보다 똑똑하니까 이 위인전에 내 이름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정정하자. 우리나라가 식민지가 아니므로 독립투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조금 아쉽다고 생각했다. 단 한 번도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장래 희망에는 항상 ‘훌륭한’ 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었으며, ‘평범한’ 이라는 수식어를 쓰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위대한 사람이 되기를 꿈꾸어 왔으므로. 언제부터일까? 더 이상 그런 상상을 하지 않게된 것은. 빼어나고, 버금가며, 아름답고, 어질며, 뛰어나다는 어떠한 평가를 받아도 칭찬만 듣던 학교를 졸업하고 구체적인 숫자로 내 능력이 평가될 때부터 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매달 일희일비하며 난생처음 들어보는 학교에 가지망을 할 때부터일까?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러나 성년의 날이 되기 전에는 확실히 보통 사람으로서 살아가게 되는 것을 꿈꾸어왔던 것을 바라게 되었다. 아니 적어도 패배자는 되지 말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위대한 사람이 될 수는 없어도, 보통 사람마저 될 수 없는 삶을 살기 싫었다.
점차 눈이 감겨온다. 졸리워서 감겨오는 것 보다는, 왠지 지금은 눈을 감아야 할 때인 것 같기에 감아본다. 지금 눈을 감는 것은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몸에 힘도 없는데 무리해서는 더욱 좋지 않을 것 같다. 우스운 일이다. 지금 안 좋다, 더욱 좋지 않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어차피 더 이상 좋아질 수도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뭔가에 실려간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1.
제기랄. 완전히 망했다. 이럴 줄은 몰랐다. 분명히 오늘의 시작은 여느 때와 다름이 없었다. 평소와 같이 시끄럽게 떠드는 핸드폰 알람을 끄고, 졸린 눈을 한채로 뜨거운 샤워기에 몸을 맡긴 것도, 오늘은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다가 결국은 아직 한번밖에 입지않아 덜 구겨진 셔츠를 몸에 걸치고 이미 매듭이 되어있는 넥타이를 칼라에 쑤셔놓고 나온 것도, 아슬아슬하게 주차장에 차를 밀어놓고 뛰어올라가 직원 조례 전에 도착해서 안도의 한숨을 쉰 것도.
낮에도 평소와 다름 없었다. 상사가 시킨 3분기 예산안을 새로 짠 것도, 결재를 맡으러 깐깐한 과장에게 갔다가 무지하게 깨져서 한숨을 푹푹쉬며 다시 예산안을 기획하는 것도, 대충 점심시간이 되어서 동료들과 함께 적당히 과장 새끼 욕을 하면서 목에 찌개를 밀어넣은 것도,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지나가는 아가씨들의 짧은 치마를 보면서 여름을 실감하던 것도. 그러고보니 다른 것이 한가지 있었다. 이번 가을에 대규모의 인사 이동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 그래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계절이 돌 때마다 들려오던 소문이었으니까.
저녁때에도 평소와 다름 없었다. 비록 예산안을 다시 짜는 것과 다른 업무들에 치여서 야근을 해야 했지만, 어차피 오늘이 아니더라도 밥먹듯이 하는 것이기에 크게 차이는 없었다. 남의 돈 떼먹기가 쉬운 일이 아니지라고 자위하며, 컴퓨터를 켜서 이런 저런 양식들을 채워나가는 것이 어디 하루, 이틀의 일인가? 신입때야 멋도 모르고 힘들기도 하고 했지만, 이제 나름대로 몇 년의 경력이 쌓이다보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물론 여전히 싫기는 했지만.
퇴근할 때에도 평소와 다름 없었다. 주차장의 약간 길쭉한 사변형의 안에서 조금 비뚤어진 차를 꺼내는 것도, 지하에서 나오면서 창문을 열고 담배에 불을 붙인 것도, 시끄럽게 떠드는 라디오 DJ의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 CD로 바꾼 것도, 시외곽의 고속화 도로에 접어들면서, ‘집에 갈 때 맥주나 한 캔 사갈까?’ 라고 생각한 것도. 평소와 다름 없었다.
나는 사실 뭔가 큰 사건이 생긴다면 전조라는 것이 있을 줄 알았다.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드라마에 보면 애인이 죽기 전날에는 그가 사줬던 목걸이가 끊어진다던가, 시험을 망친 날 아침에는 어머니가 미역국을 끓이셨다던가 하는 것. 지금까지는 항상 평범하게 살아와서 몰랐기 때문이지, 나에게도 큰 일이 생긴다면 당연히 전조가 있을 줄 알았다.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더군다나 나는 회사도 꼬박꼬박다니고 교회도 착실히 나가는 모범적인 시민이다. 이런 사람을 위해서라면 하나님도 한번 쯤은 경고를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같이 평범한 사람에 의해 돌아가는 사회가 그 정도도 해주지 않고서는 수지가 맞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젠장 뭐가 문제일까? 한밤중에 음악에 취해서 조금 과속한 것? 아니다. 어차피 평소에도 이 시간에는 시속 140km 이상으로는 가지 않는가. 과장이 없는데서 그 새끼 씹은 것? 아니다. 그걸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우리나라는 사고의 천국이었을 것이다. 제기랄.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내가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을 당해야 되나? 조폭 새끼들처럼 딴 사람 등쳐먹은 것도 아니고, 정치하는 것들처럼 남들한테 사기친 것도 없는데. 억울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남들이 말하는 나쁜 짓이라는 것도 해볼걸 그랬다. 그러고도 잘 사는 사람이 많은데 내가 왜 당해야되나? 그것도 어떤 미친 새끼가 모는 역주행하던 차 때문에. 이젠 욕도 안나온다. 머리가 몽롱하다.
2.
오늘은 일진이 좋지 않다. 새벽 3시까지 별다른 신고가 없어서 오늘 밤은 무사히 넘기겠구나 했는데, 이런 젠장 조용한 방 한 구석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습관적으로 아니 이미 반사적으로 받은 전화는 왕복 6차선의 고속화 도로에서 사고가 났다는 우울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아니 도대체 다른 넓은 길 놔두고 왜 꼭 사고가 나야하나? 그것도 다른 차는 별로 지나다니지도 않을 시간에!
머릿속으로는 계속해서 투덜거리면서 손으로는 동료들의 연락처를 호출한다. 다들 약간 잠에 쩌든 목소리. 이미 응급 구조사 겸 소방관의 역할을 해온지 십수년이 지났지만 한밤중에 오는 전화는 달갑지 않다. 그것도 특히 새벽 3~4시경 한창 잠에 깊이 빠져있을 때에는.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이것이 나의 일인 것을.
우선 차에 내려가서 시동을 걸어놓고, 커피메이커 안에 들어있는 거의 식어가는 커피를 종이컵에 따라온다. 뭐 남들은 맛없는 식은 커피라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이 시간에는 이 정도 온도가 딱 좋다. 한번에 잔을 비워도 입천장이 델 일은 없기 때문이리라. 커피를 반쯤 마셔갈 때, 동료들이 뛰어내려온다. 순서대로 차에 태우고 반쯤 남은 잔을 마저 털어 넣은 후 출발한다.
이 시간에 출발할 때 아쉬운 점은 한가지 있다. 바로 싸이렌을 울리지 못한다는 것. 한번 울렸다가는 아마도 들어오는 민원이 장난 아닐 것이다. 예전 처음으로 소방서에 발령받고 시작한 첫 응급출동에서 싸이렌을 울리면서 민가를 지나갔다가 다음날 무지하게 깨졌다. 사람 목숨이 자신들 잠보다 소중한가? 하긴 나도 새벽에 전화가 오면 귀찮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을 보면 이기적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더더욱 아쉬워진다. 싸이렌을 울리면서 구급차가 지나갈 때, 양쪽으로 차들이 비켜가는 모습이 뇌리 속에 강하게 남아 이 직업을 택하게 된 나로써는. 왜 남자라면 그렇게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이 직업이 정말 위대해 보일 때가.
어리다고 욕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남자들은 다 그렇지 않은가? 단순히 생존을 영위하기 위해서 머리 싸매가면서 공부하여 꿈도 없이 의사, 판검사 등등을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어린 시절의 꿈을 찾아서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비록 박봉이고 일은 고되지만, 그래도 내가 하는 일이 남들을 해치는 것도 아니고 남들을 돕기 위한 일이니 사회에 부끄럽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그래도 내 자식이 이 일을 한다고 하면 한번쯤은 말려보겠지만.
아무튼 속으로는 이런 저런 잡생각을 하면서 잠을 깰 요령으로 옆에 앉은 동료와 이야기를 나눈다. ‘상태는 어느 정도래?’, ‘크게 다치지는 않았을까?’ 등등의 습관적이고 기계적이며 어찌보면 직업적인 질문을 서로 던지면서. 아마도 이런 질문들이 ‘너희 애는 공부 잘한다며?’, ‘어제는 마누라가 집에 가니까 바가지를 더럽게 긁더라고, 너네 마누라는 안그러냐?’ 등의 고차원적이고 사색적인 과정을 요구하는 질문이었다면 이런 잡생각을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기실 심각한 대화라고 하더라도 이미 십수년간 같은 대화를 나눠본 사람들끼리는 단순한 대화 이상이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을 알기에 내 옆자리에 앉은 동료도 똑같이 잡생각을 하면서 물어보는 것이리라. 사실 이런 질문을 수십번 하는 것 보다야 직접 보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더더욱 이런 무미건조한 대화를 하고 있겠지.
현장은 생각보다 엉망이었다. 도로를 역주행 해오던 차가 제대로 달려오고 있던 차를 제대로 들이 받은 것이다. 어찌된 일인지 렉카와 보험사 차량들은 미리 도착해있었다. 우리 같은 5분 대기조 들보다 빨리 오는 이 녀석들은 도대체 어떠한 놈들일지 항상 궁금하다. 비록 차가 안막히는 시간대라고는 하지만. 아무튼 뒤에 해결은 보험사들끼리 알아서 할테고 우리는 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한명은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났고, 다른 한명은 위독하다. 이미 십수년간 행해온데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면서 구급차에 태운 후에 병원으로 연락한다. ‘지금 고속화 도로에서 추돌 사고로 의식 잃고 순환 상태 불안정한 환자 한명 이송합니다.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30분이면 내 일은 끝일 것이다. 졸린다. 얼른 가서 눈을 좀 붙여야지.
3.
이번 달 내공은 최악이다. 저번 달에는 좀 편히 지내나 했더니, 이번 달 들어 아주 대박 사건이 줄줄이다. 시작은 엊그제부터인가? 머리 아프다고 온 환자, 완전히 술에 떡이 되어 있길래 술먹고 주정부리는 것인지 알고 그냥 수액 꽂아놓고 재웠다. 이런 젠장 그 환자가 토하는 것이 뇌압이 올라가서인지 내가 알았나? 술먹고 토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아프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길래 그냥 진정제 놔버릴까라고 고민하다가 그래도 그건 귀찮으니 그냥 무시했다가 갑자기 조용해져서 가보니 이미 맛이 가있다. 이건 뭔가 대박의 기운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환자 깨워보니 의식이 없다. 신경외과에 연락했다가 술먹고 자는 환자 가지고 내려오라고 한다고 한 10분간 작살나게 깨지고, 30분 있다가 내려오더니 보고는 왜 CT도 안찍어놨냐고 지랄이다. 아직 판독이 안나왔다고하니 의사가 되서 그거 하나 못읽냐고 난리치더니, 갑자기 이런 짱돌새끼라면서 나한테 욕하고 난리다. 젠장 내가 이 환자가 지주막하 출혈 환자인지 알았나? 넓디 넓은 응급실에 나 혼자서 어떻게 모든 환자를 신경쓰는가? 술먹고 떡됐길래 당연히 주정인지 알았지. 아무튼 그것 때문에 한 달간 응급실 벌당을 서게 되었다.
그리고 어제는 멀쩡히 들어온 환자가 갑자기 쓰러졌었다. 아직 환자한테 어디가 아픈지 묻지도 못했는데! 우선 간호사시켜서 응급 심폐소생술 팀을 불러오도록 한 후에, 배운데로 삽관하고 심폐소생술을 했다. 지옥 같은 2분이 지나고 응급 심폐소생술 팀이 내려와서 겨우 한숨돌리는가 싶었더니, 사람 모자란다고 인턴은 계속 힘이나 쓰란다. 가뜩이나 풀당으로 머리 아파 죽겠는데, 위에서 흉부압박까지 해야 하다니! 그래도 별 수 있나. 불가촉천민인 인턴이 참아야지. 아무튼 작살나게 흉부압박하고 있는데 보호자가 쳐들어 온다. 대충 상황보니 이미 환자는 요단강 너머로 가신 것 같은데 보호자는 살려내라고 난리다. 아니 이미 돌아가신 분을 어찌 살려내나? 다른 환자도 봐야되고 가뜩이나 할 일도 많은데 레지던트들은 바꿔줄 생각도 안한다. 어차피 죽은 환자고 보호자가 인정을 못하고 있으니 심폐소생술 쇼를 보호자가 납득할 때까지 해야하는데 자기들은 힘쓰기 싫다는 거지. 그 마음이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지만, 제기랄 내가 레지던트만 되면 나도 저래줄 테다. 나만 당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속으로는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면서, 표정은 심각하게 흉부압박을 계속하고 있다가 겨우 보호자가 진정되어 시계를 보니 이런 1시간이나 지났다. 후우 오늘도 이렇게 지나갔구나 하면서 한 숨을 쉬면서 자리로 돌아갔는데. 반갑지 않은 전화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더더욱 반갑지 않은 응급 구조사의 목소리. ‘오늘 밤도 잠은 다 잤구나.’
신도 양심이 있다면 오늘 밤은 무사히 넘겨줄 줄 알았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3일 연속으로 제대로 잠을 못자는 것은 너무 하지 않은가? 그런데, 후우, 먼 옛날 니체가 말했던 것처럼 신은 죽은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이렇게 3일 연속으로 내가 고난을 내리는 것이 아닌가? 전화를 통해서 상태를 들으니 이미 환자는 가망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해서 내 마음대로 결정했다가는 또 다시 박살나겠지. 우선 수술장에 연락해서 수술 준비를 부탁한다. 역시나 당직 간호사가 투덜댄다. 젠장 저 것들은 인턴 말은 듣지도 않는다. 아무튼 협박 반, 부탁 반으로 겨우 수술장을 마련해놓고 환자가 오기를 기다린다. ‘위이이잉, 위이이잉’하는 반갑지 않은 소리가 점차 커져온다. 그리고 갑자기 양쪽으로 활짝 젖혀지는 문. 뛰어가서 환자 상태를 보니 이미 운명했다. 돌아가신 분께는 미안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세상에는 자비란 것이 있는 것 같다. 이제 눈을 좀 붙여야지. 일단 수술 취소시키고, 대략적인 환자 차트 작성한 후에. 아 그리고 보호자가 올 경우를 대비해야 하는구나. 일단은 환자 차트에는 DOA(dead on arrival)라고 크게 적는다. 이제 당분간은 쉴 수 있겠군.
4.
졸린다. 아침 시간에는 너무 졸린다. 철밥통이라는 질시도 받고, 칼퇴근이라고 욕하는 이들도 많지만, 공무원이란 직업은 정말 그것 외에는 할만한 일이 아니다. 매일 매일 똑 같은 일만 계속해서 반복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고문이다. 비록 취직이 힘들어서 준비한 공무원 시험이긴 했지만, 아마 이 정도로 일이 지루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다시 한번 생각해봤을지도 모른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사망 신고가 들어왔었지. 대충 훑어보니 젊은 놈이 교통사고로 죽었단다. 컴퓨터에서 찾아서 ‘사망’이라는 두 글자를 남기고, 주민등록을 말소한다. 아마도 이 남자의 자취는 지인들의 기억과 몇가지 유품을 제외하고는 이 것이 전부이리라. 후우 벌써부터 점심시간이 기다려진다. ‘오늘은 뭐 먹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