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는 국민의 4대 의무라는 것이 있다. 의무 교육인 초등학교(국민학교) 과정에서 모두 배웠던 것이니 굳이 다시 밝힐 필요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열하자면 국방, 납세, 교육, 근로의 의무가 그것이다. 이중에서도 중요한 것을 꼽자면 국방과 납세의 의무가 제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교육과 근로의 의무는 조금 중요성이 떨어진다고 해도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군대없는 국가는 그 형태를 유지할 수 없으며, 조세권이 없는 국가는 그 기능을 유지할 수 없었음을 간주해 볼 때, 국가는 조세권을 가진 무력 집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최소한의 정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방의 의무는 무엇보다도 우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본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보았을 때 참 머리아픈 곳이라고 한다. 영토 자체는 넓지 않으나 대륙과 접하는 북쪽은 험악한 산지가 주를 이루고 천연의 경계인 2개의 거대한 강이 흘러서 반도로의 침공은 쉽지 않다. 다만 막대한 군대가 없다면 대륙으로의 진출도 쉽지않은 것이 사실이며 설사 진출한다고 하더라도 유지가 쉽지 않음은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3면이 바다라서 비교적 방어에 유리하다고 하지만 서쪽으로는 거대한 대륙이 지척이며 동쪽으로는 반도보다 큰 섬이 지척이다. 더군다나 섬의 동쪽으로는 더 이상의 육지가 없으므로 영토 확장을 위해서는 반도를 거쳐가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반도에서 자주적인 통일 국가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 자체는 기적이라고 보아도 될 것 같다.
이러한 점 때문에 한반도에 세워진 국가는 항상 전쟁에 시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에도 불구하고 군에 대한 전통은 미약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무관이 문관에 비해서 천대를 받았던 것은 일본을 제하고는 극동 아시아 지역의 역사적 전통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서 군에 대한 위정자들의 의식은 이상하리만치 억압에 가깝다고해도 될 것 같다. 이에 대한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아무래도 지리적인 면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이 한반도는 어느 정도의 군대만 보유된다면 전쟁 억지력을 확보할 수 있는 지형이다. 적극적인 침략 정책을 펼치는 위정자가 아니라면 국방에 필요한 군대는 크게 강할 필요가 없으며 따라서 위정자의 입장에서는 강한 군대가 확보되었을 때 발생하는 장점보다는 강한 군대가 야기할 반란의 위험성을 좀더 고려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한반도는 절대 넓지 않다. 북쪽에 있는 군대가 남쪽의 수도까지 침공하는데도 큰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이를 증명해보였다.). 그런고로 고금의 위정자들은 문을 숭상하고 무를 경멸하는 전통을 심어줌으로써 지나치게 강한 군대의 육성을 막았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이는 조선의 국방 정책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데, 조선은 초기부터 일정 수준 이상의 유생에게는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게 함으로써 군대란 못배운 어리석은 백성이나 가는 것이라는 개념을 심어주는데 성공했다(성균관의 유생들은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았다고 한다. 후에 이는 점차 확대되어 양반들은 모두 병역의 의무를 지지 않는 것으로 발전했다.).
이는 서구 문명과는 굉장히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온 국방에 대한 개념을 대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현재 서구 문명의 발상지인 유럽 대륙은 한반도와는 지리적으로 굉장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대다수의 국가는 최소 2개 이상의 국가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수없이 많은 전쟁을 통해서 성장해왔고 상무주의 정신에 입각한 지도층이 기반이 되었기 때문에 국방이란 항상 지도층의 의무였다. 군대를 지휘하는 자는 항상 권력의 중추에 서있을 수 밖에 없는 구조였고, 혹여 군대를 경시하는 풍조를 가진 나라였다면 자국의 군대나 타국의 군대에 의해서 패망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서구 문명에서는 상무주의에 입각한 noblesse oblige가 발전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군의 지도자가 솔선해서 전장에 뛰어들지 않는다면 다른 군대에 의해서 패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따라서 대다수의 서구 문명에서 국방의 의무는 신성한 것이었고 기본적으로 있는 자들의 권리일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측면에서부터 차이가나는 점때문인지 현대의 대한민국에서도 기득권층은 최대한 군대를 가지 않으려는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 한때 군인 정권이 지속되면서 출세를 하려면 육사를 나와야하는 풍조가 있었다고는 하나 이는 일부에 국한된 것이고, 당시에도 고관들의 자제는 대부분 군대를 가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현대 대한민국의 군대는 세계적인 강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나 사병에 대한 처우는 열악하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일반 사병들의 급여가 월 평균 3~4만원대로,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는 현실성이 없는 말도안되는 수준으로 낮으며 복지 후생 측면에서도 상당히 열악하다고 한다(사실 여부야 확인해봐야 알겠지만 군에 대한 이야기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감기에 걸리나 무좀에 걸리나 약은 똑같다는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2년간 복무후 제대후에 사회적인 보상이 따르는 것도 아니다. 2년후에 화끈하게 퇴직금이라도 몰아서 주는 것도 아니고, 사회 적응 훈련을 철저하게 시켜주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어느 정도 보상해주던 군 가산점 제도도 어용 여성단체의 압력에 의해서 폐지된 것이 몇년전 일이다.
따라서 군에 현역으로 다녀온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군 면제자나 공익 근무 요원, 혹은 여성들에 비해서 2년간의 의무에 대한 보상을 적절하지 받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실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방의 의무는 신성한 것이니 불만을 갖지 말라고 해도, 전역한 사람 입장에서는 개소리나 다름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대안일까?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징병제 폐지 및 용병제로의 전환이나 사병 처우 개선 현실화가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우선 용병제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자.
용병제란 말 그대로 의무로 부과되어 있는 징병제를 폐지하고 국민의 세금을 바탕으로 직업군인을 뽑는 것이다. 이는 예전의 대한 민국이었다면 불가능한 목표였겠으나 현재 대한민국의 상태라면 크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선 현대의 전쟁은 미국이 이라크 침략 전쟁에서 솔선수범해서 보여주는 것처럼 기계화, 현대화된 군대가 주도하게 되어있다. 1차 걸프전 당시 이라크 군의 육상 병력은 근방에서는 상대하기 힘들 정도의 강군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라크 군보다 현대화되어있던 미군의 공습으로 대다수의 육상 병력은 개전 초기에 모두 파멸했고, 이후에는 미군이 상륙해서 정리하는 양상으로 진행되었다고 해도 될 것이다. 즉, 병기의 현대화로 인해서 육군보다는 공군이나 해군의 역할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볼 때, 대한민국은 현재 군대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육군 사병의 수를 줄이고 그만큼의 가용자원을 해군, 공군에 투자한다면 지금보다는 좀더 기계화, 현대화된 군대를 양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현재 육군 장성의 숫자를 줄이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과(대한민국 군대의 대다수의 장성은 육군이다.) 예산의 사용에 대한 3군의 파워 게임이 장난이 아닐 것이라는 것이 난제이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세금을 늘려야하는데 이것도 만만치 않게 국민의 저항을 불러올 것이다.
또 다른 목적인 사병 처우 개선 현실화를 살펴본다면 이것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월급을 100만원 수준으로만 올려도 지금보다 30배 이상의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더군다나 복지 후생면에서의 현실화를 생각해본다면 그 비용은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대한민국 군대가 미네랄을 씹고 가스를 마시면서 사는게 아닌 이상, 이는 당연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방안은 없는 것인가? 현재 상황을 개선시키는 것이 아닌 개악시키는 방향이라면 그 실마리가 있다고 본다. 현대의 징병 검사 기준을 매우 강화하여 어지간한 사람들은 모두 현역으로 보내버리고 여성도 징집하면 된다. 앞서 말했듯이 상대적 박탈감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이를 생기지 않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실제로 대한민국보다 위험한 상태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에서는 남녀 가리지 않고 모두 징집하며 똑같이 복무한다고 한다. 즉 불만이 생길 여지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를 실현할 위정자는 없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국민의 반을 적으로 돌릴 정책을 어떠한 위정자가 펴겠는가?
그럼 현실적인 대안은 전혀 없는 것인가? 본인은 위의 3가지를 어느 정도 조합하면 험난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길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첫번째로 현재의 공익 근무 제도를 변형시키는 것이 그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징병 검사 기준을 강화하여 대부분은 현역으로 보내고 그 공백은 여성으로 메꾸는 것이다. 이것도 국민의 반을 적으로 돌리는 방안이니 실천하기는 쉽지 않겠으나 그나마 현실적이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공익 근무 요원이 하는 일들을 들어보면 남성의 육체적 능력이 필요없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 정도는 여성도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두번째는 군 가산점의 부활이다. 이를 민간 차원의 사업장에 적용하라고 하는 것은 힘들지 몰라도 공공 사업에 대해서는 적용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의 평화라는 무형의 가치를 만들어온 이들에게 현실적인 대우를 하지 않을 것이라면 국가 차원에서 보상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은가? 실제로 공공 사업을 위해서 뛰어드는 지원자의 숫자는 전국민에 비하면 많지않은 것이 현실이고 대부분의 군 복무자가 이를 받을 수 없다고는 해도 상징적인 의미에서도 이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에 대한 반발도 당연히 존재한다. 군 가산점이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본다면 군에 복무하지 않은 자는 기본적으로 2년이라는 시간이 더 주어지지 않는가? 이를 간과하고 불공평하다고 떠든다면 그야말로 자가당착이라고 생각한다. 2년이라는 시간이 더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지 못할 정도의 노력과 지능이라면 차라리 도전하지 않는 것이 국가적으로 더 비용이 적게들 것이라고 보는 것은 불공평한 것인가? 세번째는 국방비용을 여성에게 좀 더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다. 소득이 있는 여성이라면 최소 2년간은 좀 더 부과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비합리적일까? 물론 현실적으로 여성의 소득이 남성에 비해서 불공평할 정도로 낮다는 점은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회적인 면에서 개선해나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하며, 이들이 내는 세금으로 조금이라도 사병의 처우 개선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여긴다. 사병들처럼 2년간 연봉 40만원을 받고 일하라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니, 최소 이 정도는 부담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된다.
이쯤되면 아마 이런 반론도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는 애낳고 월경하지 않는가? 온라인상에서 국방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면 항상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본인은 이러한 반론만큼 무식하고 여성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비합리적인 발언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선 국방의 의무는 사회적인 의무이며, 따라서 이에 대한 보상은 사회에서 책임을 져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성의 월경과 임신은 생리적인 현상이다. 원칙적으로 보았을 때, 이를 사회에서 국방의 의무와 같은 차원에서 보상해서는 안되며 양성평등의 원칙 차원에서 보상해야하는 것이다(여자도 영장받고 애 낳는다면 몰라도.). 더군다나 육아는 여성만의 역할이 아닌 가정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고려해본다면 더더욱 어불 성설임을 알 수 있다.
교육은 국가백년지대계라고 하지만, 국방은 국가 자체의 존속을 위해서 필요한 상황이다. 군인을 우대할 형편까지는 안되더라도 박탈감을 느낄 정도가 되어서는 안되지 않을까? 대표없는 곳에 과세는 없다는 말처럼, 의무가 있다면 마땅히 권리가 있어야 할 것이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본인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으며, 4급 공익 근무 요원 혹은 공보의/군의관으로 입대할 예정임을 밝힙니다. 따라서 친구들이 무용담삼아서 말한 것을 주어들은 것 외에 실제 전방에서의 현실은 전혀 알지 못하며 편견에 기반한 글임을 전제합니다.